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제15화 언젠가 피어날 꽃을 위하여 (1) : 전지적 아내 시점


모든 살아 숨 쉬는 것은 세상에 나오기 직전이 가장 고통스럽다. 흔히 말하는 누에에서 나비가 되듯, 뱃속의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그 시간들, 철부지가 군 생활을 통해 성장하듯, 글 쓰는 이가 마지막 페이지를 탈고할 때, 수험생이 시험을 치르기 위해 마지막 준비를 할 때 등 우리의 삶 속에서 한 단계를 넘어설 때 우리는 고통이라는 것을 느낀다. 그렇기에 고통은 어떤 면에서 아프지만 기쁨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자신감 충만한 말이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러한 고통이 즐거움이 되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 그 조건은 바로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하다. 우리가 추구하는 믿음의 본질 또한 고통이라는 현실에서의 탈피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오늘은 이렇지만 내일은 다를 것을 믿기에 오늘의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때로는 감내하기 힘든 현실이 다가올 때도 있다.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것인지?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것인지? 나의 미래에 대한 의심과 못미더운 현실에 때론 지치기도 하고 회의감도 들기도 한다. 모든 것이 나로 인해, 나로 끝나면 좋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그것은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 즉 가족이 그 현실 안에 함께 있을 때 더 큰 회의감과 자괴감을 들게 한다. 나에게 주어지는 고통은 삶의 경험으로 단련되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 수 있는 일이지만, 나와 함께 함으로 고통 받아야 하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고스란히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더욱 고통은 심화된다. 이제는 나만의 문제가 아닌 공동의 문제가 된다. 

감리교에서는 목사가 되는 과정이 몇 가지가 있다. 수련목회, 담임전도사, 선교사, 군목 등 여러 과정이 있지만, 대부분은 수련목에 도전을 한다. 수련목은 말 그대로 수습단계의 과정이다. 장로교에서는 강도사 정도쯤 되는 위치라고 보면 될 것이다. 나는 이 수련목을 위해 인천에서의 전도사 사역을 접고 수련목 시험을 보기 전 미리 사역지를 서울 노원구에 있는 교회로 이동하게 되었고 약 6개월 간의 수련목 준비를 하여 시험을 보고 수련목 과정에 들어가게 되었다. 

수련목 과정이라는 것이 건전하고 건강한 교회의 제도에서는 너무나 좋은 제도이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는 최악의 제도가 된다. 한마디로 “더러워도 버텨야 한다.” 그렇기에 약 3년이라는 세월의 수습 과정을 지내면서 온갖 갑질은 다 받아내야 한다. 이곳저곳 사역하면서 이 꼴 저 꼴 다 본 터라 나에게는 그럭저럭 버틸 준비가 되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였으니 나 혼자만의 삶이 아니기에 아내가 함께 동행해야 했다. 아직 피지 못한 꽃을 피우기 위해 나와 더불어 가야 할 나의 아내에게 짊어지지 않아도 될 짐을 주고 있음에 나는 한 없이 미안하고 고맙다. 더욱이 앞으로 이어질 내용에서 알 수 있겠지만 때로는 아내가 신이었다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만약 신이었다면 날 용서할 수 있었을 텐데…

결혼을 하고 5년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이사를 3번이나 해야 했다. 나의 사역지를 따라 이곳저곳 알지도 못하고 익숙하지도 않은 동네에서 전전긍긍하며 살아가야 했다. 아내는 항상 외로워했고 어색해했다. 처음 신혼집을 차린 동작구 사당동에서는 몇 달 살지 않았고, 전도사로 사역하기 위해 경기도 고양시 원당으로 이사를 했으며 일에 미쳐서 살아가는 남편과 익숙지 않은 동네에서 아는 이 하나 없이 외롭게 살아야 했다. 그러다가 나의 학업을 위해 다시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로 이사를 했다. 다행히 이 동네는 아내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살던 동네라 외로움은 없었지만, 내가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기에 늘 배가 고픈 나날들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수련목회를 하기 위해 노원구 하계동의 어느 교회로 이사를 했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그곳까지 아내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응원하고 따라주었다. 그런 아내에게 나는 참으로 고맙고 미안했다. 

