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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 에큐메니칼운동이 생기를 되찾으려면


남재영 목사( 대전 빈들공동체교회, 영성학 Ph.D)


들어가는 말

발제자는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상임의장과 NCCK 정의평화위원장, NCCK 인권센터 부이사장을 거쳐 현재 NCCK 비정규직대책 한국교회연대 상임의장과 실행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에큐메니칼(이하 에큐)운동을 하면서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의 현장과 결합된 활동을 주로 해왔고, 대전지역 동료목회자들과 함께 약 6년 전부터 매년 1월 NCCK 일치주간에 가톨릭교회와 함께 일치기도회를 주관하고 있다. 올해 김상근 목사를 중심으로 에큐원로모임이 만들어지면서 매달 원로모임을 코디네이트하는 기획위원(감리 남재영 목사, 기장 정진우 목사, 예장통합 정금교 목사)으로 섬기고 있다.

나름 오랜 세월을 에큐운동에 헌신해 왔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나, 어느 덧 은퇴를 준비해야하는 때가 되었다. 발제자가 목회를 하는 빈들공동체교회는 지난 10월 첫째 주일 ‘당회를 준비하는 장로수련회’를 갖고 은퇴 3년이 남은 빈들공동체의 후계목사를 선임 발표했다. 올해 12월 당회 이후 후계목회자는 1년차에 빈들공동체 목회를 위한 학습을 하고, 2년차에는 담임목사와 공유목회를 하게 되고, 3년차에는 발제자의 안식년으로 후계목사는 예비 담임목회로 사역하게 된다. 그리고 안식년을 마치면서 2026년 연회에서 은퇴하고, 후계목회자는 담임목사에 취임하게 된다.

감리교 에큐운동의 현실에 대한 염려를 처음으로 이야기한 자리에서 발제자는 감리교의 에큐적인 친교를 ‘관성적 친교’라고 표현했다. 오랜 세월을 에큐현장을 지켜왔고, 또 영성을 전공한 입장에서 발제자가 사용했던 ‘관상적 친교’라는 표현은 에큐운동 안에서 친교가 모두가 함께 한 걸음씩 같이 가는 영적여정의 의미가 있고, 우리 안의 학연이나 지연이나 써클이나 그 어떤 차이를 다 뛰어넘어-우리 친교의 최상의 가치를 표현하는 ‘주님 앞에서의 친교’라는 의미에서-에큐메니칼적인 친교를 ‘관상적인 친교’라고 정의한다. 오늘 이 자리가 ‘관상적인 친교’가 실현되는 자리이기를 기도하면서 발제를 준비했다.

개인적인 사설을 이렇게 하게 된 까닭은 이제 발제자가 살아온 삶을 하나하나 정리해야 할 때가 되었고, 추하지 않게 잘 정리하고 싶은 소망 때문이다. 평생을 에큐진영과 사회선교 현장에서 함께 활동해온 <모지리 친구>들과 격의 없이 자주 만나면서 선배 된 우리가 감리교회와 후배들을 위해서 최소한 두 가지는 하고 퇴장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 하나는 현장의 후배들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거룩한 동행’이고, 다른 하나는 감리교 에큐운동의 새로운 비전을 세우는 문제였다. ‘거룩한 동행’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오래전부터 차흥도 목사를 준비해오셨다.

현장 후배활동가들을 후원하는 문제와 현장 선교사 제도를 실현하는 문제를 위해서 차 목사는 등푸른 생선이 바다를 누비듯이 다니고 있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고 믿는다. 발제자는 최근 에큐운동의 큰 성과를 WCC총회에 감리교청년활동가들이 대거 참관한 점과 박도웅 목사의 중앙위원의 선출을 꼽는다. 이번 WCC총회 참석은  감리교 에큐 미래 지도력을 위해서 큰 성과를 남겼고 여기에는 에큐위원장 이광섭목사의 노고가 컸다는 점도 충분하게 듣고 있다. 그러나 이 성과가 감리교 에큐운동에 새로운 생기로 이어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현재까지-감리교 에큐진영은 거의 식물화 되어 있었다. NCCK를 중심으로 요청되는 에큐현안에 대해서 감리교 에큐진영 안에서 논의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그 결과 정돈된 입장이나 메시지가 나올 수 없었다, 더하여 에큐운동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훼손하는 사안-일례로 NCCK 총무의 노태우 장례식 참석-에 대해서조차 감리교 에큐진영에서는 공식적인 논의나 입장이 없었다. 여기서 공식적인 논의나 입장을 내는 주체는 당연히 에큐위원회를 말한다.

또 수년 전부터 심각한 감리교회 내의 현안으로 떠오른 평신도 단체와 반동성애 단체의 안티-NCCK, 안티-WCC운동에 대한 에큐진영의 대응력은-이 사안이 처음 불거진 그때나 지금까지 아무런 대항력을 가지지 못한 채-진공상태에 있다. 이 사안을 개인적인 정의감으로 대응했던 에큐진영의 목회자들 가운데는 목회현장에서 연회평신도단체장들로부터 개인적인 수모와 위협을 받기도 했다(아산 송악교회 이종명 목사 사례). 감리교와 통합측의 평신도 단체가 주도한 안티-NCCK, 안티-WCC운동은 2016년 서경석 목사를 통한 국정원의 공작설이 나돌았다.

아직까지도 평신도단체들과 NCCK 탈퇴와 WCC 탈퇴를 강력하고 조직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감리교바르게 세우기연대(이하 감바세)’를 비롯한 반동성애 단체들이 가세하고 있다. 저간의 사정이 이러함에도 그동안 감리교 에큐진영에서 공식적이고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점들을 극복하기 위하여 오늘 이 자리가 마련되었다. 정책협의회의 말머리를 떼는 기회를 갖게 해준 에큐 위원장 이광섭 목사와 정책협의회 준비 실무를 맡은 일꾼들 그리고 함께 참여해서 부족한 발제를 들어주는 분들에게 먼저 고마움을 전하고-본론에 들어가겠다.

자랑스러운 에큐운동과 주류한국교회

종로5가 NCCK가 상주하고 있는 기독교회관은 민주화의 성지로 불리고 있다. 1970년 11월13일 전태일 열사의 분신은 한국교회가 인권문제에 눈을 뜨도록 했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가 조국근대화라는 미명하에 1960~70년대 민중들을 가혹하게 수탈했다. 그 상황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인권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 시절 감리교 청년 전태일의 죽음은 한국교회가 인권에 눈을 뜨고, 신학적으로 민중신학을 태동시킨다. 전태일의 죽음 이후 1971년 9월 도시빈민선교를 위한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가 결성된다. 1971년 감리교와 예장통합, 기장 교단별 산업선교회는 1971년 ‘한국도시산업선교연합회’를 구성한다.

1973년 남산부활절연합예배사건으로 박형규 목사가 구속되고 나서 NCCK는 인권선언을 채택한다. 1974년 4월 NCCK 인권위원회를 발족시키면서 한국교회가 인권문제를 대응하는 제도적인 틀을 갖추게 된다. 인권문제는 당연히 반유신 민주화운동과 결합하여 1970년대 한국교회를 특징짓는 자랑스러운 역사로 기록되어 있다. 박정희 유신독재와 전두환 군사독재와 투쟁에서 민주화운동은 좌경용공으로 매도당하면서 남북의 분단문제를 정리해야할 절실한 필요를 느끼게 된다. 그 결과 1988년 2월 29일 서울 연동교회에서 열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회에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 기독교회 선언(88선언)'이 선포된다.

역사에 길이 남을 88선언은 한국 사회의 민간영역에서 나온 최초의 평화통일선언이었다. 88선언은 기독교가 민족분단의 아픔을 품고 있으면서 이념적으로 북한을 적대해온 교회의 죄책을 최초로 고백하고, 한반도의 평화통일에 대해 신학적·정책적 정의와 교회의 나아갈 길을 밝혀 한국교회의 공식적인 통일운동의 교과서가 되었다. NCCK를 중심으로 70년대 인권운동과 결합된 민주화운동 그리고 80년대의 통일운동은 우리 민족의 역사에 정의를 실현하는 큰 획을 그은 자랑스런 역사였다. 그러나 이 자랑스러운 역사가 주류한국교회의 역사는 아니었다.

주류한국교회의 역사는 일제 식민지 시대부터 시작되어, 특별히 유신독재와 군사독재시대를 거치면서 능동적으로 권력의 편에 서서 권력의 요구에 협조내지는 부역해왔다. 친일부역행위는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명분을 들었고, 독재권력 하에서는 교회의 부흥과 성장이라는 명분으로 권력에 적극 부역했다. 부흥과 성장은 영성의 논리가 아닌 경제논리이다. 이 논리가 주류한국교회가 추구해온 최상의 가치였다. 교회가 부흥할 수 있다면 그 권력의 통치 성격이 제국주의(일제)냐, 점령군(미군정)이냐, 독재권력(두 번의 군사쿠데타)이냐를 전혀 따지지 않았고-적극적인 유착과 부역으로 부흥과 성장을 도모해왔다.

