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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의 또 다른 얼굴
-살라완 코로나 격리시설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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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도차이나 반도 전역이 코로나의 심각성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산업기반이 부족하여 태국과 베트남으로의 이주노동에 의존하고 있던 라오스는 갑자기 본국으로 강제 귀환하는 노동자들의 러쉬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코로나 확진자가 하루 20,000명을 상회하기 시작한 태국과 베트남이 극약처방으로 자국에서 머물고 있는 라오스의 노동자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라오스의 입장에서는 하루에 유입되는 인원만 2000-3000명 규모의 해외 유입자들을 감당할 수 있는 격리시설과 방역물품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에 라오스의 각 지방정부들은 국내외 NGO단체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고, 소식을 들은 우리 역시 이에 응답하며 500인분의 생필품/방역물품을 가지고 살라완으로 출발했다.(물론 라오스 생활 5개월차인 우리부부는 선임 선생님의 제안과 배려가 있었기에 이 활동에 동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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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 3일의 일정이지만 살라완주까지는 편도 10시간이 넘는 여정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은 오고 가는데 소요되었다. 왕복 2차선, 중간 중간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열악한 도로 상황, 게다가 소, 염소, 개, 닭 등 다양한 동물들이 도로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운전을 해서 가는 것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도 비엔티안을 벗어나 지방으로 가는 여정은 설레였지만, 좁은 길 양쪽으로 펼쳐진 라오스의 풍경은 예상했던 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방천지가 초록일색이었고 그 사이로 간간이 나무 집들이 나타났다. 살라완으로 향하는 10시간 동안에 ‘빡싼’, ‘타켓’, ‘사반나켓’ 등 라오스의 주요도시들을 통과하였는데 도시의 모습이 생각이상으로 소박하고 휑한 느낌을 받았다. 내 안에 복작복작한 서울물이 아직 덜 빠졌기 때문일 테지만 라오스의 소박한 풍경에서 왠지 모를 안쓰러움과 답답함이 느껴졌다.              
 
2박 3일 중 살라완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시간은 단 하루였다. 우리는 아침 일찍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다행히 살라완시의 시장님을 비롯한 공무원들이 우리 일행을 환대했고, 가는 곳마다 성심성의껏 안내해주었다. 
 일단 우리가 가져간 물품들과 함께 두 군데의 격리시설로 향했다. 별도의 시설이 마련된 것이 아니라 코로나로 인해 학생들이 등교를 하지 않는 초등학교 공간을 격리시설로 사용하고 있었다. 작은 학교지만 100여명 가까운 인원이 머물렀고, 운동장 중간에 노란 노끈을 설치하여 격리공간을 구분하고 있었다. 격리자들은 별다른 탈이 없는 한 2주간 그 노란선 안에서 생활하게 된다. 놀라운 것은 격리자의 대부분이 노동자라고 알고 있었던 사실이 무색하게도 청소년과 어린 아이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40-50대의 남성 노동자를 떠올렸던 나의 예상이 완전히 틀렸다. 이 곳에는 어린 노동자들이 많았고, 또 가족단위로 움직이는 경우가 흔해서인지 어린아이들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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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곳의 상황이 너무나 열악하다는 사실이다. 방역시설임에도 불구하고, 방역 관련 전문 인력이 단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고, 방역물품 또한 전무했다. 나름 외부에서 왔기 때문에 민폐를 끼치지 않아야 하다는 기조로 방역복을 챙겨 입고 움직인 우리 세 사람은 금새 민망해졌다. 그 곳에 있는 그 누구도 방역복을 입고 있지 않았을 뿐 더러, 그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것이 전부였을 뿐이다. 심지어 체온계 하나가 없어서 밤새 열이 나는 아이를 방치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20210919-06.jpg
알고 보니 격리시설을 지키는 사람들은 그 동네 자원봉사자들이었고,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면서 사람들을 돌보고 있었지만 인원도 물품도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100명 가까운 사람들은 5-6개의 교실에 나눠 들어가 공동생활을 하고 있었다. 침대를 비롯한 편의시설도 없었고, 샤워시설과 주방시설도 없었다. 가장 불편한 부분은 바로 화장실이라고 했다. 100여명이 사용하는 공간에 화장실이 단 두 개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격리시설의 상황이 이러하니 지난 8월말에 일일 확진자가 952명까지 단번에 치달았던 현상이 어떤 과정으로 발생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한번 코로나가 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다.     

열악한 상황 때문인지 우리가 가져간 물품이 한없이 작아보였다. 하지만 이 작은 것들도 아주 정중하고, 체계적으로 받아서 함께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방역수칙 때문에 운동장 한 가운데에 물품을 쌓아놓고 뒤로 물러난 뒤, 격리자들이 차례로 나와서 물품을 가지고 각자의 처소로 돌아갔다. 흔하지 않은 일이라 어리둥절해하는 사람도 있었고, 생글생글한 미소를 지으며 물품을 챙기는 사람도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겐 낯선 이방인의 방문이 꽤나 신나는 일이었던 것 같다. 
격리소 두 군데에 물품을 내려놓고 나서 우리는 살라완주의 주립 방송국과 지역의 마을 몇 군데를 방문했다. 저마다 너무나 열악한 상황에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론 가는 곳마다 기품 있는 태도와 밝은 미소로 우리를 맞이해주는 주민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사회주의 국가 특유의 단호하고, 정중한 연설풍의 인사말이 참 마음에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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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2박 3일의 살라완 여정을 통하여 나 개인적으로는 라오스의 가난하고 열악한 민낯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낭만적인 여행지, 자연친화적인 삶이 떠오르는 라오스의 이면에는 이렇게 열악한 상황과 치열한 삶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비록 남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을 지라도, 기품과 예의, 그리고 정중함과 당당함을 잃지 않는 라오스 사람들의 얼굴 또한 새롭게 만날 수 있었다. 또한 자기 개인의 안위보다 위기에 처한 사회 공동체의 일에 발 벗고 나서는 사람들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생각해 보라. 해외 유입 격리자들은 2주가 지나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간다지만, 이 곳 격리시설을 지키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수고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이 코로나 상황이 종식될 때 계속 될 것이다.    
라오스 사람들의 품성은 밤이면 집 대문마다 켜져 있는 전깃불을 보면서도 알 수 있다. 라오스는 전기 생산력이 낮기 때문에 대부분의 거리에 가로등이 없어서 저녁만 되어도 큰길 마저 완전한 암흑으로 변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는 불빛이 있다. 그것은 집집마다 자신의 대문 앞에 불을 켜 놓기 때문이다. 전기가 부족하여 자신의 집 안은 어둡게 해놓을지언정 자신의 집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위해 불을 켜놓는다고 한다. 비록 국가적 가난으로 인해 사회시스템이 열악할지언정 타인을 향한 배려의 마음으로 어둠을 극복해가는 모습 속에서 라오스의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2박 3일의 짧은 여정을 통해 라오스의 다양한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앞으로도 라오스에 담겨있는 더욱 다양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길 바란다. 미소 짓는 표정 가운데 숨겨진 서글픈 사연들, 혹은 힘겨워 보이는 상황 가운데 담겨있는 희망의 증거들을 계속해서 마주하며 끊임없이 하나님의 표정과 시선을 따라 동행하게 되길 기대한다. 코로나로 인해 전세계가 함께 아파하는 지금이야 말로 서로를 향한 마음이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아무쪼록 그리스도의 향기가 더욱 절실해지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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