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콕사앗 마을이 들려준 이야기 


지인에게 <콕사앗 소금마을>이라는 곳을 소개받았다. ‘소금마을’이라는 단어를 듣고 조금 의아했다. 라오스는 바다가 전혀 없는 내륙국인데 어떻게 소금이 나오는 마을이 있단 말인가. 더욱이 시내에서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위치에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은 더욱 믿어지지 않았다. 혹 주변에 소금광산이 있어서 암석 안에 있는 소금성분을 채취하는 걸까. 유럽 오스트리아 할슈타트란 곳에 커다란 소금광산이 있다는 얘길 들어본 적이 있어서 상상력을 발동해보았지만, 이내 비엔티안 주변엔 큰 산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산이 아니라 강인가? 메콩강은 세계에서 가장 큰 강 중의 하나니까 혹 염분이 들어 있어서 소금이 채취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것 또한 순전히 상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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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와 소금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두고 이리저리 호기심을 발동시켰지만 그저 시원한 바깥바람을 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집에서 출발하여 소금마을에 도착하기까지 고작 30분 정도. 차창 밖을 초록색으로 메운 라오스의 풍경을 바라보며 이미 우리의 마음은 노긋해졌다.
하지만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난관에 부딪혔다. ‘콕사앗’이라는 마을을 찾긴 했는데 어딜 봐도 소금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작은 마을을 차로 한 바퀴 도는 동안 눈에 보이는 풍경은 여느 평범한 마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상상컨대, ‘소금마을’이라고 하면 자고로 염분을 품은 하얗고 커다란 암석들이 여기저기 쌓여 있고 마을 주민들이 소금 덩이에 둘러싸여 살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러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점점 초조해지는 가운데 마침 눈을 마주친 마을 주민에게 “끄아?”(라오스어로 소금)라고 아주 짧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는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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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이 아니라, 다른 마을인가 보다.’ 하고 손가락이 향한 방향의 모퉁이를 돌아 나가는데 울타리로 둘러싸인 학교건물 같은 담장이 나타났다. 노란색 간판에는 <홍응안 파랏 끄아 콕사앗 ໂຮງງານຜະລັດເກືອໂຄກສະອາດ>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홍응안 ໂຮງງານ'이라면 공장을 가리키는 라오스 말이다. 아, 이곳은 소금마을이 아니라 소금공장이었구나. 순간 실망감이 밀려 왔다. 운치 있는 마을의 전경을 기대했는데 공장이 웬 말인가. 하지만 제조공장이 거의 전무한 라오스에서 ‘공장’을 만나는 일도 흔치 않은 일이기에 일단 들어가 보기로 했다.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공장 문은 열려있었고, 수위아저씨가 밝은 미소로 우리를 맞아주셨다. 
정문을 지나 몇 발자국을 옮기니 담장 안은 마치 목재공장 같았다. 커다란 나무들이 쌓여 있고 나무를 자르는 기계들이 여기저기에서 뒹굴고 있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아도 소금과 관련된 시설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다만 어디선가 나무를 태우는 듯 매캐한 냄새가 진동해서 뭔가 작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것쯤은 짐작할 수 있었다. 냄새를 따라가 보니 눈앞에 길게 늘어서 있는 파란색 바구니들이 나타났다. 그 안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하얀빛깔 무더기가 바로 소금이었다. 바구니의 파란색과 대비를 이루며 깨끗하고, 단아한 모습을 선사하고 있는 하얀 소금이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비엔티안 교외에서 이렇게 깨끗한 소금을 만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풍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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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둘러보니 이곳은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염전의 형태가 아니었다. 물이 가득 담긴 커다란 철판이 줄을 맞춰 정렬되어 있고, 여성 노동자 몇 분이 그 철판 사이를 다니면서 넉가래로 철판 안에 담긴 물속을 휘휘- 젓고 있었다. 철판은 각기 장작불로 데워지고 있었는데, 그 안을 들여다보니 응고되기 직전의 소금 알갱이들이 보글보글하는 소리와 함께 이리저리 움직였다. 아마도 한국의 염전에서 태양열을 이용하여 소금을 채취하는 것과 비슷하게, 이곳에서는 물을 장작불로 끓여서 소금을 채취하는 것 같았다. 소금광산이나 메콩강을 상상했던 내 생각과는 달랐다.
일하고 계시던 노동자분과 짧은 대화를 나눈 끝에 알게 된 사실은 우리를 더욱 놀라게 했다. 글쎄, 이곳에서 끓이고 있는 물의 정체가 다름 아닌 지하수라는 것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이 지역의 지하수에는 염분이 가득하다고 한다. 공장에서는 그 지하수를 1차로 햇빛에 말리고, 2차로 장작불로 끓여서 순도 높은 소금을 얻어내는 과정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상해보면 지하수를 처음 발견했던 마을 사람들로서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기껏 물이 필요해서 땅을 팠더니 짜디 짠 소금물만 흘러 나왔으니 말이다. 그 때 이 곳 콕사앗 사람들은 <성서> 속에 등장하는 ‘마라의 쓴 물’을 만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절망했을 것이다. 그리고 콕사앗은 한동안 저주받은 땅으로 불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먹을 수 없는 물이 솟아나는 죽음의 땅, 콕사앗.
 하지만 저주받은 땅은 이내 소금이 솟아나는 땅으로 바뀌었다. 누군가는 절망의 땅이라며 콕사앗을 떠났을 테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이 땅에 발 붙이며 살았던 이들이 있었다. 암담한 상황 속에서도 이곳에서 꾸준히 삶을 일구었던 이들 덕분에 바다가  없는 라오스에서도 소금을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오랜 과정이 얼마나 지난하고, 또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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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북하게 쌓여 있는 소금을 바라보는데, 비지땀을 뻘뻘 흘리며 넉가래질을 하고 있는 노동자가 내 시야에 들어온다. 결국 이 소금은 쉬는 날도 없이 무더운 장작불과 끓는 물 위에서 고생하는 노동자들의 땀방울로 인해 탄생할 수 있었다. 땅 속을 흐르던 물은 노동자들의 손길로 인해 소금으로 창조되고, 쓸모없었던 땅이 시나브로 의미있는 땅으로 거듭난다. 이것이 어디 콕사앗의 이야기뿐일까. 이 땅의 모든 변화는 결국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노동하고 땀 흘리는 사람들 덕분에 가능한 것이다. 마른 나무로 아궁이 속을 휘저으며 장작불을 지피는 사람. 팔팔 끓고 있는 소금물을 자기 키보다도 더 큰 넉가래를 들고 고르는 사람. 쌓아놓은 소금 바구니 옆에서 주섬주섬 한 포대, 두 포대를 세어가며 소금을 채우는 사람을 바라보며 각자의 자리에서 주어진 역할을 위해 땀 흘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기분전환차 가볍게 발걸음한 곳에서 생각 이상으로 큰 배움을 얻고 돌아왔다. 전쟁의 상처와 빈곤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라오스에서 우리 역시 작은 일에 땀을 흘리며 평화를 일구어 가야겠다. 힘겹지만 가열찬 노동자들의 손길과 발길이 만들어 가는 기적 같은 변화를 향해 우리의 눈길이 닿을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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