수구보수이념으로 오염된 부흥과 성장의 검은 역사

부흥과 성장이 최고의 가치를 삼은 주류한국교회는 어떤 권력이든지 그 권력이 형성되는 과정의 정통성은 중요하지 않았다. 반공과 숭미라는 주류한국교회의 정치적 이념적 코드와 일치하면 그 권력과 야합하여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면서, 교회는 이를 부흥과 성장의 역동으로 삼았다. 주류한국교회의 부흥과 성장의 역사는 곧 불의한 독재권력과 야합하여 적극적으로 부역한 역사였다. 교회가 영혼을 팔아서 불의한 독재 권력을 옹호하고 지지했던 역사였다. 그래서 주류한국교회는 성장하면 할수록 극우보수화는 더 가속화 되었다. 박정희와 전두환 시대 대규모로 신자들을 동원했던 대형집회는 모두 516광장(여의도광장)에서 열렸다.

박정희는 1972년 10월 17일 유신을 선포와 함께 군을 동원하여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한다. 국회 해산, 정당 활동 중지, 일부 헌법의 효력 정지 등의 비상조치를 발표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를 구성했다. 11월 21일 국민투표로 유신 헌법을 확정한다. 유신헌법에 따라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은 12월 23일 박정희를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12월 27일 취임했다.

유신을 완성한 박정희는 한경직 목사에게 신년인사 편지를 보낸다. “유신의 과업 수행에 헌신할 것을 다짐하오니 아낌없는 지원 있으시기” 바란다는 내용이다.  이 편지를 받은 한경직은 그 해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을 초청하여 여의도에서 5월 30일부터 닷새 동안 연인원 300만명, 6월3일 하루 110만명을 동원하는 당시 최대 대규모부흥집회를 개최하는 것으로 갓 출발한 박정희의 유신체제를 응원한다. 이후 한국교회는 박정희 유신체제가 흔들릴 때 마다 여러 방법으로 박정희를 응원한다.

1974년 박정희는 중앙정보부를 동원하여 민청학련을 조작한다. 그 때 김준곤은 엑스폴로 74를 열었다. 8월 13일부터 8월 18까지 CCC 창시자이자 세계적인 반공주의자 빌 브라이트를 초청하여 박정희의 민청학련 조작사건을 옹호한다.

1975년 4월 9일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고인들 8명이 대법원에서 최종 사형 확정선고를 받자 유신독재권력은 18시간 만에 전원 사형을 집행한다. 박정희 정권의 이 사법살인에 대한 세계적인 비난이 일자 이를 무마하기 위하여 한경직은 4월 24일 무역회관에서 18개 교단의 지도자를 초청하여 <기독교범교단지도자협의회(가칭)>를 급조하고, 자신이 임시의장을 맡아 국가안보와 교회의 입장을 발표하기로 한다.

그리고 1975년 4월 28일 영락교회에서 18개 교단 지도자들이 모임을 갖고 “한국교회는 최근 인도차이나 사태와 이에 따른 전 아시아에 있어서 공산주의의 위협을 의식하며 또 북한공산주의자들의 무모한 남침위협이 날로 더 해 가고 있다”고 밝히고 한국교회는 인류 공동의 적인 공산주의 침략을 대항하여야 하는 큰 과제를 앞에 놓고 교리문제나 이해관계, 사소한 견해 차이를 초월하자”는 성명을 발표한다.

1975년 6월22일 ‘나라를 위한 기독교 연합기도회’는 인혁당 사건으로 국제적으로 위기에 몰린 박정희를 지원하기 위한 반공기도회로 한경직이 주도하여 18개 교단에서 40만명의 신자들이 동원되었다. 여기서 한경직은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지금 남침야욕에 혈안이 돼 있다“면서 "나라 없이는 신앙도 자유도 재산도 모두 잃게 되므로 자유 민주국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온 국민이 깨어나 함께 기도하자”고 설교했다.

1977년 8월15일~17일 ‘77민족복음화대성회’는 150만 신자들이 동원 되었다. 1976년 11월 2일 주한미군 철수를 선거공약으로 내건 지미 카터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후 미군 철수 문제로 한미관계가 냉담해지면서 박정희 정권이 위기를 겪게 되자 주류한국교회는 ‘77민족복음화 대성회’를 열고 위기의 박정희에게 힘을 실어준다. 이 대회에서 국민 모두가 하나로 뭉쳐서 승공이념을 투철히 하고 국력배양에 힘쓰도록 하겠다는 취지에서 “우리는 계속 복음화의 기수가 될 것을 다짐한다. 김일성 북한 괴뢰정권은 침략야욕을 버리고 정부의 통일 노력에 호응하라. 미국은 주한미군 철수를 중지하고 우방으로서 신의를 지키라”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이렇게 신자들을 동원한 대형집회들은 내건 슬로건과 무관하게 모두가 박정희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반공집회였다. 한국교회는 박정희를 지원한 이 대형집회를 통하여 부흥과 성장의 역동을 삼았다. 그 결과 박정희 집권 시 교회는 첫 해-1961년 60만7천여 명이던 개신교 신자는 박정희가 사망한 1979년 598만여 명으로-박정희 집권기간 동안 884.3%가 늘어나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부흥과 성장의 역사를 쓴다.

광주 518학살 주범 전두환이 집권할 때도 교회는 팔을 걷어부치고 나선다 80년 8월 6일 그 전날 대장으로 승진하고 예편한 전두환을 위하여 롯데호텔 에메럴드룸에서 기도회를 개최한다. 이날 기도회 이후 한국교회는 1980년 8월 11일부터 8월 15일까지 “오늘의 민족 복음화는 내일의 세계 복음화”를 주제로 ‘80 세계복음화 대성회’를 개최한다. 270만이 동원된 이 집회에서 한경직, 김준곤, 빌 브라이트 등 14명의 강사들이 설교를 한다. 여기서 한경직은 “한국교회가 세계선교에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할 것을 강조하고 또한 전 한국민족이 복음화 될 때 정의로운 사회가 건설되고 나아가 민족의 숙원인 통일이 달성될 것”이라고 표방하면서 전두환의 허울뿐인 ‘정의사회 구현'에 분칠을 해준다.

이 집회 이후에 전두환의 집권 행보는 빠르게 진행된다. 8월 16일 최규하 대통령을 사임시키고, 8월 21일 전국주요 지휘관회의에서 전두환을 대통령에 추대하기로 결의하자 8월 27일 통일주체국민회의는 장춘체육관에서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9월1일 제11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한국교회가 518학살주범 전두환에게 또 레드카펫을 깔아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권력과 유착 내지는 부역으로 교회는 일제강점기로부터 전광훈 현상에 이르기까지-교회다움을 상실하게 만들었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방기했다. 교회는 신앙적으로 내면화시킨 반공주의로 자신의 행태를 정당화시켜왔다.

분단 현실에서 교회는 민족의 이익을 고려하기 보다는 북한을 ‘붉은 용’으로 악마화하면서, 미국을 구세주로 추앙했으며, 반공과 친미로 민족 내부의 대결과 적대를 극대화시켰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권력을 적극 편들고 부역하면서 막대한 기득권을 쌓아왔다. 교회는 한국전쟁까지도 민족적인 비극으로 이해하기보다 외국에서 쏟아지는 구호물자를 배분하며 사회적 영향력과 기득권을 쌓아가는 기회로 삼았다. 주류한국교회는 박정희 유신독재와 전두환 군사독재의 강압이 아닌 자발적인 부역을 통해서 수구보수적인 이념으로 스스로 오염을 자초했다.

민주정부 ∙ 주류한국교회 ∙ 전광훈 현상

주류한국교회에게는 민주정부가 문제였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주류한국교회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우선 한반도 문제와 관련하여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와 촛불정부로 불린 민주정부는 각각 ‘햇빛정책’과 ‘평화번영정책’과 ‘한반도평화프로세스정책’으로 군사적 적대와 대결을 지양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의 공동번영을 내용으로 하는 대북포용정책을 폈다. 공산주의자들을 붉은 용으로 사탄으로 규정하고 이를 신앙적으로 교리적으로 내면화시켜온 한국교회는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여 6.15선언을 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반공주의는 주류한국교회의 형성과정에서부터 붙잡고 있었던 전가의 보도였고 강력한 무기였다. 주류한국교회의 입장에서 보자면 6.15선언은 권위주의시대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아성을 쌓아오는 동안 전천후로 휘둘러온 반공주의라는 무기를 빼앗기는 사태였다. 민주정부의 한반도평화정책은 반공주의를 현저하게 약화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주류한국교회는 반공주의를 자신을 방어하는 칼로 사용하고 있다. 다만 그 방향이 북한을 향하던 칼끝을 민주정부를 겨누는데 사용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해서 주류한국교회는 이렇게 비난한다.

