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희생의 가치를 배운 시절(2)

by 좋은만남 posted Mar 2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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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희생의 가치를 배운 시절(2)

한 가지 깨달은 것은 에어컨 설치기사는 정말 더운 곳만 찾아다닌다는 것이다. 에어컨이 고장이 났거나, 더워서 참을 수 없는 곳에 가서 설치를 하거나 수리를 해야 하는 것이다. 정말 죽을 것 같이 힘들었던 날이 기억이 난다. 어느 날은 가락시장에 에어컨을 설치하러 갔다. 당시 시장에는 판자촌처럼 어설프게 지어놓은 상점들이 많았다. 가건물로 만들어 놓은 2층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일이었는데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밖에서 내리쬐는 열기를 그대로 받는 건물이다. 
쪽방에 사는 분들의 심정을 100배 이해하고도 남았다. 나야 하루지만 그분들은 매년 그렇게 보내신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정말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여름이 되면 간혹 에어컨 기사들이 과로사 한다는 기사가 나온다. 이 일을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일이 많아서 죽는 것도 있겠지만 아마 땀을 너무 흘려 죽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직도 어제 일처럼 각인되어 생생하게 기억되는 일이었다.

이 시기를 돌아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는 돈을 벌기 위해 땀을 흘렸다. 학교에 다녀야 했기 때문에 일을 해야 했다. 돌아보면 난 지금의 나의 삶을 위해 그렇게 노력을 했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나는 늘 일을 해야 했다. 늘 뛰어다녔다. 그래야 사람들과 호흡을 같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 나는 내 인생을 위해 땀을 흘렸다. 그러나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은 땀을 식힐 수 있었다. 우리는 위대한 성인(聖人)이 아니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한다는 생각으로 살아가지도 않는다. 나의 삶을 살지만, 나로 인해 누군가는 유익을 얻는 삶.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이 이렇다. 가끔은 이런 것이 억울하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만족하기도 한다. 예수는 어떠했을까? 자신이 흘린 피와 땀을 후회하지는 않았을까? 예수의 삶은 자신을 녹여 흘린 땀과 피로 우리에게 유익이 되게 하셨다. 

예수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가는 것이다. 나로 인해 나도 모르게 누군가는 유익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아닐까? 특별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그렇다고 평범하지도 않다. 하지만 이런 삶들이 모여 우리는 평범함을 만들어 낸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가 예수로 살아가고 있다. 방법과 상황은 달라도 우리는 예수로 살아가고 있고, 예수로 살아야 한다. 

방학 내내 땀을 흘리며 에어컨을 달았다. 그리고 겨우 학비를 모았다. 그런데 고민이 되는 일이 생겼다. 나와 네 살 터울 위인 누나가 등록금이 없어 휴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나 또한 가정형편 때문에 좋은 대학에 입학은 했지만, 꽤 오랫동안 쉬다 다니다 하며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장학금이 나오면 학교를 다니고, 그렇지 않으면 또 쉬고, 돈벌어 또 학교 다니고, 장학금 못 받으면 또 쉬고를 반복하다 수년을 대학에 다닌 누나가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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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상가상으로 나와 쌍둥이인 동생이 등록을 해야 하는데 돈이 부족했다. 동생은 나와 전혀 다른 재능을 가졌다. 동생은 동양화를 전공하고 있었고, 자신이 방학 내내 돈을 벌어도 예술학부에 들어가는 돈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동생은 나보다 더 찐하게 살아간 인생이다.(다음에 한번 글을 통해 소개하겠다) 어쨌든 나는 결심을 해야 했다. 특별히 날 위해 해준 것 없는 가족이지만 그들을 위해 나는 헌신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방학 내내 미친 척하고 번 돈을 그들의 등록금을 내는데 보태기로 하고 나는 휴학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래도 방학 내내 번 돈이 꽤 됐던 것 같다. 누나에게 150만원, 동생에게 120만원을 보테주고 남은 돈 80만원을 가지고 종로에 있는 글로벌회화학원에 등록을 했다. 6개월 치 선불로 지급하고 교재도 받았다. 따지고 보면 큰돈도 아니지만 당시 대학 다니던 나에게는 정말 큰돈이었다. 

내 인생에 이렇게 좋은 일을 해본 경험이 아직도 없다. 누군가를 위해 내 전부를 내준 것, 돈의 가치보다 나의 가치가 높아진 일이었다고 나는 자부한다. 현재 일산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는 동생도!, 뭐 하는지 잘 알지 못하는 누나도! 꾸역꾸역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가끔 나를 칭찬할 때가 있다. 이젠 노부모가 된 어머니는 이일을 가끔 회상하며 나에게 참 미안하다고 말씀을 하실 때가 있다. 

희생은 존재가치를 세우는 일이다. 나로 인해 다른 존재의 가치가 세워지고, 희생한 나는 기억으로 남아 그 가치를 높이게 된다. 예수가 우리의 가치를 높였듯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 그 가치를 높이는 일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