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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시련 속에서 찾은 또 다른 길(1)


성인이 되던 해에 나는 아무런 꿈도 없이 세상에 첫발을 내디뎠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곳저곳에서 깨지고 부딪치며 날카롭게 살던 나는 어느새 둥글둥글 해져가고 있었다. 꺾여보고 깨져보니 세상이 얼마나 험난한 곳인지 깨닫는 순간도 많았다.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남의 돈 받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아니?” 아마 이 말씀을 하신 것이 내가 20살 되던 해 처음 식당 주방에 취직할 때 속상해하시며 하신 말씀으로 기억한다. 어려서는 몰랐었다. 그런데 이제 조금씩 알 것 같다. 어려서 나는 모든 상황들을 원망했었다. 그래서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열심히 살면 다 잘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늘 바로 앞의 일들만을 해결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했다. 미래를 꿈꿀 자신도 기대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20대가 흘러가고 어느덧 서른이 되었다. 10대 때는 자유롭게 미래를 꿈꿨다면 20대 때는 막연한 미래를 꿈꾼다. 30대가 돼서는 미래를 위해 계획을 하게 되는 시기인 듯하다. 나는 그런 30대를 맞이하며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더 이상 물러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상황과 환경으로부터 얽매이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20대 초반에 어설프게 결단했지만 잠시 멈춰 섰던 걸음을 다시금 되짚어 걷기로 했다. 그 첫걸음은 신학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느 신학대학원에 갈지를 고민하게 되었고 고심이 깊어져만 갔다. 어려서부터 배워왔던 그들만의 리그(칼빈을 마치 신처럼 여기는 집단)에서 떠나고 싶었다. 이것이 아니면 다른 모든 것은 거짓이거나 변질된 것이라고 주입했던 그 자리에서 떠나고 싶었다. 왠지 나 같은 존재를 정죄하고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초교파적인 신학교를 찾다가 양평에 있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이하 아신대)으로 가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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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에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신학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컸다. 물론 생각과는 다른 결론으로 치우쳤지만 나는 그곳에서 여러 입장의 신학들을 접하게 되었다. 특히 아신대 m.div(목회학 석사) 과정은 야간에만 수업이 있기 때문에 낮에는 일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이런 이점이 있기에 신학대학원을 아신대로 결정하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 고민을 덜 수 있었다. 그래서 낮에 일할 곳을 찾았다. 남양주에 있는 @@@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사역을 하기로 하고 남양주 호평에 고시원을 하나 잡았다. 

그러나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그곳에서의 사역은 나에게 큰 시련을 주었다. 마음을 잡고 새롭게 시작하려고 했던 일들이 틀어지거나 꼬이게 되면서 질주하려던 동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돌아갈 수 없었고 계속 그 길을 걸어야 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라는 故 정주영 회장의 말처럼 나는 그곳에서 짧지만 굵게 목회의 첫 실패를 경험하게 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그런 시련을 통해 나는 또 다른 삶을 시작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그 방향등이 나를 비추고 있다. 시련은 또 추억으로 남았고 추억은 젊음의 호흡으로 흩어졌다. 

서른이 되던 해 찬바람이 매서운 1월, 나는 집을 완전히 떠나게 되었다. 집을 떠나 작은 자동차에다 이것저것 간단한 짐을 챙겨서 나오는 날 나는 생각이 깊어졌다. 왠지 이번에 집을 나서면 앞으로 이 집에서는 다시는 살지 못할 것 같았다. 왠지 불교의 스님들이 출가하는 그런 느낌이랄까!! 삶이 정해진 듯했다. 그런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나는 그때 출가하여 곧 결혼도 하고 가정도 꾸리게 된다. 자동차 트렁크에 짐을 한가득 싣고 떠나는 나를 배웅하던 부모님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렇게 나는 경기도 남양주 호평에서의 삶을 시작하였다. 나는 당시에 무척이나 어리석게도 전도사가 면접을 보러 가서 사례비가 얼마나 되는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물어보는 것 자체가 준비되지 않은 마음 같아서 물어보지도 않았다. 물론 알려주지도 않았다. 사역자가 속물같이 보이는 것이 싫어서 물어보지 않은 것도 있지만 먼저 알려주지 않는 것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사례비는 시세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생각했었는데…. 그래, 그때는 그렇게 순수했다고 치자. 그냥 어리숙하다고 평가해도 좋다. 그렇게 처음 인사하던 날 교회에서 환영을 받았고 인사도 열심히 했다. 그리고 퇴근 전에 담임목사가 나를 불러 놓고 대우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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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사 사례비는 70만 원을 주겠다고 했다. 뭐 이 정도면 무난했다. 그런데 담임목사님은 나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셨다. 새벽기도회부터 아침에는 교회 부설로 있는 어린이집 차량 운행과 오후 학교 가기 전까지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에서 보조교사로 일을 하라고 하셨다. 열정 페이를 요구하셨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혼란스러웠다. 부당함 앞에 사역자로서 감당해야 할 훈련이란 명목으로 인내해야 할 것일까? 마치 못하겠다고 하면 죄를 짓는 느낌이 들었다(당시 내 신앙관으로는 충분히 고민이 되는 부분이었다). 더구나 그 교회 성도들하고 잘해보겠노라 인사도 해 놓은 상황이라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것에 큰 부담을 느꼈다. 사실 나한테 앞뒤에서 욕을 하든지 말든지 중요하지 않았지만, 나로 인해 상처받을 교인들을 생각하니 결정이 쉽지 않았다. 나는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있고 사회 경험도 있는 사람인데 능력에 비해 정당하지 않은 대우를 받는 것 같았고 사실 그랬다. 자격증만 걸어놔도 이것보단 더 받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5~60대 목사님들이 이 말을 들으면 라떼(는 말이야~)를 찾겠지만, 당시 누가 봐도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음이 틀림이 없었다. 고민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을 받아 드릴 것인지 아니면 거부할지….

아는 지인에게 이런 과거 얘기를 하면 대부분이 어이없다고 말을 한다. 반응은 다양하다. 나를 비난하는 이도 있고 그 교회 담임목사를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당시 나로서는 고민이 되었다. 하나님께 나의 모든 삶을 헌신하기로 결정했던 터라 그런 부당한 것도 하나님께서 나의 부족함을 채우실 거란 기대가 있었기에 나는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바보 같았다. 나는 한 달여 간을 고민하고 고민하다 어느 아침 어린이집 차량 운행을 마치고 담임목사를 찾아갔다. 그리고 정중하게 말씀드렸다.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이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제 사임하겠습니다.” 그렇게 말씀드렸지만 나를 놓아주지 않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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