“대통령의 친북 정책은 단순한 친북이 아닌 종북을 넘어 이젠 대놓고 김정은의 대변인이 되어 오직 희대의 악인인 김정은의 체제 보장과 UN의 제재를 풀고 김정은을 구하기에 혈안이 되어 줄기차게 남북정상회담, 미북정상회담을 주선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주류한국교회의 반공주의는 문재인 정부를 공산사회주의 정권으로 낙인찍고 선거를 체제전쟁으로 몰아갔다. 이러한 극단적인 반공주의로 무장한 체제전쟁은 수구보수적인 주류한국교회를 결집시키는 이데올로기적 도구로 지난 대선에서 삼각산기지(청와대)를 탈환하고, 보수정권으로 권력을 교체시켰다. 한국 사회의 극우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세력이 전광훈 목사이다.

전광훈은 태극기집회 등 극우세력 활동의 중심을 이루고 있고, 각종 극우적 성향의 정치 논리들을 하나님의 뜻이라 믿으며 행동하고 유포하고 있다. 주류한국교회는 대표적인 극우주의자 전광훈을 선지자로 호명하여 체제전쟁이라는 황당한 논리로 대선 판에 뛰어들어 정권을 교체했다. 전광훈은 2020년 광복절에 8.15광화문집회로 국가의 코로나19 방역체계를 붕괴시키고, 제2차 코로나 대유행으로 지탄을 받았다. 당시 전광훈은 코로나 방역체계를 문재인 정부의 대국민사기극으로 규정했다. 광장집회에서 전광훈의 주장이나 논리나 국가 최고통수권자에 대한 험악한 막말이 전부였다.

몰역사적인 주장이나, 시대정신을 거슬러가는 그의 언행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고 근거도 없는 막말이었다. 체제전쟁으로 드러난 전광훈 현상으로 주류한국교회는 그동안 드러나지 않은 뿌리 깊은 사회적 적폐를 날 것 그대로 노출시켰다. 전광훈 현상은 주류한국교회의 파탄 난 영성과 반시대적인 신앙을 총체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87년 이후 시민사회의 영역은 날로 확대되었다. 사회적으로 공공성에 대한 요구가 점점 상승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대형교회의 수구적인 반작용(反作用)이 전광훈을 선지자로 호출하게 된 배경이다. 전광훈 현상은 대형교회의 절실한 필요성의 산물이었다.

이런 현실에서 대형교회를 대신하여 민주정부와 대리전을 치르는 자신들의 전사이자, 주류한국교회의 이해를 관철시키는 정치적 선지자로 전광훈을 호명한다. 이것이 전광훈 현상이 출현하게 된 배경이다. 민주정부 하에서 주류한국교회는 과거 독재 권력과 야합하며 누렸던 “지난날의 영광이 줄어드는 것을 실감했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과 같은 정치인들이 교회의 힘을 인정하고 두려워 해주기를 은근히 기대했다.…이런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반기독교 정권”으로 낙인을 찍었다. 더하여 스스로 권력이 되기 위하여 2004년 이후 총선 때마다 기독교 정당을 창당하여 의회진출을 시도해왔었다.

기독교 정당 창당 시도는 민주주의 발전으로 변화된 정치사회 환경에 대한 주류한국교회의 실존적인 초조감을 반영하고 있었다.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로부터 소외를 당하고, 또 자신들의 기득권이 제한당하고 있다는 상실감에 대한 분노를 수구보수적인 주류한국교회는-이미 사회적으로 수구보수 정치세력화에 성공하여 상당한 동원력까지 갖추고 있는 전광훈을 지원하면서 그를 통해서 대리 표현했다. 광화문 국민촛불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2020년 21대 총선에서 보수정치세력이 대패하자, 주류한국교회는 반공과 동성애 반대로 전선을 형성하여 문재인 정부와 격하게 대립각을 세운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가 상승하면서 반공주의가 적대 이데올로기 기능이 약화되자 주류한국교회는 동성애에 대한 혐오를 대중화시키면서 차별금지법을 국회 입법화하려는 문재인 정부에 대하여 증오감을 드러낸다. 수구보수세력에게 차별금지법은 약화된 반공이데올로기를 보완하는 새로운 정치적 무기였다. 주류한국교회는 혐오의 대상을 동성애에서 찾았다.

전광훈의 체제전쟁과 한국교회 수구보수연합전선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만큼 독재 권력과의 야합으로 성장하고 부흥한 교회가 쌓아온 성역화 된 기득권은 점점 협소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가면 한국교회가 누려온 모든 기득권을 모두 상실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주류한국교회의 그릇된 기득권에 대한 애착이 전광훈을 정치적인 선지자로 호명하게 되었다. 주류한국교회의 전광훈 현상은 반공과 친미, 친독재 권력 친화적인 토양에서 성장해온 주류한국교회의 ‘영성 없는 성장’이 낳은 수구보수적인 체질이자, DNA로 파악해야 한다. 이런 현실에서 주류한국교회와 대형교회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전광훈의 연합군으로 참여한다.

그리고 지난 대선에서 ‘체제전쟁’을 고리로 보수정권으로 교체하기 위해 전광훈에게 힘을 몰아준다. 정권교체가 수구보수적인 주류한국교회의 자기 이해와 맞닿아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주류한국교회는 체제전쟁을 위하여 전광훈과 연합전선을 형성했고, 체제전쟁에 최선을 다한 결과 지난 대선에서 실제로 정권교체에 성공했다.[24만7077표(0.73%)]

1) 전광훈의 체제전쟁과 주류한국교회

2020년 총선에서 지선까지, 네 번의 선거에서 주류한국교회를 관통하는 열쇳말은 체제전쟁이었다. 보수화된 주류한국교회의 체제전쟁은 돌출적이고 기행적인 목사 전광훈을 정치적인 선지자로 호명하여 전광훈 현상으로 판을 키웠다. 전광훈은 광장의 집회에서 문재인을 간첩으로, 문재인 정부를 공산사회주의 정권으로 규정했다. 북한 김일성 주체사상 영향을 받고 전향하지 않은 주사파 출신들이 점령하고 있는 문재인의 청와대로부터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지키기 위해서 총선과 보선과 대선을 체제전쟁으로 선포한다. 여기에 주류한국교회는 구국기도회 <한국교회 기도의 날(이하 기도의 날>로 호응한다.

소위 복음주의권 목사들이 2020년 2월12일부터 총선 당일까지 매주 수요일에 연 시국기도회 <말씀과 순명>에서 홍정길 목사도 총선을 체제를 선택하는 선거라 하여 전광훈을 편든다. <말씀과 순명>이 진행되는 와중에 온누리교회와 지구촌교회 애국장로회는 체제전쟁으로 시국선언을 선언한다. 이후 온누리교회의 애국장로회를 중심으로 대형교회 장로들이 전면에 나서 대한민국장로회(대장연)를 결성하고, 대장연은 체제전쟁을 위하여 2020년 8월 15일 전광훈의 광화문집회에 30만 장로들을 동원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장로들의 움직임은 거침이 없었고, 전광훈을 정치적인 선지자로 두둔한다. 주류한국교회는 지난 선거를 체제전쟁으로 규정하고 전광훈과 연합전선을 형성했다.

2) 보수우익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전광훈의 2019년

2019년은 전광훈에게 행운의 한 해였다. 그 해 벽두 1월에 전광훈은 한기총 회장이 된다. 3월 20일 당시 야당 대표가 되긴 했으나 당내기반이 든든하지 못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만난다. 인사차 찾아온 황교안에게 “황 대표님은 신앙이 훨씬 깊으시고 신학 공부도 하실 정도이니, 나중에 하나님께서 청와대로 보내시더라도 끝까지 교계 목사님들의 지도를 잘 받으신다면 끝까지 성공하실 것”이라고 덕담을 한다. 누가 봐도 전광훈은 황교안의 한 수 위에 있었다. 11월 20일 황교안이 지소미아를 반대하며 청와대 앞에서 단식을 할 때 전광훈이 찾아간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겠다는 황교안에게 전광훈은 “대표님 국회에서 (농성)하는 것은 무효다. 저녁에 저하고 같이 눕자. 대표님 이 자리 떠나면 안 된다”고 충고한다. 그 자리에서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은 “전광훈 목사님 한국기독총연합 만세! 황교안과 한국당 만세! 위대한 대한민국 만세!” 만세 삼창을 외쳤다. 전광훈은 6월 6일 “대한민국이 문재인 정권으로 인하여 종북화, 공산화돼 지구촌에서 사라질지도 모르는 위기를 맞이했다”며 문재인 하야 성명을 발표한다. 9월 20일 전광훈은 김무성, 홍준표, 김문수, 심재철, 오세훈, 이문열(작가)과 함께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 결성식을 갖는다.

