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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6 19:08

방비엥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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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비엥 가는 길


토요일 아침.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침대 위를 허우적대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이 아침에 전화가?’ 평소 전화 올 때라고는 없으니 전화벨 소리 자체가 낯선 소음이었고 한참을 울리고 나서야 전화 받을 생각을 했더랬다. 황 선배님이었다. 조금 있다가 방비엥을 가자고 하신다. “조금 있다가요?” 눈을 부비적 대면서 시계를 보니 8시쯤 되었다. 아마 일전에 내가 몇 번 방비엥에 가고 싶다는 얘길 했었는데 그 말을 귀담아 들으셨던 모양이다. 조금 느닷없긴 했지만 감사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렇게 우리는 계획에 없던 1박2일 방비엥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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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비엥’이란 곳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방비엥은 라오스의 대표적인 여행지이다. 한국으로 치면 비교적 서울 가까이에 있는 양평, 가평 정도 되는 곳으로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각종 액티비티 스포츠를 할 수 있어서 각광을 받는 여행명소이다. 특히 ‘부루라군’, ‘탐남동굴’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예전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배낭족들이 한두 달씩 죽치면서 머물던 소박한 동네였는데 TV 프로그램 <꽃보다 청춘> 이후로 한국 관광객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져서 소위 물이 많이 흐려졌다는 얘길 전해들은 것도 벌써 수년 전의 일이다. 그래서 방비엥은 그다지 가고 싶지 않았다. 2019년 두 번에 걸쳐 라오스에 방문했을 때에도 방비엥을 일정에 넣지 않았던 이유는 그렇고 그런 여행객이 되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지난 4월 30일 라오스에 입국한 이 후로 두 달 가까이 줄곧 락다운 상황에 처해있으니 방비엥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 일단 (점점 락다운 조치가 완화되고 있는 중이긴 하지만) 여전히 격리된 일상이 가져다주는 답답함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시원한 자연경관을 바라보면서 나를 둘러싼 시야의 풍경을 바꿔주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또 ‘제2의 장가계’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아름답다고 하는 방비엥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던 것도 물론이다. 두 번째는 내가 이제 더 이상 이 곳을 구경꺼리로 삼는 여행객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라오스에 정착하여 살고 있는 주민답게 거창한 여행의 욕망과 자극적인 경험이 아니라 마치 마실 나가듯 별다른 바람 없이 소소하게 다녀올 수 있다면 방비엥에 가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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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티안에서 방비엥까지는 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이면 도착한다. 사실 라오스 최초의 고속도로인 <비엔티안-방비엥로>는 불과 작년 말에 개통되었다. 그전에는 울퉁불퉁하고 구불구불한 국도길로 4-5시간 거리였다고 한다. 우리는 황선배님의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내달렸다. 개통한지 얼마 안 된 도로답게 길은 시원하게 뻗어있었고 차창 밖으로 펼쳐진 라오스의 농촌풍경이 이국적으로 다가 왔다. ‘베트남 전쟁’을 다룬 영화에서나 볼법한 동남아의 논밭은 광활했고 그 끝에는 거대한 산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으며 위로는 파란 하늘이 아름답게 세상을 덮고 있었다. 