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2019.10.26 20:20

2019년 10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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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립니다!

1. 오늘은 왕국절 제10주일 및 34주년 창립기념주일, 종교개혁주일입니다. 우리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도록 함께 기도하고 노력하는 교회가 되기 바랍니다.

2. 다음주일은 추수감사주일로 지킵니다. 한 해 동안 맺은 결실로 감사하는 주일이 되도록 준비해 주시고 강단에 바칠 농산물도 하나씩 가져와 주십시오.

3. 오늘 오후에는 성서대학을 하겠습니다. 성서대학에 적극적으로 참석해 주십시오.

4. 다음주일 오후에는 공동식사를 마치고 강화도로 가서 농촌생태활동을 하겠습니다.

5. 올해 월동준비(김장)는 11월 둘째 주일(10일)에 하겠습니다.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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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저모

 

야외예배를 즐겁게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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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에는 인천시 무의도 하나개해수욕장으로 야외예배를 다녀왔습니다. 성인 13명, 어린이 7명, 모두 20명이 함께하셨습니다.

아침 9시 30분에 교회를 출발하여 공항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렸습니다. 영종도에서 무의도로 빠지는 길, 무의도로 들어선 길이 좁고 차가 많았지만 예상 시간보다 늦지는 않았습니다. 전에는 배를 타야 무의도에 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다리를 놓았습니다. 사리현동에서 먼저 출발한 김형휘 성도님 일행이 해수욕장에서 관리하는 펜션을 미리 빌려놓았습니다. 널찍하니 좋았습니다.

우선 주일예배를 은혜 넘치게 드리고 준비한 김밥과 닭강정, 컵라면으로 소소하지만 풍족한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하나개해수욕장 왼쪽의 해상탐방로를 다함께 걸었습니다. 왼쪽으로 보이는 기암괴석들을 바라보면서 연방 감탄을 쏟아냈습니다. 탐방로 끝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다시 되돌아왔습니다. 이제부터는 각자 자유롭게 지내는 시간입니다.

윤성일 집사님, 박순용 집사님, 한효균 부장님, 이관택 목사님은 호령곡산 등산을 하러 가셨습니다. 산이 꽤 가파르고 힘들었지만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과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함께 나누어 마신 곡차가 등반의 고행을 말끔히 씻어줄 정도로 환상적이었다고 하셨습니다.

어린이들과 교회학교 선생님들, 김형휘 성도님은 조개잡이 갯벌체험을 하러 떠나셨습니다. 아이들이 갯벌에서 신나게 뒹굴면서 조개를 한 봉지 정도 잡아왔습니다. 체험을 마치고 돌아와서 김희수 어린이가 자기가 가장 큰 조개를 잡았다고 자랑하였습니다. 진흙으로 범벅이 된 옷과 얼굴을 보니 얼마나 신나게 뒹굴었는지 짐작이 갑니다. 이틀 전에 눈 수술을 하여 갯벌체험에 따라가지 못한 박차오름 어린이도 해수욕장 모래사장에서 즐겁게 모래놀이를 하였고 박차보라 어린이도 어른들 품에 안겨 편안히 쉬었습니다. 아! 저는 음악을 들으며 해안가에 난 짧은 트레킹 코스를 산책하면서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저도 무척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펜션에서 아이들을 씻기고 저녁을 먹으러 출발하였습니다. 식당은 김포 고촌에 있는 일식 양념 고깃집으로, 김형휘 성도님의 지인이 하시는 집이라 검증이 되었습니다. 한 시간 가량 달려서 도착하여 고기를 굽기 시작하였습니다. 역시 소고기가 진리인지라! 다들 돼지고기는 안 시키고 소고기만 시키셨네요. 맛있게 드시는 모습만 봐도 행복했습니다.

가까운 곳으로 다녀온 야외예배라 비교적 일찍 마쳤고 다음날을 지내시기 수월했을 것입니다. 함께 기쁨으로 섬겨주시고 배려해 주셔서 그 어느 때보다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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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서신

 

작은교회 연합 축제를 계획 중입니다.