전광훈 자신이 총괄 대표를 맡고, 총괄 본부장은 이재오(전 특임장관)가 맡았다. 여기서 전광훈은 “사회단체 및 개인은 작은 차이를 극복하고 대동단결해서 문재인 하야 할 때까지 범국민적인 투쟁을 해나가겠다”고 선포한다. 또 이 자리에서 10월 3일 광화문에서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대회를 연다고 밝힌다. 2019년 한 해 동안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전광훈은 무시할 수 없는 보수우익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당시 주류한국교회는 과거의 영광이 줄어드는 것을 실감했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과 같은 정치인들이 교회의 힘을 인정하고 두려워 해주기를 은근히 기대해 왔었다.

이런 기대가 충족되지 않자 문재인 정부를 종북좌파 주사파 정부로 낙인을 찍는다. 그런 한편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을 발휘하면서 광장집회를 주도하는 전광훈을 통해서 이제는 주류한국교회가 정권에 함부로 무시당하지 않아도 될 모멘텀을 찾았다. 그래서 전광훈을 정치적인 선지자로 호명한다. 그리고 전광훈이 이미 구축해 놓은 체제전쟁에 적극적인 우군으로 참여한다. 그런데 목사들의 태도는 매우 정직하지 못했다. 드러난 영역에서는 끊임없이 전광훈과는 거리를 두는 것처럼 표방하면서 실질적으로 내통하는 이율배반적인 입장을 유지해 나갔기 때문이다.

주류한국교회의 구국기도회 <한국교회 기도의 날>

2019년 9월19일 <한국교회 기도의 날(이하 기도의 날)>을 총괄하는 한국교회기도연합의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갖는다. 기자회견에서는 전국 17개 광역시 기독교연합회와 226개 시군구기독교연합회와 기독교단체들이 연합 주관하여 10월 3일 서울 시청 앞에서 <기도의 날>이라는 구국기도회를 연다고 발표했다. <기도의 날>을 준비하는 한국교회기도연합의 홈페이지에는 한겨레신문의 탐사보도로 거짓 뉴스의 온상으로 판명된 극우보수주의자인 에스더선교회 이용희 대표가 동영상으로 참석을 독려해 눈길을 끌었다. 10월3일 광화문은 지근거리에서 3개의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전광훈이 주도했던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대회’는 오후1시부터 5시30분까지, 도로 건너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는 오후1시부터 2시까지 자유한국당이 ‘문재인정권규탄대회’를 마치고 전광훈 집회에 합류한다. <기도의 날>은 낮12시부터 2시30분까지 서울 시청 앞에서 열렸다. 전국각지에서 모인 많은 수의 참석자들은 기도회를 마치고 전광훈 집회에 합류한다. 순수함을 강조해온 <기도의 날> 주관자들의 비루함과 꼼수가 ‘눈 가리고 아웅’한 날이었다. <기도의 날>은 일체 정치적인 구호나 이념적 색채를 배제한다고 누누이 밝혔다. 그러나 기도회 당일 배포된 순서지 5면의 기도제목은 전혀 달랐다.

“(1)대한민국이 매우 위험합니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무너뜨리고 사회주의, 공산주의 국가로 가게 하려는 시도를 막아”달라는 내용부터 (5)“대한민국을 적화하려는 자들과 해치는 자들의 모든 계략과 도모가 헛되게”, (6)“국가안보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해 올바른 이해와 신념을 확고하게”, (12)“공산주의, 전체주의, 사회주의, 종북주의, 주체사상의 실상을 알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주의에 상반되는 사상의 배격”한다는 내용은 전광훈의 수구우익적인 주장과 같은 초록이고 동색이었다. <기도의 날>은 표방했던 정치적인 중립과 전혀 다르게 수구로 오염된 정치판에 깊숙하게 발을 걸치고 있었다.

<기도의 날>을 위하여 각 지역은 모임을 갖고, 시국선언을 발표하기도 한다. 부산, 대구, 울산, 경남, 경북, 충남, 호남 등에서 발표한 시국선언문은 전광훈의 논리를 그대로 빼다 박은 내용들이었다. 대구 경북 부산 울산 경남지역의 2차 특별 시국선언문에서 “이 나라 자유 대한민국을 정녕 사회주의 공산주의 국가로 전복시켜 북한의 김정은에게 바치려고” 한다는 내용은 전광훈의 논리를 그대로 복사해서 붙인 내용들이다. 이런 내용으로 참가를 독려하면서 <기도의 날>은 같은 날 “전광훈 목사가 주도하는 집회와 전혀 무관”하다고 선전했다.

오랫동안 전광훈 집회를 취재한 한겨레신문의 성한용 선임기자는 이날 개천절 광화문 집회는 평소와 다른 두 가지 특징이 있었음을 지적했다. 하나는 집회 참가자들의 문재인 정부를 향한 증오가 전보다 훨씬 강해졌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인들의 선동이 훨씬 거칠어졌다는 것이다. 이날 집회에서 정치인들이 전광훈을 닮아갔다는 말이다. 전광훈의 영향력은 그만큼 커졌다. 성 선임기자는 “광화문의 전광훈 세력은 반문재인 성향 유권자들을 최대한 자극해서 분노를 조직화하는 방식으로 내년 4월 15일 총선을 치를려고” 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그날 집회에는 “선동만 난무하고 정치는 사망했다”고 논평한다.

복음주의 대형교회가 주도한 시국기도회 <말씀과 순명>

21대 총선 전인 2020년 2월12일 홍정길 목사를 비롯하여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 원로), 정주채 목사(향상교회 원로), 유기성 목사(선한목자교회), 이재훈 목사(온누리교회), 주승중 목사(주안장로교회),  지형은 목사(성락성결교회),  화종부 목사(남서울교회) 등 8명이 초청자가 되어 <말씀과 순명>이라는 시국기도회를 연다. 이 기도회는 10주 동안 매주 수요일에 열리고 총선 당일 마치게 된다. 기도회 첫날 설교시간 홍정길 목사는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한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께서 취임하시면서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하는 나라를 세우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모두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올해 1월 6일, 이인영 민주당 원내총무가 선거 이후의 포부를 말하면서 제시한 것들은 다 사회주의 정책이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악전고투하면서 여기까지 발전시켜온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체제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체제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을 갖게 됩니다.…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다음 선거를 치러야 합니다.…이제까지 선거는 좋은 사람과 정책을 가진 정당을 뽑는 것이었다면, 이번 4.15일 선거는 체제를 선택하는 선거인 것이 더 분명해져 가고 있습니다.”

홍 목사도 총선을 ‘체제를 선택하는 선거’로 규정했다. 이 설교가 있고 난 다음 기윤실의 실무자들은 이사장을 지낸 홍 목사에게 “설교의 마지막 부분에 집권 민주당이 사회주의 정책과 체제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는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지킬 것인가 사회주의 체제로 갈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는 요지의 말씀은 많은 성도들을 당황하게 했”고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사회주의 체제나 전체주의 체제로 가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많은 논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며 홍 목사에게 해명을 요청하는 글을 보낸다. 여기에 반발하여 홍 목사와 막역한 손봉호 장로는 기윤실 자문위원장직을 사퇴한다.

결국 사퇴는 기윤실 안에서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총선을 체제를 선택하는 선거로 규정한 홍 목사의 발언은 해프닝으로 볼 수 없다. 민주당과 문재인 정권을 공산사회주의로 낙인을 찍고 전광훈을 지원하는 것을 나라를 구하는 애국운동으로 미화하고 있는 현실에서 홍 목사의 “체제를 선택하는 총선”은 전광훈 현상을 확대재생산하려는 편을 응원했던 것이다. 홍 목사는 전광훈과는 전혀 다른 고상한 품격으로 전광훈의 체제전쟁에 힘을 실어주었다. <말씀과 순명>은 고의든지 미필적 고의든지 체제전쟁에서 전광훈의 우군으로 함께 발을 담근 것이다.

대형교회 애국장로회와 대한민국장로회

<말씀과 순명> 시국기도회가 진행 중인 3월 3일 온누리교회 애국장로회는 시국선언을 한다. “문재인 정권, 주사파 정권은 좌가 아니다. 종북 좌파에다가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가려고 하는 그런 집단”에 대해서 “교회 안에서 함께 공산주의에 대항해야”한다는 내용이었다. 3월 21일에는 지구촌교회도 “여당 원내대표(이인영 의원)는 총선 후 토지공개념, 동일노동 동일임금, 언론·종교 등의 조정 필요성을 언급했으니 이는 공산화로 가는 길이 아닙니까? 공산화가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예배를 올릴 수 없”다는 내용으로 시국선언을 한다. 두 교회의 담임목사는 <말씀과 순명>의 8인 멤버들이다.

