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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던 스파게티가 아니야



라오스에 있는 웬만한 식당에 가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음식 중 하나가 ‘스파게티’이다. 낯선 라오스 음식으로 가득한 메뉴판에 스파게티가 명시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일단 반가운 마음에 긴장이 풀어진다. 어느새 스파게티는 한국인들에게 매우 익숙한 음식이 되어있나 보다. 고수와 향신료에 약한 나로서는 스파게티의 사진을 마주하며 안도감을 느꼈고 용기 있게 주문을 해본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라오스의 스파게티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내 앞에 도착한 스파게티는 그 동안 내가 알던 스파게티가 아니었다.

과연 라오스의 스파게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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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는 1893년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또 해방이 된 이 후에도 지금과 같은 형태의 사회주의 국가가 선포된 1975년 이전까지는 계속해서 미국 등 서구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바게트, 크로와상, 스파게티, 초콜릿 등의 서구음식은 거의 백년 가까이 이 땅 위를 호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구가 물러가고 <라오인민민주공화국>이 탄생한지도 이미 46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라오스 곳곳에서 고퀄리티의 서구음식을 손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특히나 서구와 라오스의 음식문화가 교묘히 결합되어 있는 독특한 형태의 음식들 또한 만나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져있는 베트남의 반미와 비슷한 "카오지빠테", 즉 쌀로 만든 바게트 샌드위치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가장 흔한 것이 바로 스파게티이다. 


내가 이 곳에 온지 세 달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동안 여러 식당에서 스파게티를 시켰다가 봉변(?)을 당한 적이 있다. ‘스파게티’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라오스의 독특한 소스에 볶아져 나오기 때문에 향도 그렇고, 맛도 그렇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유난히 맵기도 하거니와 내용물의 식감도 생소하고, 몇 번을 먹어도 독특한 향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2번 정도 실패한 후에 또 다른 식당에서는 그나마 만만한 오일파스타를 시켰는데 심지어 오일파스타가 라오스식으로 소금에 절인 생선과 함께 조리되어져 나와서 얼마나 당황을 했는지 모른다. 


아. 그렇다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맛이 없다는 것이 절대 아니다. 메뉴에 스파게티라는 이름의 음식이 상당히 많은데 주문하기 전에 조금 더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나름 라오스 특유의 스파게티들도 어떤 측면에서 보면 상당히 맛이 있다. 하지만 익숙한 맛이 그리워서 스파게티를 시켰다가 나처럼 당황할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문득 스파게티가 언제부터 이렇게 친근한 음식이었을까? 생각해본다. 

서구의 오랜 식민지 시절을 겪었고, 비교적 최근에 엄청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신음했던 라오스와 비교할 수준은 아니지만 한국 역시 분단 이후 미군정의 지배를 시작으로 반세기 넘게 서구의 문화 속에서 살아왔던 것이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스파게티를 비롯한 서구의 음식들이 익숙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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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메뉴판 속에서 ‘스파게티’라는 반가운 이름을 찾아냈지만, 이 음식에 담긴 한국과 라오스, 두 나라가 갖고 있는 공동의 기억은 무릇 비극적인 아시아의 역사를 돌아보게 한다. 식민지의 경험과 잔인한 전쟁의 기억 말이다. 아시아 대부분의 나라가 공히 가지고 있는 이 아픔의 기억을 망각하지 않고, 상처받은 치유자로써의 진정한 평화를 꿈꿀수 있을까? 


아마도 내가 라오스에 온 이유는 오늘과 같이 일상 곳곳에 담겨있는 ‘작은 기억의 조각’들 속에서 평화의 씨앗을 발견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낯선 스파게티에게 고마운 날이다.


*비대면으로 각자의 집에서 무더운 여름을 나야하는 요즘, 라오스에서 본적이 없는 냉파스타를 점심으로 추천해봅니다. 아무렴 한국보다 더욱 무더운 라오스에 있는 저를 생각하시면서 각자의 집에서 시원한 냉파스타를 맛있게 요리해서 드시면 제가 대리만족해보겠습니다. 모두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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