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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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9 00:04

아침, 호숫길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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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호숫길 위에서



요사이 일주일에 두 번,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 아침운동을 한다. 운동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은 아니고 그저 인공호수 주변을 2바퀴 정도 걷고 있다. 장소는 우리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븡탓루앙이다. ‘븡’은 라오어로 호수라는 뜻이고, ‘탓루앙’은 라오스의 상징적인 불탑의 이름이다. ‘븡탓루앙’이라는 이름은 아마도 중국인들이 이 곳 인공호수를 조성할 때, 나름의 랜드마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어간 작명이 아닐까 싶다.


고양시에 있는 호수공원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븡탓루앙의 규모는 상당하다. 빠른 걸음으로 1바퀴를 도는데 적어도 20-30분 정도 걸리는데, 한 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만큼의 크기인지라 제법 운동할 맛이 난다. 더구나 파란 호수와 푸른 하늘 그리고 녹색의 나무들로 인해 눈이 싱그러워지는 ‘워킹 뷰’는 이 곳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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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아침 6시에 운동을 시작하는데 집을 나설 때면 길거리에서 어김없이 탁밧 행렬을 만난다. 주황색 도포자락을 휘날리는 스님들이 탁밧을 위해 맨발걸음을 걷는 장면은 몇 번을 봐도 고개가 숙여지는 엄숙한 기운을 내뿜는다. 특히 비오는 날 맨발로 탁밧을 하는 뒷모습은 더욱 인상적이다. 스님들 뿐 아니라, 탁밧에 공양을 드리려는 사람들의 모습 또한 평범한 길거리를 영적인 기운으로 이끈다. 주로 노년의 아주머니들이 공양을 드리기 위해 길 위 앉아계시는데, 무엇인가를 정성스레 차려놓고 기도하는 자세로 스님들을 기다리는 모습은 한국교회의 새벽기도를 연상케 한다.  


부르릉- 기도의 행렬 사이를 자동차로 지날 때면 방해되지 않을까 싶어 왠지 미안스럽다. 나중엔 직접 동참하지 않더라도 옆에서 탁밧의 과정을 자세히 참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가능하면 공양하시는 분들 인터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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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운동을 하면서 새롭게 경험하는 또 한 가지는 바로 신선한 공기다. 라오스는 대략 37-42도 사이를 오르내리는 덥고 습한 날씨가 계속 되기 때문에 공기가 상당히 무겁다는 느낌을 받는다. 숨이 턱턱 막힌다는 표현을 자주하게 되는데 그 만큼 야외활동을 하기에 적당한 온도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른 아침 시간만큼은 예외이다.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쾌적한 습도와 온도가 아침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맞아주기 때문이다. 


븡탓루앙을 걸으면서 다양한 라오스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온 가족이 나와서 옥신각신하며 함께 걷는 풍경, 온몸을 쫄쫄이로 감싸고 구호를 외치며 사이클 자전거를 타는 무리들, 사람보다 덩치가 큰 개와 함께 덩실덩실 뛰는 사람들. 마치 축제의 한 복판을 걷고 있는 것 마냥 경쾌한 분위기가 호수 주변을 감싸고 있다. 또 이러한 분위기에 부합하기 위해서인지 종종 길거리 노상 카페가 차려져 있기도 하고 심지어 천막을 치고 핸드폰을 파는 간이 대리점도 등장한다. 아마도 평일 아침에 자동차를 가지고 이 곳까지 와서 아침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수준이 상당하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 같기도 하다. 


길거리에서 흔하게 보이는 오토바이가 이 곳에 단 한 대도 보이지 않는 점이 특이하다고 느꼈을 즈음, 함께 운동하는 지인은 라오스에 오토바이 도둑이 많기 때문이라고 얘기해주면서 이 곳에 오토바이를 맡아주는 주차장 사업을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과연 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고, 오고 싶어 하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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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븡탓루앙을 돌면서 ‘나는 여지없이 돈 많은 나라에서 온 땅빠탯(외국인)이구나!’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라오스의 서민과 민중들이 치열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이 때에 부자들이나 올 수 있는 호수를 한가로이 걷고 있다는 사실이 참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너무 조바심 내지 않으려고 한다. 주어진 상황 가운데서 치열하게 적응하고, 공부하고, 고민하다 보면 라오스 사람들의 삶 가운데 깊이 들어가 있을 거라 확신한다. 

아름다운 호수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언제까지나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여 걷는 걸음이 내일도 모레도 계속되기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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