논란이 되자 두 교회는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라고 했으나, 기도회가 진행 중에 나온 시국선언이었다는 점이나, 시국선언의 내용이 홍정길 목사의 발언과 일치한다는 점이 주목된다. 체제전쟁이라 했던 총선이 참패로 끝난 뒤-5월 9일 온누리교회에서 애국장로회 임시총회를 개최한다. 이재훈 담임목사가 직접 설교를 하고,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와 정홍원 전 국무총리도 참여해 축사와 격려사를 했다. 이후 장로들의 체제전쟁을 위한 발걸음은 빨라진다. 영락교회, 명성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 온누리교회, 지구촌교회, 새문안교회, 소망교회, 성남신광교회, 서울해방교회, 무학교회 등 수도권의 대형교회 장로들이 결집한다.

7월 7일 대형교회 장로들은 대한민국장로연합회(이하 대장연)를 결성한다. 대장연은 25개 주요 교단 장로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장연은 창립 취지문에서 “문재인을 중심으로 한 주사파정권은 지난 3년 동안 이 나라의 정치, 경제, 외교, 산업, 국방, 교육 등 모든 영역을 파괴하고 4.15총선의 불법적인 승리로 헌법 개정과 각종 법령들을 개정하여 사유재산의 국유화와 종교와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체제로 변화시키고 있다…자유대한민국의 체제수호와 국가 정체성 회복을 위해 싸우기 위해 대장연을 설립한다"고 밝혔다. 이후 대장연은 8월 5일 한국기독교연합회관에서 전광훈의 815광화문집회에 참여할 인원을 대대적으로 동원하기 위하여 모임을 갖는다.

이 자리에서 대장연의 815광화문 집회 총괄 지휘를 맡은 온누리교회 이한열 장로는 다음과 같이 주장을 한다.

“이제 대한민국은 체제전쟁이 이미 돌입했다. 자유민주주의체제냐 공산사회주의체제냐를 놓고 전쟁 중이다. 솔직히 전세는 자유민주주의가 열세에 있다. 주사좌파 척결하고 문재인을 몰아내어야 한다.…삼각산 기지-세상말로는 청와대라고 한다. 이걸 탈환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소멸될 수밖에 없다. 이제 (대선이) 20개월이 남았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시간이다. 그 전초전이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이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의 보궐선거는 대선을 위하여 장로들에게 하나님께서 멍석을 깔아준 것이다. 사돈팔촌과 유치원 동창까지 찾아서 선거가 끝날 때까지 관리해야 한다.“

이 발언은 서울 부산의 보선을 잘 관리하고, 체제전쟁의 완판인 대선으로 나아가자는 대장연의 공식적인 주장이다. 815광화문집회 준비모임에서는 초대형교회 장로들은 전광훈 현상은 주류한국교회의 수구보수 정치세력화라는 사실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

전광훈 현상의 본질

보수화된 주류한국교회는 주사파가 점령하고 있는 문재인의 청와대를 간첩의 소굴로 규정하고, 다른 한편 동성애를 조장하는 세력으로 혐오의 낙인을 찍어 강하게 공격한다. 만약 동성애차별금지가 포함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국회에서 입법 제정되고 나면, 나라가 망하는 것뿐만 아니라 교회도 탄압받을 것이라는 온갖 거짓 뉴스를 만들어 교회 안에서 유통시키고 있다. 이런 반(反)상식적인 현상은, 변화된 사회 환경에 미처 적응하지 못한 주류한국교회가 변화된 국가권력과의 관계에서 영향력 상실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다른 한편 독재 권력에 부역하며 쌓아온 기득권의 상실에 대한 주류한국교회의 불안감이 작용하고 있다.

민주화가 진행될수록 과거의 독재권력에 부역하면서 쌓아온 주류한국교회의 적폐적인 기득권의 폐해는 언론의 표적이 되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생존을 위한 자기 정당성을 주장하는 주류한국교회의 논리적 빈곤이 거짓뉴스를 생산 유통시키는 유혹에 빠지게 되었다. 수구보수적 대형교회가 거짓뉴스의 대량 유통과 확산의 경로가 되어 있었던 이런 현실은 스스로 자신의 입지를 더 자승자박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실제로 전광훈 집회에 참석한 대형교회 기독교인들을 취재한 기자는 “이들은 어떤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이대로 가면 나라가 망하는 것뿐만 아니라 교회도 탄압받을 것이라고 믿는다. 목사는 강단에서 설교할 수 없고, 교회는 사라질 거라고 생각한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들은 일어나지도 않은, 개연성 없는 주장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두려워했고, 절박했다.”고 전한다. 이 두려움과 절박함이 전광훈 현상을 불러 왔던 것이다.

교계에서 그래도 평판이 괜찮다고 평가 받던 목사들까지도 나라가 공산주의로 넘어가고, 교회가 탄압받는 시대가 도래 할 것이라는 전광훈의 근거 없는 황당한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이 대형교회 목사들이 8.15광화문집회 이후 코로나 제2차 대확산 사태로 번지자 사회적으로 고조된 전광훈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하여 전광훈과 선을 긋는 것처럼 몸짓을 취했다. 그러나 그 몸짓이 전광훈에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역사에 부끄러운 족적을 남기면서 성장해온 주류한국교회가 환골탈태하지 않는 한 결코 전광훈에게서 등을 돌릴 수 없다.

자신의 기득권과 영향력을 지키려는 주류한국교회의 대형교회들이 수구보수적인 태도가 전광훈 현상을 정권교체의 플랫폼으로 만들었다. 코로나 펜데믹 가운데서 쓰나미처럼 한국교회를 휩쓸어버린 전광훈 현상은 전광훈 개인의 기행적(奇行的)인 돌출(突出)이 아니다. 나타난 현상의 배후에는 은폐되어 있는 본질이 있다. 전광훈 현상은 한국 수구보수정치세력과 주류한국교회가 하나로 결합되어 양자의 이해를 실현하는 것이 그 본질이다.

NCCK에 대한 수구보수적인 공세

수구보수화이념에 깊이 오염된 한국교회의 생태계로 인하여 70년대 인권운동과 민주화운동 그리고 1980년대 한반로 평화통일운동을 선도해온 NCCK를 중심으로 한 에큐운동의 입지는 점점 협소해지고 있다. 2016년 4월 21일 NCCK 제62회기 2차 정기실행위원회에서 화해·통일위원회가 건의한 ‘한반도 평화조약안(이하, 평화조약안)’을 승인 발표한다. 평화조약안은 NCCK가 1988년 발표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88 선언)’의 기본 원칙인 ‘민족자주’, ‘평화통일’, ‘비핵지대화’, ‘신뢰와 협력’, ‘민의 참여’, ‘인도주의’가 근간을 이루고 있다.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하여 당사국들이 한반도평화조약에 서명할 수 있도록 국제적인 여론과 당사국들을 설득해나간다는 의지를 밝혔다.

조약 서문에서 조약 당사국을 남한, 북한, 미국, 중국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한반도의 항구적이고 지속가능한 평화를 구축’하는 것이 이 평화조약의 목적임을 분명히 밝혔다. 평화조약 채택이 발표되자 주류한국교회 내부에서 이념적으로 NCCK에 대한 수구보수적인 공세가 구체화된다. 6월 24일 NCCK의 '한반도 평화조약안' 폐기를 촉구하면서 감리교의 장로회전국연합회, 남선교회전국연합회, 여선교회전국연합회 3개 단체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전국장로회연합회, 남선교회전국연합회, 여전도회전국연합회 3개 단체, 그리고 ‘새로운 한국을 위한 국민운동'이 함께 참석한 기자회견을 연다.

여기서 NCCK의 평화조약안은 “북핵폐기를 위한 경제제재”를 반대하고 북한 편을 들겠다“는 행동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NCCK가 2016년 8월 23일까지 평화조약안 폐기를 결정하지 않을 경우, 성명을 발표한 단체들은 다른 초교파 평신도단체들과 함께 8월 24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NCC개혁을 위한 전체회의를 갖고 통합측 및 감리교 총회 총대를 대상으로 NCCK 탈퇴를 위한 서명운동을 논의할 예정"이라 전했다. 평신도단체를 중심으로 NCCK에 대한 이념공세는 감리교와 예장 통합의 총회를 통해서 건의안/헌의안으로 상정하면서 NCCK 탈퇴운동을 진행했고, 감리교는 동성애 반대집단이 여기에 가세하여 NCCK와 WCC 탈퇴운동를 요구하는 소책자를 매번 연회 때 대량적으로 살포해 오고 있는 현실이다.

