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조회 수 2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제9화 생각의 전환은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한다. (1)

호텔의 일들을 청산하고 나는 다시 캠퍼스로 돌아왔다. 다시 적응해야 하는 대학의 생활은 너무나 버거웠다. 세상에 물들어 세속화되었던 나에게 holy 한 척 살아가는 것은 정말 곤욕이었다. 직장을 다니며 조금씩 모았던 돈으로 등록금 내고 한 학기 동안 점심은 굶기 싫어서 세 달치 식권을 구입했다. 가끔 돈이 떨어지면 식권 깡(식권을 다시 팔아서 돈으로 받는 행위)을 하여 살아가는데 간간이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학교 밖에 가난한 신학생들을 위해 가건물로 만들어 놓은 닭장 같은 기숙사를 월 15만 원을 내고 살 수 있었다. 금상첨화였다. 오갈 데 없던 나에게 무엇인가 집중하며 살 수 있는 의식주가 해결되었기에 잠깐 동안은 아무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신학생들의 특징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에 하나는 둘셋이 모이면 논쟁하는 일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실소(失笑)가 나온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인간이 단 하나의 책을 읽고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덧붙여 대담하다면 정말 큰 문제다. 내가 그랬다! 나는 논쟁하기를 좋아했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이 싸움들에서 늘 승리를 욕망하며 지칠 때까지 싸우다가 의도, 애도 상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몇 권의 책이 내 지식의 전부였던 나에게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논쟁의 주제에 대해서 몇 날 며칠을 곱씹어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나 스스로 결론이 나야 그 생각들을 멈췄다. 이런 성격은 지금도 남아 있는 것 같은데 좋게 해석하면 학구열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심한 성격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대학교 초년 시절에 이러한 열정은 많은 책을 보게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보다 먼저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았었구나… 항상 뒷북은 허탈하다.

사유하는 학문들을 들여다보면 자기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구미에 맞는 주장들을 자기의 생각에 적용시키고 내가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학자들의 주장들에 나의 생각들을 줄 세워 계파를 만들고 당파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지금은 비록 이런 일들이 지겨워졌지만 나는 신학을 하며 늘 그런 고민 속에 살았다. 나는 점점 더 편협해져 갔다. 신과 인간 사이를 나는 계속해서 이간질시키고 있었다. 하나님의 생각이 내 생각인 것마냥 나는 성경을 이용했다. 영지주의의 이원론적인 가치관이 내 안에 가득 찼고, 인간이란 존재는 멸망할 존재로 구분하고 한때는 칼빈주의에 빠져 사람이란 존재를 하염없이 연약한 존재로 인식하여 저등한 존재로 생각했다. 또한 분리와 혐오가 내 안에 가득 찼다. 예를 들어 “구원받을 사람은 정해져 있고, 나는 그 구원이라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우리가 전도하는 목적은 이미 예정된 구원받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세상 사람들이 불쌍한 것은 나의 신앙과 틀리기 때문이고 그들은 저주를 받았으며, 지옥에 갈 것이다”라든지 “인간이 악하므로 인간이 만들어 내는 모든 것은 악하다.”라고 생각을 했었고 이는 예술(예술의 모든 행위도 악하다)과 문학에 대한 생각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므로 종합해 보면 휴머니즘(인본주의)이 바로 악한 생각이라고 확신했었다. 성경에 대한 해석도 근본주의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알레고리즘’*, 즉 성경해석에 대한 배격과 특히 인간의 본성에 대한 알미니안**적 가치관과 가톨릭의 수덕사상***은 정말 최악의 신학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사실 이런 생각이 장로교적인 생각만이 아니다. 한국교회의 전반적인 생각이라고 본다. 교회 안에서의 제안된 예술 활동이나, 음악 활동, 또는 교회의 사회참여에 있어서 제한적인 접근이 그렇지 않은가?
이쯤에서 신학적인 이야기는 그만하기로 하자!~
자세하게 들어가면 나도 힘들고, 읽는 분들도 힘들 테니 이 정도면 될 듯싶다.

이러한 신학관에서 나의 삶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금 나는 감리교단의 목사로 살고 있고, 나의 생각들은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수정되고, 변화되었다. 나는 스스로 나를 뒤집었다고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보수 중에 보수적인 교회를 다녔고, 대학까지 아무런 생각 없이 당연히 장로교 신학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 무비판적인 신앙관에는 막연한 믿음과 어떤 부분에서는 맹목적 믿음으로 앞뒤가 막힌 생각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러던 중 나의 삶에 큰 전향을 일으킨 것이 사회복지를 공부하면서부터였다. 친구의 권유로 신학과 사회복지를 함께 복수로 전공하기로 하고 학점을 이수하느라 대학 내내 24학점씩 계속해서 수업을 들어야 했다. 정말 열심히 공부도 하고 일도 했다. 학교→일→집 이렇게만 하고 살았다. 그 당시를 생각하면 아쉬운 점이 많다. 학교에서 전혀 다른 활동들을 하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 나는 동기생들이 누구인지, 무슨 동아리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냥 학교→일→집, 이게 그 당시 나의 삶의 전부였다.

