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권세들] 1장 제국의 권세들 (3)

by 좋은만남 posted Jun 1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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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제국의 권세들 (3)


◆ 빵과 서커스 : 로마의 권력 집중   농토를 잃은 지방의 농민들은 로마로 밀려들어, 당시 인구가 농업경제가 담당하기 어려운 100만 명에 이르렀다. 직업을 잃어 시간이 남는 도시 빈민들은 로마 제국 통치의 잠재적 위협이었다. 로마는 빵과 서커스, 즉 곡물 배급과 볼거리 제공은 제국의 중요한 프로그램이었다. 로마의 지배층은 자신의 명예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평민들에게 보호자(후견인)-피보호자(의뢰인) 체제를 확대하였다. 그러나 여기에 들지 못하는 절반은 경제적으로 의존하거나 사적으로 경멸당할 수밖에 없었다. 로마 시민은 적은 가격 혹은 무료로 곡물을 공급받는 제국의 피보호자였지만 30%에 해당하는 이주민과 노예는 제외되었다. 
제국 수도의 식량 배급은 식민지 민중의 자원을 징발하는 주요 요인이었다. 군사령관들은 정복지역에서 전리품과 세금, 생산물들을 착취하였다. 조세와 세금, 십일조와 대출은 식민지 농민들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지방 관리들과 집사들에게 땅을 빼앗기는 결과로 나타났다. 물질적 필요가 채워진 사람들은 오락과 자극, 흥분을 위한 여가활동이 필요했다. 로마는 원형경기장에서 열린 전차 경주와 극장에서 행해지는 공연 등 공적이고 연례적인 축하 행사와 축제들을 벌였다. 그 게임들은 로마가 신들/권세들에게 봉헌하는 종교적 오락으로 떠들썩하며 흥청망청한 술잔치를 통해 욕망을 분출하는 형태를 띠었다.
더 나아가 군사령관들과 다른 유력 인사들은 주민에게 선물을 제공하는 방식을 취했다. 로마 주민들은 개인적 사치에는 분개했지만, 공적으로 공유하는 사치는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부와 권력을 소유한 자들은 자기들이 대중의 이익을 도모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군사적 영광을 과시하며 승전 축하 행사를 벌였다. 황제는 선물 제공자(후원자) 역할만이 아니라 주재자와 최고책임자 역할을 독점해갔다. 황제에게 경의를 표하며 시작되는 모든 게임은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는 형태로 4개월이나 계속된다. 빵과 서커스는 경제적인 형태만이 아니라 시민-종교적 축제의 의식적인 형태를 가졌다.

◆ 보호자 피라미드와 피보호자 왕들 : 정치(-경제) 권력   로마는 이미 문명화된 지역에서 개인적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농경문화에 기반을 둔 보호자-피보호자라는 거대한 경제 권력 체계를 만들었다. 도시로 흘러들어온 땅을 잃은 농민들에게 충성심을 얻고자 한 부유하고 야심 있는 귀족들은, 사회적 연대와 통제 모두를 위한 도구로, '호의와 봉사의 교환'이라는 이 체계를 더욱 발전시켰다. 이 체계는 아우구스투스 이후 제국을 방대한 네트워크 체계로 묶으며 귀족사회를 통제하였다. 황제는 보호자들의 보호자이다. 황제는 로마를 넘어 대도시들과 지방의 지배층들과 보호자-피보호자 관계를 수립하였고, 로마 총독들은 지역의 귀족들에게 호의와 은혜를 베풀었다. 지방의 지배층은 황제(친구)가 아니라 친구들, 또 그들의 친구들에 의해 통제를 받았다. 이렇게 확립된 관계는 권력의 피라미드 네트워크 안에서 아버지와 같은 보호자이자 시혜자인 황제를 중심으로 정치경제 권력을 공고하게 만들었다.
반면 덜 문명화된 사람들은 왕을 고용하는 강압적 방식으로 통제되었다. 성전 국가를 통한 통치는 원래 페르시아 제국이 썼던 통치 방법인데, 유다인들은 십일조와 희생제물을 하나님께 바치며 예배할 수 있었고 사제귀족을 통해 로마 제국에 조세를 바쳤다. 이때 고용된 왕이 헤롯이다. 그는 유다인, 사마리아인, 갈릴리인들을 제압하고 폭력적인 정권을 수립한 후 요새들을 건축했다. 또한 황제의 피보호인으로서 원형극장과 마차 경주장, 황제를 기리는 신전 등을 건축하고 황제에게 헌정된 새로운 도시들을 만들었는데, 이는 민중들로부터 거둬들인 세금과 황실이 소유한 대토지로부터 얻은 재화들로 진행되었다. 헤롯에 의해 임명된 대제사장들은 하나님은 물론 로마와 카이사르를 위해서도 제사를 바쳤다. 80여 년에 걸쳐 헤롯이 지은 성전은 당시 부유한 유대인들의 순례지였다. 농민들은 로마와 헤롯만이 아니라 이들과 상호 의존관계에 있는 사제귀족의 권력을 떠받쳐야 했다. 헤롯 가문의 왕들과 헤롯이 지은 성전을 배경으로 하는 예루살렘 대제사장들은 갈릴리와 유다 지방에서 로마 제국 통치의 얼굴마담 역할을 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