NCCK에 대한 주류한국교회의 이념적인 공세는 반동성애 세력들까지 조직적으로 가세한다. 2016년 4월 28일 2층 조에홀에서 김조광수 감독을 초청하여 동성애자들을 이해하기 위해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는 이야기마당’을 열기로 했다. 그 때 수구보수적인 동성애 반대 단체에서 수 백 명이 몰려와서 조에홀을 점거하고 물리적으로 이야기 마당을 열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주최 측에서는 긴급하게 7층으로 자리를 옮겨 간담회로 축소해서 진행했다. 동성애 반대측은 7층까지 몰려와서 행사를 강제로 중단시켰다. 당시 현장에서는 동성애 반대측에서 김조광수 감독을 위해하려 한다는 말이 나돌았다. 그래서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김조광수 감독은 귀가했다.

또 예장 통합 총회는 2020년 9월에 개최하는 제105회 총회를 앞두고 포괄적 차별금지법 입법 촉구 성명과 관련, NCCK 탈퇴와 정평위의 성명서 철회, 이홍정 총무 소환 및 해임 건 등을 헌의한 상태였다. 이 상태에서 7월 16일 차별금지법과 관련해 NCCK의 입장과 함께, 21대 국회에 차별금지법 입법을 촉구한 NCCK 정의평화위원회 성명서와 관련한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질의서를 발송하여 NCCK에 차별금지법 입법촉구를 철회하라는 압력을 행사한다. 예장통합측의 이러한 행태는 수구보수이념에 오염된 주류한국교회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었다. 현재 NCCK는 수구보수적인 팬스 안에 감금당한 상태이다.

NCCK 지도력과 에큐운동의 고심

1980년 이전 NCCK 운영과 사업은 대부분 외국교회의 지원으로 운영되었다. 한국교회의 성장으로 NCCK의 외원이 다 끊어지고 교단분담금에 의존하여 NCCK가 운영되면서 당연히 한국교회의 수구보수적인 팬스 안에 갇힐 수밖에 없는 생태환경으로 변화되었다. 객관적인 상황은 주류한국교회에 포위된 NCCK의 에큐 생태계가 점점 더 수구보수성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진화해나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 처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CCK 내부의 실무자들의 헌신과 각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각 교단의 에큐진영의 활동가들이 NCCK의 고유한 역사성과 정체성을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위원회 활동은 민주적인 논의를 집행하면서 아직은 상대적인 자율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원회의 노력도 수구보수적인 외압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NCCK의 지도력(총무)이 NCCK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의지가 없을 때 상호 불편한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 또 다른 현실이다. NCCK의 내부와 외부에서 현재 지도력에 대한 평판은 에큐운동의 현장의 경험이 없다는 점을 가장 큰 맹점으로 꼽고 있다. 현장 경험의 부재는 NCCK의 고유한 논리-현장성과 역사성-로 수구보수적 세력을 설득하고, 수구보수적인 팬스를 돌파하는데 취약할 수밖에 없다.

NCCK 지도력의 에큐운동에 대한 이해를 보여준 전모를 확인했던 자리가 있었다. 2018년 9월 3일, 이홍정 총무가 취임하고 난 다음 처음으로 개최된 NCCK 정책협의회에서 발제자는 정의평화위원장으로 ‘생명을 위한 정의와 평화의 길’이라는 주제로 발제를 했다. NCCK 새 지도력으로 취임한 총무가 여는 정책협의회에서 NCCK운동은 새로운 총무와 어떤 길을 가게 될 것인가-하는 문제가 이 정책협의회의 핵심 질문이었다. 그 당시 발제자는 새 지도력인 총무가 작성한 3가지 문서자료를 분석해서 발표한다. 그 세 가지 자료는 ➀전환시대의 한국기독교협의회 에큐운동-<이하 전환시대> ➁새 총무가 취임예배에서 밝힌 취임사-<이하 취임사> ➂전환기 한반도 화해통일선교(안)-<이하 선교안>을 분석하고, 새 총무의 성향과 향후 에큐운동의 길을 분석했다.

당시 새 총무가 작성한 3문서에 사용된 중요 단어의 빈도수를 분석했던 결과가 아래 표와 같이 확인되었다.(당시 발제문을 일부를 여기에 그대로 인용한다)

지역이라는 단어는 <전환시대>에서 40번, <취임사>에서 15번-전체 자료에서 55번이 사용되었다. 지역교회는 대부분 지역교회와 지역에큐메니즘이라는 개념으로 사용되었고, 그 가운데 지역교회는 26번이 사용되었다. 한반도라는 단어는 <전환시대>에서 14번, <취임사>에서 6번 그리고 <선교안>에서 4번이 사용되어 24번 사용되었다. 평화통일은 <전환시대>에서 11번, <취임사>에서 5번 모두 16번 사용되었다. 전체 문서에서 2번 사용된 화해통일을 포함하여 평화/화해통일은 전체 18번 사용되었다.

여기에 반해서 노동과 비정규직과 해고라는 단어는 새 지도력의 문서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이 사실은 문서를 읽은 정의평화위원장인 발제자에게는 충격이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그리고 새 지도력이 취임한 다음 자신의 비전을 밝힌 이 문서에서 이 숫자들이 담고 있는 NCCK 에큐운동의 함의가 무엇일까? 정의평화위원장으로 깊은 우려가 있음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지역교회에 대한 발제자의 우려도 실상 그 원천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모든 답은 질문에서 나온다. 질문이 어떤 질문이냐에 따라서 당연히 답은 달라질 수 있다. NCCK 에큐운동도 마찬가지이다. 오늘 한국사회의 문제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NCCK가 내어놓는 선교적인 응답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평화통일과 지역교회는 오늘 우리 사회가 한국교회에 요청하는 아주 중요하고 역사적인 질문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의평화위원장인 발제자는 동시대 같은 하늘 아래서 살아가고 있는 힘없는 이웃들에게는 지역교회와 분리할 수 없는 보다 더 절실하고 일상적인 우리 사회적인 질문이 있다고 생각한다. 소위 1:99로 표현되고 있는 이 불평등한 경제에서 파생되고 있는 사회적인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오늘 한국사회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이웃들이 직면하고 있는 비인간적인 노동현실과 죽임의 노동현장이 한국교회에 던지는 절실한 질문이 있다. 새 지도력이 제시한 구상은 이 현장의 질문에 대한 응답이 절대 부족하다.

당시 새 지도력이 밝힌 향후 NCCK를 중심으로 한 한국교회 에큐운동에 대한 비전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현장성의 부재’였다. 그런 가운데서도 수구보수적인 팬스에 갖힌 NCCK의 운동의 물적 토대를 교단이 아닌 개 교회와 개인의 ‘천만상상운동(일만평생회원운동)’을 통해 극복하려는 구상은-그 현실 가능성이나, 교단 협의체인 NCCK의 헌장의 정신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는 차치하고-구상 자체로는 참신했다고 보았다. 그런데 발제자의 생각에는 ‘사회선교’가 들어가야 할 자리에 새 총무의 머리에 ‘지역교회’가 앉아있었다. 3문서를 분석한 위 표에서도 사회선교에 대한 관심은 너무 일천했고 지역교회에 대한 관심은 너무 지대했다. 노동이 삭제된 새 총무의 지역교회에 대한 사고는 매우 낭만적이었다.

현재 지역교회의 생태환경을 먼저 정화하지 않고 현상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지역교회에 대한 새 지도력의 구상을 실천하겠다는 것은 심각하게 구멍 난 두레박으로 깊은 우물물을 길러 올리겠다는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물을 제대로 길어 올리겠다면 먼저 두레박부터 잘 살피는 것이 수순이다. 발제자는 지역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그리고 에큐운동에 헌신하면서 오랫동안 지역교회와 관계해왔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발제자가 이해하는 지역 NCC는 전체를 하나로 표현할 수 없는 지역마다 편차와 특성이 있다. 이 편차와 특성에는 구멍 난 두레박 같은 현상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새 지도력의 지역교회에 대한 구상에는 여기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대책이 전혀 없다. 지금부터라도 대책을 마련하기를 바란다.

새 지도력과 전혀 다르게 보는 이런 점들을 두고-그럼에도 지역교회라는 말로 평균화한다고 해서 지역에큐메니즘을 활성화되는 것도 아니고,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되는 지역도 실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최근 수년내에 조직된 지역NCC들 가운데는 지역에큐메칼운동의 모범이 되는 곳도 있다. 그러나 그 지역교회의 에큐운동에서 지역NCC가 오히려 지역 에큐메니즘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는 곳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새 지도력이 <협의회적 연합운동의 토대인 지역교회들과의 유기적 상관성을 조직적으로 강화>하고 그래서 <지역에큐메니즘을 활성화하므로 에큐하게 지속 가능한 지역교회성장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은 지역현실을 간과한 구상이라-현재까지 구상은 설득력이 크지 않다. 또 지역에는 유수한 에큐메칼 자원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스스로 지역 NCC와 단절하고 있기도 한데-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왜? 무엇 때문에? 새 지도력은 이런 지역교회의 생태환경도 더 깊이 헤아리고 파악해야할 것이다.