 

같이 연합예배를 드리고 운동회를 했던 교회들이 함께 모여 예배와 축제 행사를 하고자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일명 "지저스 페스티벌!' 12월 8일(주일) 10시에 능곡의 동녘교회에 모여 '나에게 예수님이란?' 영상 상영, 말씀 필리버스터, 예수 페인팅, 오병이어 잔치 등의 순서로 알차게 채우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일회적으로 끝나는 연합행사가 아니라 서로 깊이있게 교제하고 응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교우들의 마음을 모아 꾸리는 행사입니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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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인들에게 피해를 전가하는 개발도상국 포기를 반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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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2017년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돌파하면서 선진국 반열에 올랐고 국내총생산(GDP) 세계 12위, 수출 6위 등의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지만1996년 이후 23년동안 세계무역기구(WTO)에서 농업과 환경 분야의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미국은 발전한 국가들의 개도국 지위 유지에 문제를 제기하며 90일 이내에 조처가 없다면 해당 국가를 개도국으로 대우하지 않겠다며 포기를 요구하였고, 정부는 지난 26일, '결정이 늦어질 수록 대외적 명분과 협상력을 모두 잃게 될 것'이라며 개도국 포기를 선언하였습니다. 개도국 지위 포기로 최대 513%가 적용되던 수입쌀에 대한 관세율은 154%로, 고추와 마늘도 100%대로 떨어지고 정부 농업보조금도 축소돼 농가들은 심각한 존폐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은 아니지만 여타 산업을 지키기 위해 농업에 일방적인 피해를 전가하는 방식은 결코 받아들 일 수 없으며 농업을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조처들이 시행되기를 요구합니다. 

 

■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강대국의 협박과 국가경쟁력 제고라는 미명 하에 수익성이 높은 산업은 살리고 농업은 포기하겠다고 합니다. 그나마 다수의 고령인구가 명맥을 유지하던 농업은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되었습니다. 자본의 승자독식 논리로 약자와 생명산업을 말살하는 폭력적 정책에 반대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학교라는 정치

 

 1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가 설명하는 존재의 이해입니다. 그는 『존재와 시간』에서 ‘존재’, 곧 ‘있다는 것’의 의미를 밝힙니다. 인간을 이해하려면 인간이 어떻게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고 합니다. 인간이 구체적인 현실에 있는 모습을 통해 인간이 무엇인가를 설명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는 ‘언어’를 말합니다. 그가 보기에 언어는 그 인간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드러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간을 그가 쓰는 언어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언어란 인간이 드러나는 아주 구체적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이 명제를 통해, 하이데거가 ‘인간이 언어를 통해 드러난다.’라고 주장했다면 조금 다른 방향에서 이 명제를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언어에 의해 규정된다.’입니다. 학교에 A라는 교사와 B라는 학생이 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A는 교사다”, “B는 학생이다.”라고 부릅니다. 학교에는 가르치는 사람 A와 배우는 B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교사와 학생을 한자로 풀면 조금 다른 생각이 듭니다. ‘교사敎師’,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학생學生’, 배우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나면 지식의 높낮이가 생기게 됩니다.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고 학생은 배우는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사와 학생이라는 뜻은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성숙한 사람과 미성숙한 사람, 그래 지시하는 사람과, 지시를 따라야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들어있는 단어이고 이것을 쓰는 한 이 굴레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학교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정치를 이해하기 위한 언어 분석입니다.

 

2

 

순자(荀子, BCE 298년? ~ BCE 238년?)는 고대 중국, 여러 나라가 서로 다투던 전국시대, 정치가이며 철학자입니다. 그의 사상을 통해서 학교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정치를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순자의 이야기를 들어 보겠습니다.

 

“예는 어찌하여 생겼는가? 사람은 나면서부터 욕망이 있는데, 바라는데도 얻지 못하면 구하려고 하지 않음이 없고, 구하려고 하는데 양을 헤아림과 한계가 없다면 다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다투면 혼란해지고 혼란해지면 궁하여지는 것이다. 옛 임금들은 그 혼란을 싫어하였기 때문에 예와 의를 제정하여 분수를 정하고, 사람들의 욕망을 올바르게 기르고, 사람들이 구하는 것을 공급하였던 것이다.”

