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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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의 역사를 돌파한 시대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이하 KSCF)과 한국기독청년협의회(이하 EYCK)는 한국 청년들의 에큐메니컬 운동을 대표하는 단체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 두 단체는 명실공히 한국 에큐메니컬 운동의 산실이었다. 1960-80년대에는 학생들과 청년들이 에큐메니컬 운동을 견인했다. 그뿐인가. 당시 기독청년들은 한국 민주화와 인권 운동, 그리고 통일 운동의 효시이기도 했다. 시작에는 그들이 있었다. 이를 부정할 에큐메니스트는 없을 것이다. 
1948년에 시작된 KSCF의 역사는 찬란하다. 5·16 군사쿠데타로 인한 엄혹한 상황에서부터 전태일 분신으로 인한 각성, 군사독재의 극악을 보여준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애통해하고, 1987년 민주항쟁으로까지 이어지는 굵직한 학원민주화투쟁은 KSCF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1974년 긴급조치4호로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을 포함 한 여러 핍박과 탄압이 있었지만, 시대와 역사를 관통하면서 걸출한 인물들이 등장했고, 도시산업선교와 농촌 활동으로 새로운 인물들도 길러냈다. 이들은 교계뿐만 아니라 재야에서도 통하는 인물들이었다. 그 명맥은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한풀 꺾이는 듯했지만, 평화통일을 새로운 의제로 삼으면서 기독학생 운동의 명맥을 이어갔다.

교회 내 에큐메니컬 운동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개교회와 교회연합회로 이 운동을 확산시키던 1970년 초반, ‘남산 부활절 삐라’ 사건과 이듬해 긴급조치4호로 인한 민청학련 사건으로 교회의 청년연합 운동은 그야말로 초토화되었다. 유신헌법 반대 등 시대적 요구가 다시 한번 빗발
칠 때쯤 새로운 연합 운동이 요청되었고, 1976년에 EYCK가 시작되었다. EYCK는 교회 내 에큐메니컬 운동의 확산 및 교회갱신 운동과 더불어 사회선교의 인식을 확산시키기 위해 교단별(NCCK 가맹 교단 중심) 기독청년 에큐메니컬 운동을 전개했다. 특별히 KSCF가 농촌 사회에 주목한 것과 마찬가지로, EYCK는 농촌 교회와 연합하며 기독청년 에큐메니컬 운동과 사회선교의 인식을 확대해갔다. 농촌 활동은 비단 농촌 지역의 계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EYCK 기독청년 활동가들의 교육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각 교단 연합회에서 운영하는 신선한 교육과 각종 프로그램은 대학생들과 교회 청년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또한 에큐메니컬 운동과 문화가 결합되어 전국의 교회 청년들을 매료시켰다. 1987년 이후에는 지역 EYCK가 생겨나고, 그들 스스로 개교회를 넘어 각 교단 청년연합회가 청년 에큐메니컬 운동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그곳에는 청년들이 있었고, 그곳에서는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KSCF와 EYCK는 국내 네크워크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이들은 해외네트워크로 연결될 수 있었고, 이들에게는 한국의 여러 쟁점과 의제를 해외에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해외 네트워크야말로 기독청년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기에 충분했다. 특별히 KSCF는,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의 기독학생과 연결될 수 있었다. 엄혹한 상황일수록, 기독학생들은 더 활발하게 해외로 한국의 참상을 고발하고 알렸다. 모순적이게도 이와 같은 고난의 상황으로 말미암아 해외 모금이 확장되고 증가하였으며, 해외 프로그램에 참석한 소수의 참가자들은 새로운 에큐메니컬 운동의 활로를 개척할 수 있었다. 해외 모금과 해외 프로그램은 국내의 기독청년들에게 새로운 배움을 넘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준 계기가 되었다

파국의 역사에서도 기독청년들이 1970-80년대를 버티고 버티면서 자존감을 잃지 않았던 연유는 바로 많은 해외 네트워크에서 전해지는 물심양면의 응원과 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소위 ‘돈’이 있었고, ‘기회’가 있었으며, 자아실현을 위한 ‘장소’가 있었다. 그런 청년 에큐메니컬 운동은 회원들에게 마음과 정서적 시야를 넓혀준 것은 물론이거니와 마음만 먹으면 민주화 운동이든, 교육 운동이든, 인권 운동이든, 통일 운동이든 어떠한 내용을 채워도 무방한 유연한 운동이었다.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는, 여유가 많은 운동이었으며, 구성원들의 희생과 헌신은 값지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KSCF와 EYCK로 대변되는 기독청년 운동은 1990년대 말 이후 급격한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이 급격한 축소는 한국교회를 당혹스럽게 했고, 2022년 현재 한국 기독청년들은 똑같은 자리에서 그 좁아진 터를 밟고 위태롭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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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한기연 KSCF 연합 전태일 열사 추모 예배
한국기독학생총연맹(KSCF) 홈페이지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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