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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다가 쓰는 물건이고? 에큐메니컬?


인생에 있어서 많은 질문을 받게 된다.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질문들도 수두룩합니다. 질문의 효용성이 시간에 따라, 시대에 따라,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질문을 가지고 세상살이를 버티고 계십니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질문보다는 그날그날의 숙제를 받으면서, 그 숙제의 답을 풀어가는 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질문들이 우리 세상살이에 유익하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됩니다. 즉답이 가능하고, 즉각 반응이 오기에 그렇습니다. 
자, 지금부터 제가 하는 질문들과 이야기들은 그렇게 우리네 세상살이 효용성이 크지 않습니다. 신앙인들에게 ‘신앙’은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입니다. 이 ‘신앙’에 대해 질문해보겠습니다. 

‘신앙’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신앙을 표현하는 단어는 나라마다 다릅니다. 다른 만큼 그 단어가 지닌 속뜻도 다르지요. 신앙(信仰)은 [믿을 신]에 [의지할 앙, 우러를 앙]입니다. 믿고 의지하는 것, 바로 절대자를 상상하게 합니다. ‘Faith’는 라틴어 ‘fides’에서 파생되었습니다. [th] 유지한다는 뜻으로 [fid] 믿음과 연결되어서, 믿음을 받아드리고 신앙생활을 떠오르게 합니다. 라틴어 fides는 신용 혹은 신의에 의미가 강하기에 절대자와의 신뢰를 어떻게 쌓을 것인가 하는 ‘관계’를 유추하게 합니다. 이만큼 ‘신앙’이라는 단어에는 신앙의 형태와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 신앙이라는 단어를 그리스도교라는 종교만 전유해서 사용하지 않습니다. 신앙은 인간 본유의 여러 모습 중 하나를 설명하는 귀중한 단어입니다. 그만큼 신앙을 통해서 인간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고, 인간군상을 보여주는 특징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신앙은 인간을 설명할 수 있는 주요한 문화유산입니다.oikumene0115.jpg
길게 돌아왔지만, 신앙이란 단어의 속뜻이 다양하듯, 신앙의 형태와 구조 그리고 절대자를 모시는 형식 또한 다채롭습니다. 대한민국의 개신교 교단만 해도 수도 없이 많습니다. 제가 속한 교단 기독교대한감리회도 성공회에서 나온 교단이고, 그 뿌리가 구세군, 성결교 등 같은 뿌리를 두고 있는 교단이 분명 존재합니다. 그렇게 굳이 따지자면, 개신교는 유대교에서 나온 것이고, 마틴 루터의 서양 종교개혁으로 개신교가 나온 것이니, 족보를 따지자면 아담과 하와까지 가야 합니다. 이들의 신앙생활 그리고 그들의 고백은 참으로 다양하고, 깻잎 한 장 차이로 갈리기도 하고, 단어 하나, 조사 하나로 갈리기도 합니다. 복잡하기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구원 논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건 정말 뫼비우스의 띠처럼 질문에 질문, 결국 다시 돌아와 그 질문에 질문을 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를 판단할 기준점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정통>입니다. 사도행전 시기부터 공의회의 역사를 통해서 지지고 볶고 갈고 닦고 했지만, 결국 ‘무엇이 전통인가’라는 질문으로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즉 신앙의 모습이 다양한 만큼 형태와 신앙고백이 다양하다 못해 중구난방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림출처 https://www.atonementfriars.org]
그리스도인이라면 으레 고백할 수밖에 없는 사도신경, 이는 신앙고백에 표본입니다. 주기도문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남긴 아주 위로가 되는 기도문이지요. 그러나 번역에 따라서, 시대에 따라서, 공의회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 차이를 우리는 이 신앙고백과 기도문을 통해서 암묵적으로 인정합니다. 또한 가톨릭, 정교회, 개신교 심지어 유대교까지 한 분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신앙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신앙인들은 한 지구에 살고 절대자를 신앙하고 추앙합니다.

그래서? 에큐메니컬은 도대체 언제 설명할건데?

제가 설명해드렸습니다. 지금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생활을 하고, 신앙하는 어디든 내가 믿는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 그리고 신앙의 효용성을 나 자신이 밟고 있는 땅 위에서 시대에 따라, 장소에 따라, 상황에 따라 고백하는 것이 에큐메니컬입니다. 에큐메니컬은 그리스어 ‘오이쿠메네’로, ‘사람이 살고 있는 땅’이라는 뜻인 <온 누리>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속한 이 땅에서 신앙의 효용성을 탐구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이웃과 생명과의 관계 안에서 신용과 신의를 쌓는 일입니다. 이는 갈라디아서 3장 28절에서 바울이 바르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은 모두 한 몸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3:28 (공동번역)

지금 서 있는 내 땅과 시간 안에서 하나님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무런 차별없이 선포하고, 모두가 역할과 효용은 다르지만 일치를 이루는 것이 에큐메니컬이고 전혀 무해한 신앙생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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