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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현재, 기독청년들의 에큐메니컬 운동을 본 적이 있는가 (4)


한국 에큐메니컬 운동과 기독청년

파국의 시대를 돌파해온 과거의 길과 현재 에큐메니컬 청년 운동이 걷는 길은 돌파할 방법과 버티는 방식이 다를 뿐 사실 동일한 길이다. 단언하건대 같은 방법일 수는 없다. 과거의 운동과 지금의 운동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시간도 다르고, 쟁점이나 의제를 소화하는 능력도 다르며, 대상도 다르다. 의제가 다양해졌고, 문제가 실타래처럼 엉켜 복잡하다. 

이에 더해 ‘청년’ 자체가 특수하게 다뤄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청년 이슈’를 직접적으로 주목했고, 청년이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 필요했다. 즉 청년의 당사자성이 중요해지고, 이 목소리에 대한민국 사회뿐만 아니라 한국교회도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교회 안팎으로 청년 이슈가 사회문제로 대두되었고, 한국교회 내 청년 이슈는 교회의 지속성과 연결되는 의제가 되었다. 그러니 과거 청년에큐메니컬 운동이 민주화 투쟁과 평화통일 운동으로 대변되는 큰 의제로 운동을 이끌었다면, 현재 청년 에큐메니컬 운동은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부문 운동과, 기독청년들에게 시대의 요구와 소명을 이해시키고 대의를 위한 운동에 이들을 참여시켜야 하는 중차대한 임무까지 도맡아 소화해야 한다. 또한 기독청년의 정체성을 갖고 현재의 교회 및 에큐메니컬 운동의 쇠퇴 원인을 파악하는 동시에 현 세대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면서, 기존 세대와 대립각을 세우며 대안까지 만들어가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주어져 있다.

이렇게 청년운동은 부문 운동이 되었다. 다양한 의제에서 청년의 목소리를 찾고 개발해야 한다. 대의라는 큰 우산 아래 있을지라도 청년만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것은 청년을 배려하거나 청년의 자리를 담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이다. 바로 30년 전에 운동을 이끌어온 이들이 여전히 ‘대의’라는 우산 아래서 한국 에큐메니컬 운동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의 목소리나 운동의 지향성은 일정 부분 강요된 측면이 있다. 분명 시간은 흘렀지만,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 과거에는 청년들이 주도적이었지만, 현재 청년은 보조적인 역할만을 강요받는다. 교단 내에서부터 세계교회협의회에 이르기까지 청년을 위한 자리와 공간은 주변부로 밀려나 있다. 과거의 청년 학생들은 바깥의 거대한 적과 투쟁하며 길들여짐을 거부했다면, 현재의 청년들은 외부의 적뿐만 아니라 자신의 공간을 쟁취하기 위해서 내부의 기득권과 투쟁하며 길들여짐을 거부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한국 에큐메니컬 진영은 다양한 의제를 담기에는 현실적으로 그 공간이 많이 협소해졌고, 그 내용도 사라졌다. 보수화된 개신교의 토양에서 다양성을 담보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그렇다면 세대나 젠더의 다양성이라도 담보해야 하지만 이조차도 어렵다. ‘기독청년’을 다음 세대로 명명하며 ‘청년’으로서의 역할에만 치중하게 만들어 운동의 체면치레만 하는 정도이다. ‘청년’이라는 구호만 존재하고 ‘청년’이라는 의제는 사라진 지 오래이다. 청년을 ‘미래’ 세대로 치부하지만, 청년들이 ‘현재’의 지도력으로 성장하지 않는 이상 미래는 없다. 

