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권세들] 서론 "너희는 그들에게 절하며 섬길 수 없다"(2)

by 좋은만남 posted May 1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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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너희는 그들에게 절하며 섬길 수 없다"(2)


◆ 다시 생각하기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살아간 예수를 이해하려면 현대 서구의 가정들과 세계관을 강요하지 말고 고대의 역사적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1. 주요 자료인 복음서들을 현대 소설이나 짤막한 이야기들로 취급하지 말고 전체 이야기들로서 읽는 법을 배워야 한다. 복음서는 예수에 관한 광범위한 묘사를 보여준다.

2. 역사적 상황 안에 있는 예수의 일차적 특징들인 정치-종교적 갈등과 이스라엘 전통(의 갱신), 권세들과의 권력투쟁을 다루기 위해 우리의 개념들을 어떻게 바꿀 것이냐 하는 문제는 더 어렵다. 고대의 일반적 생활에서 종교는 정치, 경제와 분리되지 않았다. 오히려 정치-경제-종교의 개념은 성전 국가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성전은 유다 지방 경제의 중심이었고, 백성들은 십일조를 바치며 지성소에서 희생제사를 드렸다. 대제사장은 로마 총독에 의해 임명된 실제적인 지역 ‘국가의 수장’이었고, 사제귀족은 로마에 지불할 조세를 거두는 책임을 맡았다. 카이사르는 황제일 뿐 아니라 ‘신의 아들’로서 구원자와 주로 영광을 받았다. 당시 회당은 종교 건물이 아니라, 기도와 지역 통치를 위한 마을의 모임 형태였다. 

3. 복음서에 두드러진 갈등은 정치-경제-종교적이었다. 주의 기도 안에는 민중의 경제적인 필요(빵과 빛)가 나타나고 카이사르는 조세를, 대제사장들은 십일조와 희생제물을 요구했다. 뚜렷한 분리와 갈등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아니라 촌락공동체 안에 살던 민중과 로마의 통치자들, 민중과 대제사장, 헤롯 왕족들 사이에서 나타났다. 역사기록(요세푸스)들은 로마 통치만이 아니라 헤롯 가문과 대제사장 통치자들을 반대하여 유다 지방과 갈릴리 지방의 민중이 일으킨 광범위한 반란들과 저항운동을 진술한다.

4. 예수 당시에는 고대 갈릴리인들과 그 밖의 다른 민중이 이스라엘 전통에서 비롯된 지도자들과의 관계와 역할에 따라 움직이는 가족과 촌락공동체라는 기본적 사회 형태 안에 있었다. 중요한 것은 예수가 말하고 행한 것이 역사적 상황 속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또한 예수 운동과 그 운동이 발전시킨 복음서 전승들에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가 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역사적 상황과 그 운동 속에서 활동한 예수가 중요하다.

5. 만약 예수가 이스라엘의 갱신을 이끌었다면 추종자들을 비롯하여 적대자들과도 상호작용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전통이 역사적 상황 속에서 어떻게 존재하고 작동했는지, 또한 예수가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던 갈릴리와 유다 지방의 갈등 상황에서 이스라엘 전통의 여러 양상을 어떻게 이용해 나갔는지에 대해 비판적으로 친숙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6. 계몽주의에 익숙한 우리에게 권세들의 실재와 작동, 특별히 이성적 판단으로 작동하지 않는 권세들을 인식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진다. 귀신이나 사탄은 오늘날 우리에게 낯설지만, 군사 공격을 통한 ‘하드 파워’나 외교를 통한 ‘소프트 파워’ 같이 정치-경제-군사적 권세는 익숙하다. 또 나치당이나 파시즘, 인종주의와 같이 개인과 사회의 합리적 합의에 저항하는 비합리적 충동의 힘, 규제되지 않은 자유시장 경제의 비합리적 치부, 경영인들의 집단적 탐욕 같은 힘과 권세도 존재한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갈릴리와 유다 같은 지방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로마의 군사적 파괴와 살육, 노예화와 공개적 십자가 처형이라는 충격과 공포를 더 잘 이해하게 한다. 자본주의 시장에서의 비합리적 치부와 기업의 탐욕은 로마제국 시대에 지방들을 착취하여 막대한 재산을 축적한 지배층의 비합리적 탐욕을 인식하게 돕는다. 대통령과 의원, 지도적 사회과학자들은 ‘악의 제국’에 대한 두려움에 이끌려 왔는데, 이는 바리새인 같은 지식인들이 예수처럼 귀신 쫓음을 통해 추종자를 얻는 대중적 예언자를 바알세불의 권세를 가진 자로 이해하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 사회가 이런 이데올로기적인 이원론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은 빛의 왕과 하나님이 로마 편에서 싸우게 될 어둠의 왕 벨리알을 상대로 자신들의 편에서 싸워 줄 것이라고 확신하게 했음을 이해하게 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