- 순자, 『순자』, 「예론」, 『세계의 대사상. 22』, 휘문출판사 편 (휘문출판사, 1985), 283-284쪽.

 

순자의 ‘인성론人性論’은 ‘성악설性惡說’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타자를 배려하지 않는 욕망을 가진 악한 존재라는 이해입니다. 그리고 이 욕망의 실현에서 서로 다투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순자의 ‘예禮’입니다. 예는 다스릴 수 없는 욕망으로 가득한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해, 이 다툼을 다스리는 방법으로서 제시된 것입니다. 이 예는 구분을 짓고 그 구분에 따르도록 사람을 가르치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구분은 이런 것입니다. 젊은이는 어른을 섬기고 천한 사람은 귀한 사람을 섬기며 어리석은 사람을 현자를 섬기는 것을 뜻합니다. 결국 그의 시대 봉건적 사회 질서가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순자의 ‘예禮’입니다. 

순자의 성악性惡과 예禮를 읽으니, 학교 공동체의 정치 속, 교사와 학생이 보다 분명해집니다. 학교 공동체의 구조를 유지하는 질서의 바탕인 예禮가 어떻게 기능하는 지도 볼 수 있습니다. 

 

3

 

학우여!

비민주적 교육제도 속에서 상실된 우리의 시간과 의지와 소망을 회복하고 진정한 주체로서의 입장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기필코 승리하여야 할 것입니다.

진정코 죽으면 살리니 학우여. 끓는 가슴으로 일어나 이땅에 한줌 민주의 씨앗을 뿌리고 갑시다. 쓰러지지 않을 민주의 횃불을 환히 밝히고 갑시다.

학우여, 죽으면 살리라!

 

1987년, 서울지역고등학생연합회 명동성당 농성 선언문의 일부입니다. 그리고 한 소설입니다.

 

“과학적인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학습이 필요하거든. 대학생들도 조직이 있고, 노동자들도 조직이 있잖아. 이제 고등학생들에게도 조직이 필요하다고 봐.”

“저는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요. 용기도 없고. ……제가 뭘 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도은은 진심으로 말했다.

- 하명희, 『나무에게서 온 편지』 (사회평론, 2014), 150쪽.

 

학생은 용기를 내야 하고 교사는 더욱더 용기를 내야 합니다. 학생에게는 잊힌, 양도된 당연한 권리이고, 교사에게는 변화이고 필연적 선택의 길목입니다. 

 

4

 

학교 공동체 속 교사와 학생이라는 ‘언어의 집’, 지금 학교의 구조를 유지하는 질서를 위한 구성원에 대한 ‘예禮’라는 이해, 그리고 학교 공동체의 재구성을 위해 새롭게 선다는 것의 두려움 속에, 교사와 학생이라는 학교 공동체의 정치는 그리 쉬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늘 원죄처럼 다가오는 ‘입시’ 속에서. 그러나 학교 공동체가 참 공동체로서 바람직한 방향에 대한 고민, 그리고 나아가야 함을 생각한다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학교에 공사가 한 참입니다. 인도와 차도를 분리하는 공사입니다. 한 아이가 묻습니다.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는 게 중요한 건 아는데, 왜 지금 이 공사를 해야 하는 거죠. 그것도 수업 시간에. 방학도 있는데.” 이제 물음에 대답해야 합니다. 아니 묻고 답하기 전에 함께 이야기해야 합니다. 여기는 학교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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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수보리여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만약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칠보로써 널리 베푼다면 그 사람이 얻은 바 복덕은 과연 많겠느냐? 수보리가 아뢰기를,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 그런가 하면, 그 복덕은 곧 복덕성福德性이 아니므로 그런 까닭에 여래께서 복덕이 많다고 하신 것입니다.​

 

須菩提여 於意云何오. 若人이 滿三千大千世界七寶로 以用布施면 是人所得福德이 寧僞多不아? 須菩提가 言하기를, 甚多니이다, 世尊이시여. 何以故오, 是福德卽非福德性이므로 是故로 여來說福德多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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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다는 것은 적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많고 적음이 모두 계량計量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복덕福德과 복덕성福德性은 어떻게 다른가?

