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복] 둘째 길 어둠을 벗삼기, 떨쳐버림과 받아들임 : 비아 네가티바 VIA NEGATIVA (부정의 길) [마당 13] 무無에 잠겨들고 무를 받아들임

by 좋은만남 posted Aug 2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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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길  어둠을 벗삼기, 떨쳐버림과 받아들임 : 비아 네가티바 VIA NEGATIVA (부정의 길)

[마당 13] 무無에 잠겨들고 무를 받아들임


무가 우리 둘레에 퍼져 있다. 그러나 이 무에서 우리는 있는 줄 모르던 것을 발견한다.               - 수잔 그리핀 

떨쳐버림과 받아들임, 잠겨듦, 비움과 비워짐을 알게 되면 필연적으로 무와 대면하게 된다. 무의 체험은 개인적일 수도 있고 정치적일 수도 있으며 삶의 조화로운 긍정적 체험일 수도, 가장 파멸적일 수도 있다. 무의 체험은 우리의 토대, 근본 토대이다. 비우는 명상으로 닿을 수 있는 무 체험은 조용한 공간 또는 빈 거울일 수 있고, 모든 것이 있고 모든 것이 없는 무엇인 것/무엇 아닌 것의 체험일 수 있다. 무 체험이 어떤 경우로 다가오든, 우리는 무가 얼마나 거룩한지, 얼마나 우리의 존중과 관심을 받을 만하며 우리 삶에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져야 하는가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이 무로부터 창조되는 것과 같이 우리는 재창조될 것이다. 
서양은 여러 세기 동안 무에 대한 건강한 이해를 탈취해왔기에 다시 명명할 필요가 있다. 모든 진정한 해방운동의 일부인 무는 마틴 루터 킹, 마하트마 간디 등 많은 인권운동가에 의해 정치적 의미를 회복하였다. 무가 해방의 전제조건인 이유 중 하나는 해방에 투신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영(0)의 지점에 이르러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정의의 진리와 이들이 육화시키는 하느님의 진리에 비하면 잃을 것이란 없다, 이 진리의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 "하느님 바깥에는 무밖에 없다."(에카르트) 막데부륵의 메히틸드는 무를 벗했고 무를 이웃 섬김에 직결시켰다. 예언자적 신비가들에게 친숙한 광야의 순례는 사로잡는 모든 것을 떨쳐버리는 무의 체험을 표상한다. 광야에서 사람이 새로워지고 푸르러짐과 해방을 위한 투쟁을 수행해 나갈 힘을 끌어낸다.
우리는 저마다 없었던 때가 있었다. 우리의 기원은 글자 그대로 무로부터이다. 그래서 무의 체험은 우리에게 온전하게 하는 치유의 체험이며 제1의 기원에 되돌아가게 한다. 무와 연결된 우리의 연원 체험 없이는, 우리가 얼마나 유일하며 우주를 공유하는 모든 존재가 얼마나 유일한가를 깨닫지 못하고 존재에 대한 외경을 잃고 충동적으로 살 수밖에 없게 된다. 주체/객체로 분리된 세계를 떨쳐버림으로 우리는 상호의존 의식과 진실로 투명한 의식에 잠겨 들게 된다. 다른 이의 고통을 덜어주거나 기쁨을 함께 경축한대서 내/외, 개인/사회, 나/너의 부자연스러운 경계들은 무너지고 우리는 실존과의 소우주/대우주의 관계로 되돌아간다.
비아 네가티바와 연결된 무 체험은 종종 웃음 속에서 생겨나는 떨쳐버림과 잠겨듦이 된다. 예수의 비유들도 기쁨에 찬 면이 없지 않다. 건강한 비아 네가티바는 언제나 힘찬 유머 감각을 내포한다. 너무나 큰 고통과 분노도 무일 수 있다. 그리고 고통 중에 공허에 닿는다. 형용할 수 없는 큰 고통을 당할 때 다른 사람들도 같은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무란 공유되고 공유될 수 있는 체험임을 깨닫게 된다.
성서의 믿음은 무에까지 확장된다. 창조주는 만물의, 심지어 무의 지은이시다. 창조주 하느님은 유뿐 아니라 무의 하느님이시다. 둘 다의 하느님이 우리를 둘 다의 삶으로 부르신다. 무를 그대로 받아들일 때 어두운 밤은 신적 탄생의 특별한 기회가 된다. 무는 창조와 재창조의 시공간이다. 귀먹은 음악가 베토벤은 확실한 무 체험을 상징한다. 무 안에 잠겨듦 없이 우리는 성장하지 못한다. 어두운 무로의 여행은 자기 포기, 죽음, 맹종과 굴욕의 수행을 강조하며 자기 회의에 빠지게 하는 타락/속량의 이원론 전통과는 달리 심오한 개인적·사회적 의미와 가장 깊은 자아의 사회적 가치를 재창조하는 것을 외면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