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도 역사가 될 거야.
라오스 제2의 도시 루앙프라방에 야구팀<Red Rider>가 창단되었다. 야구팀 하나가 창설된 것이 무슨 큰 일일까 싶지만 직접 현장의 열기를 느껴본다면 아마도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소들이 여물을 뜯고 있는 초원(?). 이 곳은 루앙프라방 수파누봉대학교의 운동장이다. 만약 축구 골대가 없었다면 운동장으로 인식하기조차 어려운 벌판이지만 멋드러진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단단한 기합소리를 낸다. 그들이 이리 저리 힘껏 뛰어다니며 몸을 풀고 난 뒤에 드디어 루앙프라방 최초의 야구경기(시범경기)가 시작되었다. 공을 던지고 방망이질을 하기 시작하자 낯선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청년들(수파누봉대학교 학생)의 눈빛이 반짝거린다. 난생처음 야구를 접하기 때문에 경기규칙도 전혀 모르고, 진행 상황도 알 수 없지만 흥미 진진한 표정으로 역사적인 이벤트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조선 최초의 야구 이야기를 다룬 영화 <YMCA 야구단>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앞으로 이들 중 몇몇은 그라운드에서 멋지게 뛰고 있는 선수들처럼 야구 유니폼을 입게 될지도 모른다.
11년 전 비엔티안에서 라오스 최초의 야구단이 만들어질 때도 꼭 이랬다. 제이브라더스와 이만수 감독님은 야구의 불모지였던 라오스에 야구팀을 만들고, 라오스야구협회가 구성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그렇게 라오스 국가대표 야구단이 탄생하였고, 지난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싱가포르를 상대로 사상 첫 승을 달성하였다. 10년 만의 쾌거였다.
지금 이 운동장에서 시범경기를 하고 있는 선수들이 바로 이번 아시안게임 첫 승의 주역들이다. 이들은 야구를 통해 경험한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루앙프라방에서도 자신과 같은 후배들이 생겨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한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루앙프라방 야구팀<Red Rider>(그런데 레드라이더는 무슨 뜻일까)을 실제적으로 감독하고, 운영하며, 책임지는 사람이 우리의 친구 손사랑 감독님(감리ㄱ ㅅ교사)이다. 비록 야구인 출신은 아니지만 어느 누구보다 깊은 사랑과 책임감으로 이 역사적인 팀을 잘 이끌어 나갈 것이라 생각된다. 라오스의 청년들을 향한 그의 애정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손사랑님의 애정과 청년들의 열정이 시너지를 내서 은은하지만 여운 가득한 빛을 발하게 되길 간절히 염원한다. 이 빛은 라오스 전역에서 많은 청년들에게 힘이 되고, 숨이 되고, 샘이 될 것이다.
손 감독님 덕분에 우리 역시 이 멋진 순간에 기록자로 참여할 수 있었다. 더불어 수파누봉대학교 신문방송학과(미디어학과) 학생들과도 인연을 맺게 되었다. 학과 스튜디오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나름 방송시설과 편집장비가 잘 갖춰져 있다. 스튜디오에서 만난 찐다, 웹, 끄 세 사람은 모두 취업을 앞둔 4학년이다. 미디어쪽에서 일하고 싶다고 하여 우리가 곧 이주할 사완나켓으로 내려오라고 했더니 그저 웃음만 가득하다. 기분 좋은 만남이었다. 이 곳에서 만난 다양한 청년들의 미소와 반짝거리는 눈빛들이 시간이 흘러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계속 이어지길. 그리고 또 하나의 역사를 쌓아가는 모든 이들의 걸음 속에서 따뜻함이 풍겨나길 두 손 꼬옥 모았다.
이번 일정에서 만난 또 하나의 선물 같은 시간은 루앙프라방까지 직접 운전을 하며 만난 라오스의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수도 비엔티안에서 루앙프라방까지는 편도 8시간이 걸리는 쉽지 않은 여정이고, 더구나 우기의 끝자락이라 여전히 길이 좋지 않았다. 우리의 자동차는 온갖 구덩이를 지나며 시종일관 덜컹덜컹 춤을 췄고, 유은과 나는 멀미를 토로했다,
하지만 푸른 하늘과 초록빛 자연의 풍광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해 줬다. 루앙프라방 가는 산길이 위험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나름 긴장을 했었는데, 왜 아무도 아름답다는 얘기를 해주지 않았던가.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간간히 마을을 지날 때 우리를 향해 손 흔들어 주는 시골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를 만났을 때이다. 이 산골에도 사람이 산다. 교복 입은 아이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삶을 축복해주었다. 너희들이 이 땅의 희망이요. 미래이다.
루앙프라방에 새로운 야구팀이 창단한 것도 역사요. 라오스 방방곡곡에 숨어있는 멋진 풍경과 또 그 사이 사이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오늘도 놀라운 역사가 아닐까. 역사적인 여정을 카메라로 기록하고, 또 두 눈 가득 담아올 수 있어서 참 감사한 시간이었다.
사회주의국가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