 

“삼천대천세계의 칠보로 널리 베풀면 얻는 복이 비록 많으나 성性에는 아무 이익이 없다. 마하반야바라밀다를 좇아서 수행을 하면 자성自性으로 하여금 여러 있는 것들(諸性)에 떨어지지 않게 하니 이를 이름하여 복덕성福德性이라 한다. 마음에 주는 자와 받는 자가 있으면 곧 복덕성이 아닌 것이요, 주는 마음 받는 마음이 없으면 이를 이름하여 복덕성이라 한다. 마음이 부처님의 가르치심에 기대고 행동이 부처님의 행실과 같으면 이를 이름하여 복덕성이라고 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기대지 않고 부처님의 행실을 좇아 밟지 않으면 곧 복덕성이 아닌 것이다.”(六祖)

 

부처님한테는 ‘남’이 없다. 그러니 무엇을 베풀 때 주는 ‘나’가 어디 있고 받는 ‘너’가 어디 있겠는가?

 

내 이마에 묻은 때를 내 손이 닦는다. 누가 누구를 닦은 것인가? 누가 누구에게 은혜를 베풀었으며 누가 누구에게 감사할 것인가?

 

수보리가 세존에게 “많습니다” 하고 대답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달마達磨는, 절을 세우고 승려를 양성한 자신의 공덕이 있겠느냐는 양무제梁武帝의 질문에 직설直說로 대꾸한다. “없소!”

 

또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경經에서 사구게四句偈만이라도 받아 지녀 남을 위해 설해 준다면 그 복이 저 사람보다 크니 어째서 그러한가? 수보리여, 모든 부처와 모든 부처의 아누다라샴막삼보리법이 죄다 이 경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若復有人이 於此經中에 受持乃至四句偈等하여 爲他人說하면 其福이 勝彼하니 何以故오, 須菩提여. 一切諸佛과 及諸佛阿耨多羅三藐三菩提法이 皆從此經出이니라.(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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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현재 자신의 삶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늘 불평을 했다.  그는 ‘전생에 나는 뭐였을까?’ 궁금하던 차에 잠깐 잠이 들어 꿈을 꾸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절을 하고 있는 꿈이었다. 이 남자는 꿈 속에서 생각했다. 

‘역시! 나는 지금은 이래도 전생에는 아마 왕이었을꺼야!’ 

그는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 질문을 했다. 

‘이제 네가 전생에 무엇인지 알았느냐?’ 

남자는 기분 좋게 말했다. 

‘나는 왕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절을 했습니다.’ 

꿈에 나타난 그 사람이 웃으며 말했다. 

‘너는 돼지 머리였단다.’ 

남자는 깜짝 놀라 꿈에서 깨어났다.

 

‘왕년에’를 말하는 사람은 과거 지향적인 사람입니다. 과거 지향적인 사람은 현재의 삶에 만족을 찾기 힘듭니다. 어거스틴은 시간을 <현재>로 설명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세 가지 현재만 있을 따름이다. 과거의 현재와 현재의 현재와 미래의 현재이다. 과거의 현재는 기억이라는 형태로 존재하며 현재의 현재는 통찰하는 것이며 미래의 현재는 기대감으로 존재한다.” 

과거에 매이지 말고 미래를 바라보며 현재를 살아가야 합니다. 걸어온 履歷(이력)은 과거를 통하여 미래를 보는 것입니다. 미래가 없는 이력은 죽은 자의 略歷(약력)일 뿐입니다. 희망은 미래를 통하여 현재를 살아가는 것입니다.자꾸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을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오늘 지금 행복하면 삶 전체가 행복한 것입니다. 내일 일은 내일이 닥치면 알게 되겠지요. 내일을 걱정하느라고 오늘을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페이스북 예화공작소&희망충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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