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복] 실마리 : 지혜와 인류/지구 생존에 관한 두 물음(4)

by 좋은만남 posted May 2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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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마리   지혜와 인류/지구 생존에 관한 두 물음(4)

8. 교육의 변모 - 사람마다의 우뇌(右腦)를 반기기 : 창조중심 영성전통은 뉴턴과 데카르트식 좌뇌 중심 학문 체계의 한정된 영역 내에서만 가르칠 수 없다. 좌뇌병은 지구를 송두리째 파괴할 힘이 있는 치명적인 병이다. 영성은 이론만이 아니라 우주적이고 창조적인 신비주의 명상인 예술의 체험을 요구하며 사회 변화를 위한 열정과 상상력을 발생시키는 억눌린 자들이 체험을 요구한다. 그래서 교육 형태도 영성의 쇄신 여지가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 특수화한 전문교육 방법들은 지적 분석에 사로잡혀 있고 그 결과는 지혜의 상실이다. 지혜가 나오는 곳은 우뇌나 좌뇌 어느 하나가 아니라, 둘이 행복한 혼인을 이루어 동등하게 반려 구실을 하며 진리 추구를 하는 거기이다. 좌뇌병의 처방은 명상으로서의 예술, 비아 크레아티바이다. 예술로 우리의 영혼은 비옥하게 된다.

9. 부작위론 : 창조중심 영성은 제국의 국교가 된 이후 프랑스 혁명이 지속될 때까지 주도권이 없었다. 사람들을 구원받을 자/구원받지 못할 자로 나누는 타락/속량의 이원론을 바탕으로 십자군, 종교재판, 아메리카 원주민 종족살해, 유대인·마녀·동성애자·과학자 화형, 천주교인과 개신교인의 상대 화형 등 엄청난 일을 저지른 것은 창조영성이 아니다. 오히려 창조영성은 억압받는 이들의 영성이고 이들을 대변했다. 타락/속량의 불균형한 주도권이 지배한 그리스도교는 해방되어야 한다. 지나치게 내향적이고 두려움에 찬 에고, 이원론적 에고, 폭력적인 에고, 제국과 혼인한 에고, 열정과 예언과 에로스를 겁내는 에고에서 해방돼야 한다. 과학자, 교육자, 예술가, 정의의 일꾼, 개신교 신학생들이 골방에서 나와 대낮의 빛, 확고한 예언자적 전통으로 나아오고 있다. 이 전통이 진작부터 잘 알려지고 자리를 잡았더라면 종교와 정치의 근본주의가 오늘날처럼 활개 치지 못하였을 것이다.

10. 전망과 모험과 공동체 : 칼 융은 사람들의 치유 과정에서 놀라운 통찰을 했다. 삶의 가장 중대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으나 벗어날 수는 있는데, 이 '벗어남'에는 새로운 의식 수준이 필요하다. 시야가 확장될 때 새로운 더 강한 삶의 충동과 마주하면서 해결될 수 없었던 문제의 절박성은 사라진다는 것이다. 창조중심 영성전통이 새로운 더 강한 삶의 충동을 가져다줄 것이다. 오늘날의 환자인 서양 문명과 인류 자체는 새롭고 더 강한 삶의 충동과 지혜를 위한 종교적 안목이 필요하다. 우리의 낙관론은 종교적 안목과 그 지속적 확장의 역사를 근거로 한다.(화이트헤드) 그동안 제한적으로 이해된 공동체(community)란 함께 건설하는, 공동과업을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생태학적 시대를 위해 지혜를 회복하려는 공동과업에 투신하는 것은 사소한 임무가 아니며 천박한 모험도 아니다. 

이 열 가지 이유로 창조중심 영성전통은 이 시대에 합당한 패러다임을 대표한다고 믿는다. 그동안 종교 안에서 인류가, 특히 죄 많은 인류가 영적 우주의 중심이라는 모델이 지배적이었으나 틀렸다. 축복받고 은총 받은 우주 자체가 영성의 본래 출발점이다. 원복이 원죄나 원죄 이후의 어떤 죄보다 우선한다. 인류가 타락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때도 있지만 지금은 죄 대신에 하느님의 은총에 주목할 때다. 
그동안 많은 사람이 이미 신비주의 창조 영성을 살아오고 있었지만, 교회에서 신학적 설명이나 격려를 받는 일은 없었다. 서양은 여러 세기 동안 타락/속량의 길을 걸어왔고 우리 모두의 영혼에 새겨졌다. 천주교나 개신교도 교회 능력의 95%를 여기에 쏟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성차별, 군사주의, 인종차별, 원주민 종족살해, 생태계 파괴, 소비적 자본주의와 폭력적 공산주의이다. 이제는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한다. 이 길은 성서전통 자체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가장 치유적이며 가장 여성론적인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