지역교회가 여기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발제자의 생각이다. 이 자리는 당연히 사회선교가 자리를 잡고 있어야만 했다.****

지역교회가 여기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발제자의 생각이다. 이 자리는 당연히 사회선교가 자리를 잡고 있어야만 했다.****

발제자도 새 지도력처럼 지역교회의 문제가 NCCK 에큐운동의 사안으로 보면 매우 엄중하고 중요하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교회에 대한 이해가 정확해야 한다. 지역NCC들의 모임을 주도하는 이들 가운데는 지역NCC가 오히려 지역 에큐메니즘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는 곳이 있음을 그들도 잘 알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지역NCC 연합체>가 스스로 정리하지 못하면-지역교회가 객관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운 명분과 원칙을 들고 자기논리에 빠져 스스로 자신을 패권화하게 된다. 이런 행태는 새 지도력에게 부담과 오점을 남기도록 만든다는 점을 엄중하게 성찰해야 할 것이다.

총무의 이런 낭만적인 사고가 노태우 장례식장 참여 사태를 빚었다. 에큐진영의 반대와 NCCK 실무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노태우 장례식에 참석했다. 이것이 문제되자 총무는 사과를 했다. 518학살 주범들의 공식적인 사과가 없는 가운데 주범의 하나인 노태우 장례식에 참여해서 기도순서를 맡은 것은 그 만큼 그 시대 광주시민들의 아픔을 품고 518광주의 고난에 함께해온 NCCK의 역사성이 체화되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이런 점이 NCCK의 지도력으로 취임하여 한국교회 에큐운동의 구상을 밝히면서-NCCK 에큐운동에 노동과 현장 없는 미래를 제시했다는 점이 정의평화위원장으로 매우 유감스러웠다.

최근 에큐운동에 헌신해온 그룹에서는 주류한국교회의 수구보수적인 생태가 NCCK 에큐운동에 무시할 수 없는 위력으로 팬스를 치고 있는 점과 이런 수구보수적인 위력은 향후 점점 더 가중되어 NCCK의 에큐운동을 옥죄게 될 것이라는 점, 여기에 대한 NCCK 차원에서 이를 극복할 묘안을 마련하기 힘들다는 점 등을 지적하는 한편 NCCK 외곽에서 일정부분 NCCK의 보수화를 견인해온 전국목회자정의평화위원회까지 내부 동력이 소진되어 한국교회 에큐운동의 총체적인 위기로 진단하고 있다.

다소 과격한 분석으로는 NCCK 유통기간이 끝나고 새로운 에큐운동의 대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 새로운 대안이 뭐냐는 데는 구체적인 길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에큐운동의 논의에서는 NCCK가 아닌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여전히 NCCK가 상수의 자리에 있다. 그래서 새로운 대안론보다는 NCCK가 수구보수적인 교권의 논리에 잠식당하지 않도록 어떻게 외부에서 NCCK를 비판적으로 지지하면서 견인할 것인지가 관심이다. NCCK 밖의 유니온처치(교회연합)를 통해 NCCK 에큐운동에 새로운 길을 열어가자는 입장이 설득력을 얻어 가고 있다.

NCCK-고난의 현장으로 하방하여 7,80년대 현장성 회복해야

발제자는 이러한 논의가 분분한 결과에 대한 책임은 NCCK를 중심으로 한 에큐운동의 동력이 현장을 조직하지 못한 데 그 원인이 있다고 판단한다. 현재 NCCK는 주류한국교회의 수구보수체제 친화적 태도 때문에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히고, 수구보수의 팬스에 감금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본다. 엄혹한 박정희 유신독재와 전두환 군사독재시절에 NCCK 에큐운동은 빛이 났다. 당시 주류한국교회의 수구보수성 역시 지금과 비교해보면 결코 만만치가 않았다. 정권의 위기 때마다 권력을 응원하기 위하여 엄청난 신자들을 동원한 광장집회는 요즘 전광훈의 광장집회를 압도하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7,80년대 당시 에큐운동이 빛났던 것은 NCCK가 고난의 현장과 연대해왔기 때문이다. 민중이 당하는 고난의 현장은 NCCK 에큐운동을 빛나게 해줬다. 이것이 고난의 신비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NCCK는 고난의 현장으로 하방해야 한다. 고난의 현장으로 하방하는 것이 NCCK 의 현장성이다. 오늘 NCCK 에큐운동의 지지부진은 현장성으로부터 분리 내지는 이탈한 결과라고 판단한다. 오늘 에큐운동의 길은 현장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역사적으로 NCCK의 에큐운동은 모든 문제의 답을 언제나 현장에서 찾았다. 인권이 짓밟히는 현장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한 답은 민주화 운동으로 찾았다.

그리고 민주화운동의 현장에서 생긴 문제는 분단의 현실에서 그 답을 찾았다. 에큐운동의 답은 언제나 현장에 있었다. 현장은 고난과 연대해서 투쟁하는 자리이다. 오늘 민중의 현장은 탄압이 더 교묘해졌고, 자본의 논리는 더 사악해졌다. 공공연하게 생명과 영혼을 짓밟는 자본의 폭력성은 힘없는 노동자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살해의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얼마 전 대우조선해운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은 “이렇게 살수는 없지 않겠습니까”라는 호소가 전부였다. 2014년 조선경기가 악화되었을 때 받았던 임금이 매년 깎였다. 지난해까지 31%를 삭감을 당했다.

조선경기가 안 좋을 때 임금을 삭감당하면서 허리띠를 조여매고 일했던 노동자들이 조선경기가 호황인 지금에 와서 임금을 원상회복해 달라는 요구였다. 사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요구라고 할 것도 없었다. 누가 봐도 당연히 그러해야할 당위였다. 헌법에 보장된 정당한 쟁의를 대통령과 재경부 장관, 산자부 장관 그리고 노동자들의 주무부서인 환노위 장관까지 나서서 불법파업으로 낙인을 찍고 몰아세웠다. 공권력을 투입이 임박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결국 힘없는 하청노동자들은 31% 원상회복에 형편없이 밑도는 4.5% 인상으로 협상을 타결했다. 그리고 결과는 어땠는가.

원청인 대우조선해양 측에서는 파업을 주도했던 하청노동조합 간부 5명을 대상으로 473억원의 파업손해배상 소송에 들어갔다. 473억원이면 이 노동자들이 평생 만져보기는커녕 구경도 해볼 수 없는 천문학적인 액수이다. 자신이 받는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갚아도 300년이 걸린다는 초고액의 손배소는 “너희들을 죽여 버리겠다.”며 자본이 하청노동자들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공공연한 살해행위였다.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을 불법으로 진압하고 난 다음 손배소 배상액 33억1140만원과 지연이자 63억1400만원까지 합친 손배소 액수가 96억2540만원에 이른다. 지금까지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손배소 총액이 3,160억원이나 된다.

손배소로 영혼까지 탈탈 다 털리고 피폐해진 상태에서 자살한 노동자들이 수 십 명이나 된다. 이 노동자들이 아니더라도 생산 현장에서 죽음의 외주화는 매일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아가고 있다. 지난 해 경실련에서 발행한 원간 경실련 7,8월호에 실린 “산업재해는 왜 은폐되고 있을까” 특집기사에서 오희택(시민안전위원장)의 글에는 “한해 평균 10만 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를 당하고 있고, 2천 명이 넘는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고 있다. 사무직 노동자보다는 육체 노동자가, 정규직 노동자보다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위험으로 내몰리고 있다.”면서 이 통계도 실제 산재사고의 절반 이하라고 주장한다.

이 글에서는 “2011∼2017년 사업체 패널조사 자료에 나타난 산재사고 은폐율은 66.6%에 이르고, 이는 실제 산재로 인정되는 사례보다 2배 정도 규모의 은폐된 산재가 존재한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산재사망자는 죽음의 외주화로 표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노동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현실과 정황들은 NCCK가 어디에서 에큐운동의 자기 정체성을 확인해야하는지 분명한 수치로 보여주고 있다. 지금이라도 NCCK는 민중을 죽음으로 내모는 사악한 현장으로 하방해야 한다. 노동현장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산재해 있는 소수자들-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난민 등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해야 한다.