또 길옆에는 물소 떼가 두루 누워 있고, 5층 높이의 높다란 야자나무들이 줄지어 밀림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1시간 만에 도착하는 것이 아쉽다며 황 선배님은 우리에게 국도의 느낌을 선사해주고 싶다고 하셨고, 차는 이제 고속도로를 빠져나가 국도 길로 들어섰다. 가히 황토빛깔 흙먼지가 우리의 시야를 가득 채운다. 그리고 울퉁불퉁한 길 위를 천천히 달리던 차는 작은 웅덩이들을 만나자 급기야 춤을 추기 시작했다. 편안하게 내달리던 고속도로와, 춤을 추며 연신 ‘으아’ 소리를 내뿜게 했던 국도길은 참으로 상반된 세계였다. 마치 매끈한 라이프 스타일의 한국과 투박한 스타일의 라오스만큼의 차이로 느껴졌다. 국도 길 위에서 만난 라오스의 시골마을 또한 굉장히 낯설게 다가왔다. 지난 두 달 동안 수도 비엔티안에서 만난 라오스의 풍경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많이 보였고 특히 아이들이 정말 많았다. 원두막에서 누워 잠을 자는 아이, 길 가에서 과일을 파는 아이, 동생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걸어가는 이이. 아이들의 다양한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썰렁한 한국의 시골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며, 라오스의 수도에서도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나중에 분명히 지방에서 활동을 하게 될 텐데 무엇보다도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필히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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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울퉁불퉁한 길로 가다보니 화장실이 가고 싶었으나 마땅한 곳이 나오질 않아 곤란해 하던 중, 황 선배님이 작은 마을에 차를 세웠다. 마을에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황 선배님의 지인 집에 방문하기 위해 마을 안으로 들어갔는데 외지인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마을 분들의 시선이 조금 부담스럽긴 했으나 친근한 표정들로 대해 주셔서 마음은 한결 편안했다. 하지만 주거 환경은 열악했는데 전깃불이 희미하여 집 안은 전체적으로 어두컴컴했고, 화장실 역시 편치 않았다. 순간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분명 1-2년 후에는 우리가 이런 곳에 머물게 될 것 같은데 머릿속이 조금 복잡해졌으나 이내 생각하는 것을 멈췄다. 우리를 친절하게 안내해줬던 집 주인 조이님과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나그네에게 집을 내어준 감사한 사람 앞에서 절대로 품어서는 안 될 생각이었다. 미안한 마음에 말을 걸었다. “짜오 쓰 냥?”(이름이 뭐예요?) “조이”라고 대답하신다. 그래서 내가 “조이?”라고 되물었다. 그러니까 “도이”라고 하신다. 순간 조이가 아니고 도이인가보다 생각하여 “도이?”라고 재차 물었다. 그러니 조이님은 “버맨.(아니요) 조이.”라고 대답하신다. 그리고 나서 내가 “조이?”라고 물으니 또 다시 “도이”라고 말한다. 알고 보니 ‘도이’는 ‘맞다’는 말의 높임말이었다. 그러니까 ‘조이?’ 하고 묻자 ‘도이’라고 답한 것이다. 그러면서 서로 한참을 웃었다. ‘조이? 도이?’를 몇 번 씩 주고받으면서 이 곳이 조금 더 편안해 졌다. 어두웠던 방 안도 아까보다는 훨씬 밝게 느껴졌다. 익숙해지고, 친근해지다보면 눈이 밝아지고, 심장이 느슨해지는가 보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이 신기했다. 나도 모르게 시나브로 적응한다는 말이 맞나보다. 눈빛도, 언어도, 느낌도 시나브로.


방비엥에 가는 길. 소소했지만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하는 여정이 되었다. 막상 방비엥에 도착해서 다음 날까지 한 것은 별로 없었다. 방비엥도 여전히 락다운 중이라서 ‘부루라군’ 등 가볼만한 곳은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고, 관광객이 없는 거리의 식당들은 대부분 셔터를 내리고 있었다. 조금 과장해서 유령마을인가 싶을 정도였다. 게다가 1시간 넘게 울퉁불퉁 춤추는 차를 타서 그런지 우리는 모두 멀미를 심하게 해서 저녁도 못 먹을 정도로 속앓이를 했다. 

그러나 아쉽지 않았다. 또한 락다운이라는 비수기 덕분에 신혼여행 때도 가본 적이 없는 리조트에서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묶을 수 있었으니 얼마나 횡재를 했는가. 라오스에 와서 나름 경험했던 첫 번째 여행은 잘 마무리 되었다. 비록 기대한 것과는 조금 달랐지만 우리가 현재 작은 것 하나에도 설렐 수 있는 마음 상태라는 점을 확인했으니 아주 만족스러운 여행이 아닐까? 


* 사진을 클릭하시면 보다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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