그러던 중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우리 가정에 찾아왔다. 나는 모든 것을 다 잃은 듯 슬펐고 어찌할 바를 찾지 못했다. 모든 상황이 다 원망스러웠다. 우리 부부는 결혼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아이가 없었다. 나이는 점점 들어가는데 아이가 생기질 않아 불안하기도 하기도 하고 초조하기도 했다. 병원에서는 둘 다 문제가 없다고 한다. 점점 아이에 대한 기대도 희망도 잃어가고 있었을 때 주변의 시선들이 따갑게 느껴졌다. 스쳐가는 말 한마디도 상처가 되었다. 특히 어떤 사모의 말은 아직도 생각이 난다. “아이가 없어서 부모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라며 아내를 꾸짖던 그 모습은 지울 수 없을 정도로 저주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 말은 애교에 가깝다. 더 큰 사건과 문제가 우리 부부 앞에 일어났다.

그렇게 수련목회를 하던 곳에서 나는 악마를 보았고, 더 이상 목회를 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을 받게 된다. 지금부터 하는 말은 조심스럽다. 손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아내에게 누가 될까 걱정이 되기 때문인데 그렇지만 나는 글이라도 남겨 누군가에게 기억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기록하려 한다.(계속) 
?

  1. 제15화 언젠가 피어날 꽃을 위하여 : 전지적 아내 시점 (1)

    제15화 언젠가 피어날 꽃을 위하여 (1) : 전지적 아내 시점 모든 살아 숨 쉬는 것은 세상에 나오기 직전이 가장 고통스럽다. 흔히 말하는 누에에서 나비가 되듯, 뱃속의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그 시간들, 철부지가 군 생활을 통해 성장하듯, 글 쓰는 이가...
    Date2022.03.05 By좋은만남 Views17
    Read More
  2. 제15화 언젠가 피어날 꽃을 위하여 : 전지적 아내 시점 (2)

    제15화 언젠가 피어날 꽃을 위하여 (2) : 전지적 아내 시점 당시 수련목을 하던 교회 담임목사는 몇 년 뒤 은퇴를 할 목사였다. 그렇다 보니 교회는 새로운 도전도 활력도 없었다. 오롯이 할당된 예배만 드렸다. 그래서 그런지 평일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 드물...
    Date2022.03.26 By좋은만남 Views17
    Read More
  3. 제16화 마을 속으로 들어간 목회 (1)

    제16화 마을 속으로 들어간 목회 (1) 서울시 도봉구로 사역지를 옮기고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었다. 수련목이 끝나가던 무렵 도봉지방(감리회 행정 지역구분-서울은 구별 구분) 내(內) 목사님들과 친목을 다지기 위해 모음을 하던 중에 지방에 속한 교회 중에 ...
    Date2022.04.16 By좋은만남 Views6
    Read More
  4. 제16화 마을 속으로 들어간 목회 (2)

    제16화 마을 속으로 들어간 목회 (2) 한발 더 나아가 사회화되어간다는 것은 마을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 안에 성숙이 있다. 나와 타인의 존재를 인식하고 함께한다면 각각 개인의 한계선을 더 뒤로 무를 수 있다. 성서에서 말하는 “서로 돌아보아 사랑...
    Date2022.05.14 By좋은만남 Views12
    Read More
  5. 제16화 마을 속으로 들어간 목회 (3)

    제16화 마을 속으로 들어간 목회 (3) 처음 마을에서 시작한 일은 ‘무지개 공간분과’였다. 마을에 사는 소외계층들을 위해 공간을 만드는 일이었다. 뒷골목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 수다를 떠시는, 지하 방에 사시는 독거노인이 더욱 안전하게 모임을 할 수 있도...
    Date2022.06.04 By좋은만남 Views9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Nex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