사회복지를 하면 할수록 나에게 드는 생각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내가 하나님을 인식하기 이전에 나에 대한 인식과 사람에 대한 인식이 더 중요하게 다가왔다. 사회복지는 이렇게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사회에 대한 고민을 깊이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나는 점점 변해갔다. 사회 속에서의 불평등과 불공정에 대해 고민이 깊어갔고 내가 가지고 있는 신학의 저변에 불평등과 불공정, 불의가 있음을 깨달았다. 사회의 문제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교회! 거룩이라는 페인트로 치장해 놓고 다른 색을 가졌거나 낡아 있으면 거룩하지 않다고 치부해버리는 교회! 그러면서 거룩하라고 말하는 교회! 세상과 구별할 수도 구별될 수도 없는 분명한 사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들이 나의 묵었던 가치관을 변화하게 했다. 

지금 나에게 있어서 몇 가지 중요 키워드 중 하나는 “사회가 변해야 교회도 변할 수 있다.”이다. 교회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음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허황된 꿈은 접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러나 사회가 변하면 교회는 분명히 변한다. 이것이 명제라면,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 사회 속에 사람들과 하나 되기를 힘써야 한다. 한국교회를 비롯해 기독교의 사상은 분리주의였다. 유대인들의 민족성을 그대로 가져와서는 그것이 답인 것처럼 선민사상을 외쳐대는 모양은 정말 망할 짓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 자신들만 거룩하다고 말하는 옹졸하고 치사한 종교의 매력은 노름과 같다.(많이 가진 사람이 위세를 떨거나, 많이 갖기 위해 몸부림치며 한탕을 노리는 것-너무 격한 표현에 출교당할지 모르겠네요...^^;) 

----------------------------------
* 알레고리즘 : 풍유적 성경해석이라고도 하는데 역사적 성경해석과 함께 양대 성경해석 방법론이다. 성서가 다양한 수준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문자적 의미와는 반대적으로 쓰이는 영적 의미(우의, 도덕적, 또는 윤리적), 그리고 신비적 의미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으로 현재는 일부 교단만이 기준으로 삼고 대부분은 역사적 성경해석을 기준으로 삼는다.

** 알미니안주의 : 구원에서 있어서 합리성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여 인간의 의지적 결정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직접적인 종교경험을 강조하는 신비주의 신학에 반대하고, 이성을 강조하여 도덕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보다 그리스도의 모범을 강조하였다. 후에 펠라기우스주의로 이어졌다. 먼저 역사하는 구원의 은총(선행은총)에 대한 인간의 응답을 중요하게 여기는 감리교회의 교리는 종종 알미니안주의라고 공격받았다.

*** 가톨릭 수덕(修德)사상 : 영성 또는 영성신학을 의미하는 가톨릭 사상으로 신앙적 숙달을 위해 연습과 훈련, 덕행을 실천하는 신비적 활동으로 초자연적인 체험과 지식, 관상(명상)을 중요하게 여긴다.
?

  1. 제9화 생각의 전환은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한다.(1)

    제9화 생각의 전환은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한다. (1) 호텔의 일들을 청산하고 나는 다시 캠퍼스로 돌아왔다. 다시 적응해야 하는 대학의 생활은 너무나 버거웠다. 세상에 물들어 세속화되었던 나에게 holy 한 척 살아가는 것은 정말 곤욕이었다. 직장을 다니며 ...
    Date2021.05.29 By좋은만남 Views23
    Read More
  2. 제9화 생각의 전환은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한다. (2)

    제9화 생각의 전환은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한다. (2) 세상 속에서 선한 삶이 예수의 삶이 아니던가? 우리가 온전히 교회의 모양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회 속에서의 사회화가 잘 이루어졌을 때 가능하다. 지금 기독교의 위기는 사회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
    Date2021.06.19 By좋은만남 Views18
    Read More
  3. 제10화 바닥에서 시작된 사역(1)

    제10화 바닥에서 시작된 사역(1) 지금 20대를 돌아보면 전쟁 같은 삶을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주어진 일은 무엇이든 했다. 그냥 불구덩이에 몸을 던졌다고 해야 할까? 몸이 말을 듣지 않을 정도로 일을 해도 다음 날이면 몸이 일어나 진다. 지...
    Date2021.07.10 By좋은만남 Views20
    Read More
  4. 제10화 바닥에서 시작된 사역(2)

    제10화 바닥에서 시작된 사역(2) 많은 사람이 인생을 바닥 친다고 하는데 나는 이제 지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게 됐다. 바닥도 땅 위에서 쳐야 하는데 땅 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물론 지하에서 일하고 계신 분들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그 당시 심정이 그...
    Date2021.07.30 By좋은만남 Views17
    Read More
  5. 제11화 시련 속에서 찾은 또 다른 길(1)

    제11화 시련 속에서 찾은 또 다른 길(1) 성인이 되던 해에 나는 아무런 꿈도 없이 세상에 첫발을 내디뎠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곳저곳에서 깨지고 부딪치며 날카롭게 살던 나는 어느새 둥글둥글 해져가고 있었다. 꺾여보고 깨져보니 세상이 얼마나...
    Date2021.08.21 By좋은만남 Views9
    Read More
  6. 제11화 시련 속에서 찾은 또 다른 길(2)

    제11화 시련 속에서 찾은 또 다른 길(1) 그래서 결정적인 말 한마디를 던졌다. “목사님, 지금 목사님께서는 노동력을 착취하고 계신 겁니다.”라고 했더니 얼굴이 빨개지면서 목사님께서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 후 대략 1시간가량 말다툼을 하다가 나는 교회 ...
    Date2021.09.11 By좋은만남 Views14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Nex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