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희생의 가치를 배운 시절(1)

by 좋은만남 posted Mar 0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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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희생의 가치를 배운 시절(1)

나는 스물네 살 되던 해 처음 신학대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재수에 삼수, 그리고 군대!  이렇게 다른 친구들과 시간적 거리가 생기게 되었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서는 몇 년 정도의 차이는 의미가 없을지 모르겠지만 한참 인생을 스케치하는 시기에 1년이라는 세월은 참으로 큰 격차를 벌려 놓기도 한다. 그렇다. 1년, 2년의 차이는 나비효과처럼 10년의 차이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래서 어른들이 “다 때가 있다.”는 말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인생의 정답은 없다.” 이 부정적 표현보다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물음에는 각자의 답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바로 정답이다. 

나는 삶의 정답을 찾고자 고군분투하며 20대를 보냈기에 힘든 것들은 힘든 대로, 어려운 것들은 어려운데 쉽고 편한 것들은 그런대로 흘려보낼 수 있는 여유가 내 삶 속에 생겼다. 그러나 돌아보면 쉽고 편한 것들은 나에게 한 번도 허락된 적이 없었던 것같다. 쉽고 편한 것들이 내 안에 들어오면 다른 것이 결핍되는 경우가 종종 생겨서 속을 태웠던 일들이 많았다. 삶이 그런 것 같다. 채움과 비움이 반복되고, 득과 실이 공존하며 기쁨과 슬픔이 녹아 있다. 한없이 좋다가도 어디 한 구석이 허전한 마음이랄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늘 그런 것 같다. 

잘 다니던 직장을 한방에 때려치우고 대학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워낙 학교 공부를 해본 지 오래되어서 그런지 모든 것이 새롭고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갈망했던 대학에 입학을 하니 나 스스로가 참으로 대견해서 셀프 칭찬과 만족으로 대학 신입생 시절을 보냈다. 공부도 정말 열심히 했다. 과제가 있으면 밤을 새면서 책도 읽고, 과제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영어였다. 모르겠다. 십년을 넘게 수업을 들어도 모르겠다. 아니 하려고 마음을 먹지 않았다. 어떻게든 피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대학은 대학이었다. 결국 큰 벽을 마주치게 되었다. 영어로 된 교재를 해석하라는 과제 앞에 무릎을 꿇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으로 번역을 하면 쉽게 번역도 하고 과제도 빨리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조금 더 늦게 태어날 것을… 사전을 찾아가며 몇 날을 밤을 새며 안 되는 번역을 꾸역꾸역 해냈다. 과제를 제출하고 며칠이 지나서 그 문제의 수업이 시간이 되었다. 교수님은 내 이름을 부르시고 얼굴을 뻔히 보시더니 끝나고 잠시 보자고 했다. 수업이 끝나고 교수님을 찾아갔고, 교수님은 제출했던 나의 과제를 돌려주며 다시 해 오라는 것이다. 전혀 다른 해석으로 번역을 했다는 것이다. 정말 괴로웠다.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슬펐고, 아팠다.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나는 열정도 패기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브레이크! 잘 진행되는 것 같은데 브레이크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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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를 잃어버릴 무렵 한 학기가 끝나고 방학이 다가왔다. 방학 때 일을 해야 했다. 200~300백만 원이 넘는 등록금을 달라고 집에 손 벌릴 수 없었다. 그래서 큰돈을 단기간에 잘 벌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구직구인 사이트를 찾아보고 벼룩시장을 찾아봐도 짧은 기간에 등록금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잘 찾아보니 조금 만족할 만한 일들이 있었다. 물론 돈을 많이 주는 일은 둘 중 하나다. 나쁜 일이거나 힘든 일이다. 나쁜 일보다는 힘든 일을 찾았다. 바로 에어컨 설치하는 아르바이트인데 이것도 연줄이 있어야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나는 연결 연결하여 에어컨 설치하는 사장님을 만났다. 사장님은 조금 특이했다. 본인을 소개할 때 삼성전자에서 퇴직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돈만 잘 받으면 되었기에 그 사장의 과거에는 관심도 없었다. 

어쨌든 나는 에어컨 설치하는 일을 여름 내내 하기로 마음을 먹고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에어컨 설치하는 일인 줄 알고 시작했으나 전혀 다른 상황을 맞이했다. 정말 노가다를 해야 했다. 마포에 가면 마포대교 들어가기 조금 전에 신축되는 37층 빌딩(한화 오벨리스크)에 에어컨을 다 설치하는 일이었다. 오피스텔이라 일반 집의 형태가 아니라 원룸 또는 작은 룸이 많은 빌딩이었다. 에어컨을 공장처럼 달아보는 진기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일명 까데기(박스를 열어 재품을 꺼내는 일) 하는 팀과 동파이프(에어컨의 실외기와 실내기를 연결해서 압력을 이용해 냉기를 만들어내기 위한 배관)의 입구 구멍를 넓히는 팀, 그리고 용접팀, 이렇게 계속 반복되는 일을 했다. 여름 내내 에어컨은 있는데 에어컨 바람을 쐴 수 없는 곳에서 일을 했다. 건물에 에어컨을 다 설치하고는 하이마트에서 물건을 받아 가가호호 돌아다니며 설치를 했다. 내 인생이 정말 땀을 많이 흘린 시기가 이때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