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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바닥에서 시작된 사역(1)

지금 20대를 돌아보면 전쟁 같은 삶을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주어진 일은 무엇이든 했다. 그냥 불구덩이에 몸을 던졌다고 해야 할까? 몸이 말을 듣지 않을 정도로 일을 해도 다음 날이면 몸이 일어나 진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렇게 살았는지,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로 그 시절 몸을 혹사하며 살아가던 때로 돌아가는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는데 젊어서만 고생해야지 나이 먹고도 고생하면 정말 답이 없다. 지금 나는 답이 없는 삶을 아직도 살고 있음에 쓴웃음이 지어진다. 

어느덧 대학교 4학년이 되었다. 이제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어려서부터 다녔던 정든 교회를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 교회(서대문에 있는 역사 깊은 교회)에 출석했을 때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가족이 모두 상경하고서 식구들은 각자의 커뮤니티를 찾아 뿔뿔이 흩어져 교회를 다녔다. 누나와 나 그리고 동생은 충정로에 역사 깊은 성결교회를 다녔고, 형과 어머니는 서대문에 있는 장로교회에 다녔다. 이렇게 서로 다른 교단의 교회를 다니던 우리 형제들에게 어머니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이곳저곳 흩어져 다니던 자녀들을 한 교회에 모으기로 하셨다. 어머니의 방법은 단순했고, 확실했다. 중고자전거를 사주시며 교회를 옮기면 주겠노라고 하셨다. 나중에 생각이라는 것을 할 즈음에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전거에 팔려 왔노라고 하며 다녔던 기억이 난다. 아동, 청소년 그리고 청년의 시절을 보냈던 정든 교회를 드디어 떠나기로 마음을 먹고 마음이 한동안 먹먹했었다. 많은 추억이 깃든 교회였기에 매우 아쉬웠다. 마침 몇 년 만에 한 번씩 가는 전교인 수련회를 끝으로 청년 찬양 사역도 마무리하고 담당 목사님께 이제 전도사 생활을 시작하겠노라 말하고는 조용히 교회를 나오게 되었다.

나의 첫 사역지는 고양시 화정에 있는 장로교 합동 측의 교회였다. 녹번동에서 개척교회로 시작하여 조금씩 부흥했던 교회였는데 담임목사님께서는 조용한 분이셨고, 햇병아리 전도사에게까지도 깍듯이 대해주셨던 분이셨다. 나는 지금까지 이런 목사님을 만나 본 적이 없다. 정말 존경받을만한 분이라고 생각을 한다. 우선 처우가 좋았다. 기본 사례비도 적지 않았다. 당시 다른 교회들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주셨다. 그리고 3개월에 한 번씩 100% 보너스를 주셨다. 역시 돈을 많이 주는 분이 좋은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나의 의기양양한 도전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셨다. 그분의 경험을 나에게 강요하거나 이해시키지 않으셨다. 당시에 나는 청소년을 맡았다는데 아이들과 함께 이런저런 행사를 하겠노라고 말씀드리면 늘 해보라고 하셨다. 그래서 당시 쇠퇴하던 문학의 밤을 진행하기도 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여러 가지 행사도 해보았다. 나는 이때 경험을 바탕으로 10여 년의 청소년 사역을 무난히 해낼 수 있었다. 당시 이 교회는 행신동에 건물을 새로 짓고 이전하는 시기였다. 그렇기에 많은 부담이 있었지만 처음 교회에 갔을 때 10여 명이 동태눈알을 하고 앉아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던 아이들이 1년 만에 40여 명으로 늘었고, 아이들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많이 늘면 좋아야 할 텐데 나는 부담이 되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뜻밖의 선물이라는 기쁨은 없다. 다만 두렵고 떨리게 한다.

대학을 다니며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가 결국 8월에 코스모스 졸업을 하게 되었다. 졸업하고 사역은 계속해서 하는데 대학원 진학에 대한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여력도 없었고, 당시 삶이 많이 힘든 시기였다. 방황이 계속되었다. 내 인생에 이렇게 방황하고 갈 길을 찾지 못했던 시기는 지금까지는 이때가 유일하다. 교회가 부흥할수록 기득권들이 늘어가기 시작했고, 그런 사람들이 사역을 힘들게 했다. 나는 새로운 삶을 살기로 다짐하고 외국에 나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결국 사역을 그만두고 정동교회 바로 앞에 있는 건물에 있는 여행사를 찾아가서 여행 가이드로 취업을 했다. 여행사 사장이 나를 잘 봤는지 나에게 이런저런 일을 시키며 말레이시아에 가서 리조트를 맡아달라고 하셨다. 처음 오픈하는 음식점에 가서 직원들 관리를 하라고 하시며 이런저런 준비를 시켰다. 을지로에 가서 직원들 유니폼을 맞추기도 하고, 여러 가지 사무업무를 하게 되었다. 여권도 만들고, 항공권까지 다 끊어 놓고 이제 출국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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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대학 때 친구 한 명을 만나게 되었고 그 친구는 나에게 가지 말라고 권유하였다. 당시는 가나무역이라는 회사에 위장 취업을 해서 해외 선교활동을 하던 ‘김선일’이라는 분이 피랍되어 죽게 된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기에 나를 적극적으로 만류하였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미래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혼란스러웠고, 그동안 힘들게 이끌어 오던 사역자의 삶을 접어야 함에 많이 힘들었다. 방황을 했던 시기에 나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무엇을 해도 기쁘지 않았다. 특히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감당해야 하는 무게감과 급격히 밀려오는 외로움에 마음이 어려웠다. 많은 고심 끝에 출국 1주일 전에 나는 사장님께 정중히 사과하고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인생에 만약은 없겠지만 이때 내가 해외로 나갔다면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인생은 선택의 길로에 매일 직면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의 짧은 삶에 많은 경험이 있었고, 삶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그런데 나는 처음 삶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이 시기 많은 고심을 했던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잘 풀릴 것만 같았던 삶, 기대하고 꿈꿨던 삶을 포기하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20대 후반으로 접어드는 이 시기에 나는 어떤 30대를 살아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그런 고민도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다시 일을 해야 했다. 살아야 했기에 다시 일을 시작했다. 

사역은 잠시 접어 두고 선택한 일은 건물 관리였다. 예전에 일했던 호텔의 시설관리팀에서 사람이 없다고 일을 하지 않겠냐고 연락이 왔다. 전기를 만져 본 적이 없고, 망치질이야 군대에서 해본 것이 다인데 나에게 시설과에 와서 일해보라는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그렇지만 일을 해야 했기에 시설과로 들어가 일을 하기 시작했다. 전기선을 만져 본 것은 컴퓨터 수리와 에어컨 설치하면서 어깨너머로 배운 것뿐이라 두려웠고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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