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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언젠가 피어날 꽃을 위하여 (2) : 전지적 아내 시점


당시 수련목을 하던 교회 담임목사는 몇 년 뒤 은퇴를 할 목사였다. 그렇다 보니 교회는 새로운 도전도 활력도 없었다. 오롯이 할당된 예배만 드렸다. 그래서 그런지 평일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교회는 칠흑 같았다. 목사는 조금 병적으로 모든 것을 제안했다. 종이 한 장도 본인에게 받아서 쓰게 했다. 프린트할 때에도 허락을 받고 써야 할 정도로 모든 것을 아끼는 것인지, 병적으로 그러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숨이 막힐 정도로 그렇게 했다. 

‘재정이 어려워서 그런가?’라고 이해하며 그렇게 1년, 2년을 죽은 듯이 살았다. 나에게는 목표가 있었고 꼭 가야 할 길이 있었기에 아내를 희생시키면서까지 꾸역꾸역 참아내며 살아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결혼하고 아이가 없어 고민하고 힘들어하던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던 담임목사는 어느 날부터 내가 없는 시간에 아내만 목양실로 불러 상담을 한답시고 문을 꼭 닫고 이것저것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외설스러운 표현으로 아내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내가 알까 봐서인지 자신하고 한 말은 둘만의 비밀로 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물론 아내는 나에게 이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고, 나는 늙은이가 주책 부리는가 보다고 생각하고 넘기려고 했었다. 그러나 아내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마음에 돌이킬 수 없는 큰 상처를 입었고 정신적으로 큰 충격에 빠진 듯했다. 
무엇인가 더 있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상황에 대해서 물었다. 아내는 울먹이며 나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수요일 예배가 끝나고 나는 예배당에서 정리하고 있었고 아내는 담임목사에게 불려 가서 상담이랍시고 자신이 기도해 주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며 만지지 말아야 할 곳을 만지며 기도를 했다는 것이다. 아내는 충격에 빠졌고 어떻게 할지 몰라 뛰쳐나와 방문을 잠그고 하염없이 울었다고 한다. 아내는 어려서부터 목사님들을 동경했고 목사님에 대한 신뢰와 신앙의 안내자로 여기며 절실한 믿음을 가지고 살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아내에게 성적 수치심과 좌절감,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을 안겨주었다. 아내는 이때부터 심리적으로 불안함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멘붕이 왔다. 이런 말을 전해 들은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분을 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나에게 아내는 그냥 이곳을 떠나자고 제안을 했다. 아내는 이 일이 더이상 커지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담임목사에게 사실 여부를 물었다. 나는 정말이지 어이없는 말을 듣게 된다. 자신이 신유의 은사(병 고치는)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딸 같아서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더 어이없는 것은 아내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기 시작했다. 나는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방법이 없었다. 아니 방법을 몰랐다.

성폭력 피해자들의 막연함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 돕는 사람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특히 그루밍을 당하고 있는 집단에서는 더욱이 그렇다.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라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다. 당시 처해 있는 우리의 상황이 너무 비참했다. 그러던 중 생각이 난 것이 평소 여성 청년들에게 하던 행동들이 생각이 났다. 엉덩이를 때리거나 어깨를 어루만지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하나둘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피해자들을 하나둘 찾아가 대화를 했지만, 그들은 자신이 피해자임을 감지하지도 못하고 있었고 내가 만나서 한 말들을 담임목사에게 전달까지 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내가 누굴 만나고 무슨 말을 했는지 모두 알고 있었다. 더는 도움을 청할 곳도 방법도 알 수 없었다.

당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지금도 너무 후회되고, 나 자신이 너무 밉고, 힘이 없다는 것이 너무 괴롭고, 지금도 생각하면 그냥 눈물이 난다. 특히나 아내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용서할 수 없는 죄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아내는 나에게 그냥 떠나자고 했다. 자신이 나의 앞길을 막는 것 같아 그런 생각을 한 것 같다. 아내와 나는 담임목사를 찾아가 교회를 나가겠다고 말을 했고 만약 내가 가는 길을 막거나 문제가 생긴다면 그때는 더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노라고 말을 하고는 교회를 나왔다.(수련목은 3년 임기 중 딱 한 번만 이동을 할 수 있다) 

나는 이때부터 저항 의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단절된 삶에서 다시 분절로 이어지는 삶 속에 나는 다시금 분절하며 살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리는 때로 막다른 길에 서게 될 때가 있다. 아무런 선택도 할 수 없는 때 우리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뒤를 쫓고 있는 문제와 직면해야 한다. 우리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분절은 저항뿐일 것이다. 타협이 아니라 저항해야 한다. 그러나 혼자서는 이 모든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힘을 모아야 한다. 만약 주변에 어려움에 처한 이가 있다면 힘을 더하며 함께 동행해 주기를 바란다. 

떠나기로 마음을 먹고 이곳저곳을 알아보다 도봉구에 있는 어느 교회에서 지원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다시 목사로서의 삶을 계획하고 다짐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사역지를 옮겨 남은 수련목 기간을 채워갈 수 있었다. 새롭게 옮긴 교회의 담임목사님의 목회 철학이 나와 잘 맞았던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지금까지 목회를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은인이 되어 주었던 분인 것 같다. 목사님은 나의 재능을 알아보고 지역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어느 날 주민센터에서 공무원이 찾아왔다. 자신이 동장이란다. 찾아온 이유는 동네의 일에 동참해 주기를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목사님은 사회복지 경험이 있는 나를 불러 함께 면담하게 하셨고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라고 하셨다. 그 후 동장과 함께 논의한 후에 교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저소득층 어린이들에게 방학 동안에 도시락을 제공하는 사업을 계획하게 되었다. 담임목사님은 전적으로 그 일을 나에게 맡기셨고, 교인들의 후원금을 모아 30명의 아이에게 방학 동안 도시락을 전달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그 후 좋은 호응을 얻어 60명까지 늘리며 지역의 어려운 아이들에게 편의점의 기름진 음식이 아닌 질 좋은 점심을 제공하게 되었고 이 사업은 내가 떠난 뒤에서 몇 년간 지속하게 되었다. 난 이 일로 인해 지역사회와 연을 맺게 되었다.

나의 목회의 방향의 전환점이 된 것은 앞서 말한 사건으로 인해서였다. 나는 교회 밖으로 나가는 목회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붕이 없는 교회, 찾아가는 교회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더는 교회 안에 있을 수가 없었다. 수련목을 하면서 주변에 요양원을 찾아다녔다.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들을 찾아가 예배를 드렸다. 수련목이 끝나고 교회 개척을 한 후에도 약 4년간을 계속해서 찾아가 예배를 드렸다. 나는 70여 명의 어르신을 만났고 4곳의 요양원과 주야간 보호소를 찾아가 예배를 드렸다. 어르신들과 만나는 시간이 나에겐 행복이었다. 그리고 유일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렇게 나는 마을과 지역으로 나의 사역지를 옮기게 되었다. 

인생에 아픔과 고통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고통이 우리에게 닥칠 때 우리는 때로 회피하고 피하려 할 때가 많다. 결국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상처가 된다. 낫지 않는 상처는 어느 날 또 다른 고통을 주기도 하고 아직 고통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기도 한다. 끝나도 끝난 것이 아닌 것! 하지만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 없다. 내일 필 꽃을 위하여 오늘의 고통을 감내하고 참아야 내일의 기쁨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오늘은 기회가 없을지라도 내일을 기회가 생길 수 있으니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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