교회는 우리 사회의 차별과 혐오와 배제의 렉토릭을 환대의 언어로 다시 환원시킬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지금처럼 NCCK가 수구보수적인 주류한국교회의 눈치를 보면서 수구보수적인 팬스에 갇혀만 있다면 그만큼 한국교회에서 NCCK의 지도력도 에큐운동도 누추해질 수밖에 없다. NCCK가 수구보수의 팬스를 떠나서 현장성을 회복한 다음 현장성이 살아 숨쉬는 NCCK의 팬스 안으로 수구보수적인 주류교회를 설득 하여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 길이 그리스도의 거룩한 성체가 자기의 본질을 회복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주문하고 설득해야 한다.

그 길은 NCCK가 현장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이웃들의 생명을 위하여 7,80년대 수준으로 현장의 투쟁성을 회복할 때 가능하다. 혹자는 87체제 이후 절차적인 민주주의가 확대 되면서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변한 것은 형식일 뿐이었다. 현장은 더 교묘하고 사악해진 악의 논리가 민중의 삶을 움켜잡고 있을 뿐이다. 이 절차적 민주주의의 환상 때문에 NCCK 지도력이 젠틀맨 컴플렉스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깊은 반성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

감리교 에큐운동도 현장중심체제로 재편해야

만약 NCCK 지도력이 이런 현실을 각성하지 못한다면 각 교단의 에큐운동 진영이 이를 강제하여 NCCK가 하방을 할 수 있도록 견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감리교 에큐진영의 재정비도 절실하게 필요하다. 발제자는 감리교 에큐진영이 지금 식물상태에 있다고 본다. 그러나 다행스럽고 감사하게도 감리교 에큐진영의 사회선교 현장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음을 확인했다. 사회선교 현장에서 후배활동가들의 헌신은 감리교 에큐운동과 NCCK 에큐운동의 고귀한 자산이다. 그런데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처럼 에큐운동의 보배로 만들기 위하여 꿰는 것은 감리교 에큐위원회의 역할이다.

감리교 에큐위원회는 지금 보수적인 교단의 팬스에 갇혀 있다. 감리교 에큐위원회는 사회선교 현장의 보석 같은 구슬들을 꿰어 감리교회의 보배로 세워야 한다. 그리고 감리교회의 보배 같은 현장의 논리로 보수화된 감리교회를 에큐의 펜스 안으로 견인해 낼 수 있어야 한다. 그 길이 힘없고 가난하고 소수자로 배척을 받아 혐오로 짓밟히고 배제를 당하고 있는 이 사악한 시대 거룩한 교회가 가야할 길이라는 사실을 힘주어 설득할 수 있을 만큼 에큐위원회의 영성적 내공이 깊어야 한다. 이 내공은 어떤 논리나 어떤 이론이나 어떤 신학도 챙겨주지 않는다.

이 영성은 고난의 현장으로 하방하여 이웃의 고난을 자기 영혼의 고통으로 통찰하면서 기꺼이 고난에 연대하여 실천적인 투쟁을 통해서 고양되는 현장으로부터의 영성이기 때문이다. 이 현장의 영성이야말로 감리교회를 전정한 감리교회로 거듭나게 하는 거룩한 능력이자 고난의 신비이다. 이 거룩한 능력과 고난의 신비를 우리는 이동환의 용기에서 이미 확인할 수 있었다. 고로 감리교 에큐위원회는 무엇보다 현장의 문법과 언어가 살아있어야 한다. 사회선교현장 활동가가 에큐위원회 위원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감리교 사회선교현장의 언어가 살아있어야 한다. 현장의 언어와 문법을 살려내기 위해서 감리교 에큐위원회가 반드시(must) 현장이 중심이 되는 체제로 재편되어야만 한다. 현재 에큐위원회 안에는 사회선교 활동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사회선교 활동가들의 폭을 더 넓혀야 하고, 에큐운동에 몸을 담고 현장과 결합해온 활동가들도 참여의 폭을 넓혀야 한다. 사회선교 활동가의 참여는 에큐위원회에서 교단의 정치적인 논리보다 사회선교현장의 현장성-현장의 언어와 문법-을 강화하는 방향을 지향해야 한다. 에큐위원회 만큼은 교단 정치논리보다 사회선교 현장 활동가들의 현장의 언어와 현장의 문법이 충분하게 존중될 수 있도록 재구성되어야만 한다.

아울러 3개 신학교와 여성, 청년도 반드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NCCK의 자랑스러운 역사성과 정체성으로 보면 에큐운동의 현장은 투쟁의 현장이었다. 7,80년대 에큐운동이 구체적인 사회선교현장(노동인권 등)에서 포괄적인 사회선교 현장(민주화와 평화통일)으로 발전할 수 있게 만든 역동 역시 현장에서 실천해온 투쟁의 산물이었다. 구체적인 사회선교 현장의 성과들이 포괄적인 사회선교 현장으로 발전하고, 이렇게 발전한 포괄적인 사회선교 현장은 구제척인 사회선교현장을 지원하고 응원하면서 함께 연대하여 자랑스러운 NCCK의 역사를 기록해 왔었다.

감리교 에큐운동이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지향한다면 그 중심고리는 현장일 수밖에 없다. 한국교회의 에큐현장과 사회선교현장은 서로 다른 현장이 아니다. 같은 현장의 다른 측면이다. NCCK의 경험으로 보면 에큐현장이 노동인권과 민주화와 평화통일로 진화해왔고, 노동인권과 민생현장은 언제나 에큐운동으로 수렴되어 더 큰 울림을 만들어 왔었다. 이런 점에서 감리교 에큐운동의 생기를 담아내는 에큐위원회의 재편이 필요하다. 수년 전부터 한반도평화조약에 반대하는 감리교 평신도들과 반동성애 세력의 안티-NCCK, 안티-WCC운동에 대해서는 에큐진영은 강한 대응력을 발휘했어야 했다.

에큐진영의 대응력이 전무한 상태에서 ‘안티운동’은 물때 만난 물고기처럼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활개를 치고 다닌다. 그들의 일방적인 주장은 대부분 감리교 대중들에게는 마치 NCCK와 WCC를 불순한 단체로 곡해하도록 만든 것은 전술적인 실책이었다. 그런 가운데 각각 전선을 다르게 형성해 왔던 평신도들과 반동성애 그룹이 지금은 함께 하나로 연대하여 안티운동을 벌이고 있다.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많은 땅을 빼앗겨 버린 형국이 되어 버렸지만 아직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다. 에큐위원회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조직적인 정비가 필요하다.

에큐위원회는 소수의 정예로 구성되기 보다는 능력 있는 다수가 참여할 수 있는 너른 품이 필요하다. 다양한 영역에서 참여하여 에큐위원회를 통해서 감리교회공동체 안에서 명실상부한 에큐진영의 세력화가 이루어져서, 에큐위원회가 교단 안에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교단의 팬스 안에 있지만 에큐위원회는 감리교가 그리스도의 거룩한 성체로 교회의 영성적인 정화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교단을 에큐운동의 팬스 안으로 견인하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에큐위원회를 어떻게 재편 방향-에큐운동의 세력화

인원을 전체 위원 50면 선으로 대폭 확대해야한다. 에큐 활동가들과 사회선교활동가들의 참여의 폭을 넓히고, 청년과 여성의 참여를 충분하게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장 활동가들의 참여를 우선하고 활동가들이 현장의 언어와 현장의 문법이 관철되는 방법으로 운영한다.

모든 의사 결정에서 민주주의 일반원칙을 적용하되 충분한 토론이 이루어지도록 운영한다.

가급적이면 위원의 참여 인원 중에 목원과 협성 출신이 각각 10명이 되도록 안배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과 청년은 학교의 안배 인원에서 제외한다.

재편 에큐위원회의 과제-NCCK 견인과 에큐운동 팬스 교단내 공식성 확보

NCCK 에큐운동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통하여 에큐운동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견인

현안과제인 안티-NCCK, 안티-WCC 운동애 대한 에큐진영의 공식적인 대응

NCCK 실행위원회 위원, 프로그램위원회 위원, 총회 대의원 추천 기준을 마련하고 기준에 따라 위원과 대의원 추천

4.) 사회선교현장의 연대성을 강화하고 현장의 요청에 대한 효과적인 참여를 조직

감리교 공식 부분에서 에큐운동과 활동의 공식성 강화

각 신학교에 에큐강좌 개설

현장성 살아있는 에큐운동이 교회의 자정 단위 될 수 있도록

발제자가 에큐진영의 새로운 재편과 함께 제안한 ‘거룩한 동행’을 통해서 감리교의 보수의 벽은 높지만 에큐진영의 진정성이 충분하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 모든 점을 감안하여 발제자의 결론은 감리교 에큐운동이 생기를 되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에큐위원회를 확대 재편해야 한다는 것을 - 오늘 이 정책협의회에 간절하게 주문하면서 발제를 마친다.

경청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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