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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혁명

성 보나벤투라와 성 토머스 아퀴나스는 존재(being)와 선(goodness)을 같은 것으로 보았다. 실제로 우리가 순수 존재의 차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거기서 곧 심오한 선(善)을 경험할 것이다. 그것이 관상하는 이의 경지이다. 그것이 하느님 나라의 관점이다. 그것이 원복(Original Blessing)이다. 예수가 그 나라를 아신 것은 관상(contemplation)의 중심을 살아내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배운 다른 많은 형식의 기도에는 생각과 말과 독서가 요구된다. 그것들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누가 뭐래도 그것들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의식 자체의 전환 없이, 그런 기도를 할 수 있다. 예수와 마리아에 대하여 생각하고 시편을 읽고 옛 사람들의 기도문을 암송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일을 낡은 체제 안에서 한다. 그래서 여전히 에고가 활약한다. 무의식중에 우리는 생각한다. ‘내가 세계의 중심이다. 나에겐 내 느낌이 있다. 나에겐 내 견해가 있고, 그 튼튼한 곳간 안에서 이제부터 예수에 대하여 생각해보겠다.’
그래서 뭐가 어찌 된단 말인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달걀은 깨어지지 않았다. 착각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우리가 관상기도를 말하는 것은, 낡은 체제 안에서 예수에 관하여 생각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있지도 않은 에고의 경계 너머, 동떨어지고 사유화된 자아의 거짓 경계 너머, 새로운 장소로 나아가게 하는 의식의 전환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참되고 영원히 지속되는 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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