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는 미스터 선샤인, 시크릿 가든, 도깨비 등의 빅히트로 드라마 흥행 보증수표가 된 김은숙 작가가 학교폭력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관계와 복수를 다룬 작품으로, 2022년 12월 30일에 파트 1이, 2023년 3월 10일에 파트 2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습니다.(저는 김 작가의 '시티홀'을 최고 작품으로 꼽습니다) 더 글로리는 공개 직후 한국은 물론 다수 아시아권 국가에서 넷플릭스 시청률 1위를 기록하였고 전 세계 주간 순위 3위, 현재 넷플릭스 최대 흥행작으로 꼽힐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특히 파트 2는 공개하자마자 전체 순위와 비영어권 순위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며 기염을 토했습니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고교 시절 부잣집 아이 김연진(임지연 분) 일당에게 혹독한 괴롭힘과 폭행을 당한 문동은(송혜교 분)이 18년 후에 연인이자 조력자인 주여정(이도현 분)과 함께 치밀한 계획을 세워 복수를 실행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억지로 끼워 맞추거나 계획된 시나리오대로 척척 진행되는 전체적인 사건 진행의 개연성이 떨어지지만, 현실 사회에서 벌어지는 학교폭력에 대한 관심을 집중시켰다는 점에서 사회적 의미도 찾을 수 있겠습니다. 학교폭력만이 아니라 극 중 조력자로 등장하는 '이모님' 강현남(염혜란 분)과 그 딸이 당하는 남편의 폭력도 사실적으로 묘사돼 우리 일상에 만연한 폭력의 문제를 집중 조명하였습니다. 아무튼 한 번 시청을 시작하면 끝까지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요소가 강력한 것은 사실입니다. 

극 중 피해자인 동은은 가해자인 연진을 찾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부터 모든 날이 흉흉할 거야. 자극적이고 끔찍할 거야. 막을 수도, 없앨 수도 없을 거야. 나는, 너의 아주 오래된 소문이 될 거거든."

이에 연진이 동은에게 "설마 진심 어린 사과 뭐 그런 거 받자고 이러는 거 아니지?"라고 대꾸하자 동은은 

"사과하지 마. 사과받자고 10대도, 20대도, 30대도 다 걸었을까. 넌 벌 받아야지. 신이 널 도우면 형벌, 신이 날 도우면 천벌."이라고 대답합니다. '과연 신이 있다면 어떻게 이런 악인들이 득세할까?'라는 오래된 질문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동은을 괴롭히던 가해자 중 하나는 목사의 딸이었고 마약중독자였습니다. 현실의 아이러니가 드라마에 반영되었습니다. 결국 가해자들은 악인들이 받아 마땅한 처참한 최후를 맞이함으로 시청자들의 불편함을 시원하게 해소해줍니다.

더 글로리와 마찬가지로 사적 복수를 다룬 드라마가 또 있습니다. SBS에서 방영되는 '모범택시'가 그 주인공으로, 까를로스와 크크재진의 웹툰 '모범택시'가 원작입니다. 모범택시는 2021년에 4월 첫 방송을 시작으로 총 16부작이 방영되었는데 최근 두 번째 시즌이 재개되었습니다. 베일에 가려진 택시회사 무지개운수의 대표와 직원들, 택시 기사 김도기(이제훈 분)가 억울한 일을 당한 피해자들을 대신해 사적 복수를 감행한다는 이야기가 에피소드별로 이어집니다. 에피소드는 젓갈 공장 노예 사건, 학교폭력, 불법 동영상 유포 사건, 보이스 피싱, 불법 장기밀매 사건 등을 다루며 사이다같이 시청자들의 속을 후련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드라마만이 아닙니다. 사적 복수를 정당화하거나 그런 행위를 저지른 인물들에게 우호적 태도를 보이는 '방황하는 칼날', '더 파이브', '26년' 같은 영화도 있습니다.

이쯤에서 왜 사적 복수를 다루는 드라마나 영화가 끊임없이 제작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법은 정의성, 합목적성, 안정성이라는 세 가지 이념을 추구합니다. 이중 안정성은 법이 너무 쉽게 변경되지 않고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법 정의가 누구에게나 흔들림 없이 공평하게 집행되기를 바라며 법에 권위를 부여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적 복수 드라마가 인기를 얻는 것은 법의 정의와 안정성에 대한 신뢰가 깨지고 있다는 신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사람은 수백 번에 달하는 압수수색을 받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명백해 보이는 증거가 있음에도 검찰이 기소조차 안 하는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습니다. 권력자와 그 주위 사람들은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 가지만 적으로 간주한 사람이나 평범한 사람은 늘 가혹하고 집요한 법의 올무에 갇혀, 법이 권력자 패거리의 '전가의 보도'가 돼버린 것 같습니다. 사적 보복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현상을 보면서 억울한 사람들의 원한이 더 글로리의 동은이나 모범택시의 김도기 같은 인물이 아니라 법이라는 절차적으로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제도에 의해 해소되고 악인이 응징되는 세상은 여전히 요원하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