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복] 둘째 길 어둠을 벗삼기, 떨쳐버림과 받아들임 : 비아 네가티바 VIA NEGATIVA (부정의 길) [마당 14] 비아 네가티바에서 보는 죄·구원·그리스도 : 십자가 신학 (3)

by 좋은만남 posted Sep 1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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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길  어둠을 벗삼기, 떨쳐버림과 받아들임 : 비아 네가티바 VIA NEGATIVA (부정의 길)

[마당 14] 비아 네가티바에서 보는 죄·구원·그리스도 : 십자가 신학 (3)


고난을 겪는 것은 그대들의 훈련의 일부입니다. 하느님은 여러분을 그분의 아들이나 딸들처럼 대하십니다.   -히브리서 12장 7절

그리스도 : 타락/속량 영성전통은 사람들에게 확실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식하게 하였으나 그것은 창조와 육화의 맥락 밖이고 복음을 심각하게 왜곡했다. 온전히 떨쳐버림, 버림받고 오해받은 형벌인 죽음을 상징하는 십자가가 치유와 속량을 일깨우는 유례없는 힘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예수 일생의 절정인 십자가의 힘은 명상의 대상이 아니라 "실제로 구원으로서 역사를 체험하는 구체적 과정에 참여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는 데 있다. 십자가는 모든 사람, 특히 버림받고 짓밟히는 사람들이 왕다운 인격의 주체라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함께 나누러 온 인물의 여행에서 전환점을 이루지만 자기네가 창조계의 관리인이며 자기네 왕국이라고 여기던 이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한 세례요한과 많은 예언자가 순교하였지만, 예수는 이 신적 과제를 회피하지 않았고, 알고 있으면서도 기꺼이 죽음을 향해 나아갔다. 
예수의 죽음은 철저히 떨쳐버림 없이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충실함도 없고 왕다운 인격주체로서의 소명 구현도 없다는 깊은 교훈과 은총의 구원적 힘이 있다. 떨쳐버림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이승의 삶, 빛과 기쁨에 대한 집착까지도 포함한다. 예수는 죽음의 두려움에 정면으로 맞섰으며 우리도 똑같이 하도록 초대한다. 고행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 기쁜 소식의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일차적으로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이다. 불사불멸에 몰두하는 것의 바탕은 두려움이다. 그리고 죽음의 두려움이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가학적 권력, 소비주의와 맹목적 축재 같은 많은 죄의 원인이다. 십자가에 의해 성취된 가장 보편적이고 철저한 예수의 해방에 들어갈 때 돈과 명성, 권력과 군사주의, 성차별과 인종주의, 투사를 통한 불사불멸 추구를 그치고 하느님의 모상, 생명을 낳는 공동창조자가 된다.
하느님 나라는 씨앗처럼 시커먼 땅속에서 먼저 죽어야 예수님의 옷이 하얗게 된 것과 같이 변모로 나아가 밝고 아름다운 면을 만난다. 예수는 떨쳐버림의 모델이요 스승이다. 그분은 떨쳐버리기 위해 광야를 자주 찾는다. 그분은 왕은, 남자와 여자는 이러저러해야 한다거나 여자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느냐 따위의 이미지를 떨쳐버린다. 중간계급이었던 예수는 자신의 특권을 떨쳐버리고 버림받고 가난한 사람들과 동일시하기를 선택했고 사회가 사랑하며 정의롭게 되기 위해 인간의 마음이 변해야 한다는 예언자적 통찰의 진리를 견지했다. '힘의 그리스도'를 거부한 것이다. 또한 예수는 사람들로 하여금 떨쳐버릴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소유를 공동으로 하고 필요한 것을 나누었다. 예수는 이 힘이 모든 사람에게 이미 주어져 있다고 역설했다. 창조중심 영성으로 복음서를 읽으면 복음은 용서할 수 있는 힘, 죄를 떨쳐버림에 있음을 알게 된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우리에게 요청하는 깊은 떨쳐버림은 전능한 하느님이라는 우리의 투사를 떨쳐버림을 포함한다. 하느님은 십자가 위 아들의 끔찍한 죽음에 천둥과 번개의 개입 없이 그 일이 일어나도록 놔두심으로 사랑의 힘을 재규정하셨다.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 전 생애를 통해 자기를 완전히 비워 하나님의 뜻에 합치되도록 하는 결단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참으로 비워진 인격인 동정의 모범이기에 지혜의 원천, 왕다운 인격, 예언자가 된다. 빈 수로인 예수를 통해 지하의 강인 하느님이 지상 인간의 삶과 역사로 분출되며 우리도 이렇게 비워진 하느님의 모습을 본받도록 초대된다. 
창조중심 영성전통에서 복음서 이야기는 결코 십자가, 비아 네가티바로 끝나지 않는다. 십자가라는 비움과 떨쳐버림은 더 큰 탄생의 서곡이었다. 떨쳐버림은 창조성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