이제부터라도 청년 지도력을 키우지 않는다면, 한국 에큐메니컬의 미래는 암울하다. 이대로라면 의제는 더 단순화될 것이며, 논의가 직선적이게 됨은 물론 협의회라는 매력은 사라지고 외딴섬처럼 존재하게 될 것이다. 이 징조는 이미 청년 에큐메니컬 운동의 급격한 쇠퇴로부터 시작되었고, 이제는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국 에큐메니컬 운동이 이 상황을 돌파하지 못한다면, 극우화된 한국 개신교 문화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 뻔하다. 감히 말하건대, 기존 세대들에 대한 ‘기대’는 사라졌다. 이들에게 ‘내용’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내용이 사라졌다는 것은 에큐메니컬의 가치가 변질되거나 더 이상 기독청년들에게 ‘의미’가 없어졌다는 말이다.

같은 길일지라도 같은 방법은 없다.

폐허의 자리에서, 절망만이 들려오는 자리에서, 소수이지만 여전히 청년 에큐메니컬 운동을 위해 버티고 있는 기독청년들이 있다. 이들은 ‘에큐메니컬’이라는 같은 길은 걷고 있지만, 과거의 방식으로, 동일한 방법으로 운동을 이끌지 않는다. 비록 절망적인 자리에서 희망은 언감생심이라도 ‘죽지 않았음’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현재 청년 에큐메니컬 운동에는 의제가 있고, 그들만의 목소리가 있다. 부문 운동으로서의 한계를 지니기도 하지만 부문 운동으로서의 한계를 돌파할 지점들이 눈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비록 미미하지만 우리들만의 방식과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예전과는 다르게 지금의 기독청년들은 한국 개신교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자랐고, 그 문화에 반(反)하여 뛰쳐나왔다. 이들은 기존의 공고한 개신교 문화라는 거대한 벽을 경험했다. 개신교는 날로 극우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혐오와 차별을 조장한다. 이들은 대중에게 이익집단으로 비치기도 하고, 광적인 종교집단으로 비치기도 한다. 사회적 냉소를 당해낼 재간이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이들이 청년 에큐메니컬 운동에 헌신하는 것은 교회갱신과 사회변화에 대한 꿈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이슈들은 청년 에큐메니스트들에게는 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의 의제이다. 이 의제에 답할 선교적 사명과 신앙적으로 응답할 의무가 있다. 외면할 수 없는 시대적 요구이다. 그 의제들이 아직 시기상조라느니, 현실적이지 못하다느니 하는 충고와 조언은 논란이 된 의제의 가치와 맥락을 파악하지 못한 무지이다. 이 새로운 의제들은 세대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문제이고, 반드시 응답해야 할 사명이다.

한국 에큐메니컬 운동은 어느 순간부터 교회와 동떨어져 외딴섬처럼 존재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여러 현장의 기독 활동가들과 호흡을 같이한 것도 아니다. 의제를 발굴하고 내용을 채울 의무가 있지만, 점점 이 수고로움이 운동에서 사라지고 있다. 의제가 사라지니 다양성과 포용성도 사라지고 담론이 증발했다. 이 최대 원인 중 하나가 청년운동의 급격한 쇠퇴이다. 어찌 보면 2000년 초부터 한국 에큐메니컬 운동의 축소는 예견된 일이었다. 새로운 인물의 유입이나 도전 없이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고, ‘운동성’을 펼쳐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부터는 축소되고 위축된 에큐메니컬 운동의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해야 할 일들이 보일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의제를 발굴하고 그 내용을 채워야 한다. 내부 역량이 부족하여 돌파할 힘이 없다면, 돌봐야 할 선한 사마리아인들을 찾고 이웃이 되어야 한다. 한국 에큐메니컬 운동이 있어야 할 자리를 기억하고 그 가치를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비록 더디지만 그곳에서 소명을 발견할 수 있고, 유산을 발견하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체험할 것이다. 신앙고백과 체험이 없다면 앞으로 더 절망적인 상황에서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청년들과 학생들로 대변되는 한국 에큐메니컬 운동의 시작은 그러한 자리에서 예수를 발견했다. 벌써 우리들의 끝이 가시거리 안에 잡힌다. 한국 에큐메니컬 운동은 정말로 정신을 차려야 하고, 거듭나야 한다. 종료 버튼을 누르기에는 아직 할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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