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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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9 14:06

친구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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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오고 있다



사완나켓에 이주하고 두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한국에서 서울과 수도권에만 살던 우리가 낯선 라오스에서, 그것도 수도에서 10시간 이상 떨어진 지방 도시로 이주하고 정착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막상 이 곳에 와서 경험하고 있는 사완나켓의 분위기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조용하고 편안하다. 라오스의 인사말 ‘사바이디ສະບາຍດີ’에 들어있는 ‘사바이ສະບາຍ’(평안하다)라는 표현이 참 잘 어울리는 곳이다. 특히 해가 뉘엿뉘엿 지는 늦은 오후, 메콩강변에 나가보면 붉은 노을과 함께 하루를 정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표정을 지닌 채 서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과연 도시의 이름이 왜 ‘사완(라오어로 천국)’인지 짐작해 볼 수 있을 정도이다. 이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평화로운 삶 가운데, 우리가 고민하는 평화의 작은 밥숟가락 하나 정도 살짝 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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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도시에서 행복하게 적응하고 있는 요즘 우리의 고민이 있다면 바로 좋은 사람(친구)을 만나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자신 없는 일이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인데, 더욱이 낯선 타지에서 언어와 문화, 생김새마저 다른 이들과 좋은 인연을 만들어가기란 정말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요즘들어 캄팟 생각이 많이 난다. 캄팟은 우리가 라오스에서 처음으로 만난 친구이자, 동역자이다. 멀리 있지만 지금도 함께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와의 만남과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절감하고 있다. 그와 처음 만난 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소가 지어진다. 


모든 것이 낯설었던 라오스 생활 초기, 우리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작은 원룸형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었다. 이사 온 지 채 일주일이 되지 않은 어느 날,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온 집안에 쿰쿰한 악취가동하는 것이 아닌가. 작은 공간이니만큼 냄새의 출처를 추적하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냄새의 진원지는 바로 화장실. 검은 오물들이 사방을 뒤덮고 있는 화장실은 흡사 폭탄이라도 맞은 듯 엉망진창이었다. 난감해하고 있던 차에 아파트 관리실로부터 연락이 왔다. 옆집 배수관 공사를 하다가 공기압이 잘못되어 오물이 역류했고 결국 우리 집 화장실 변기로 터져 나왔다는 설명과 함께 상황정리를 위해 직원을 보내준다는 것이다. 잠시 후 두 명의 직원이 청소 장비를 들고 우리 집에 당도했다. 

한 사람은 아파트에 처음 왔을 때 우리를 안내해줬던 ‘디’라는 이름의 여성이었고 다른 남성 직원은 그날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비록 사건이 우리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니었지만, 전쟁터 같은 곳으로 들어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안쓰러워서 우리는 화장실 곁을 떠날 수 없었다. 혹여 도울 일이 있을까 대기하며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작업이 시작되고 20분이 다 되도록 디씨 혼자서 고군분투하며 일하는 동안, 남성 직원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뒷짐 지고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닌가. 이를 유심히 지켜보던 우리의 마음이 점점 불편해졌다. “아니 도대체 저 남자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지? 진짜 이상한 사람이네.” 참다못한 내 입에서 혼잣말이 튀어 나왔고, 순간 그의 눈과 내 눈이 딱하고 마주쳤다. 민망함을 느낀 나는 이내 눈을 피했다. 얼마 전 식당에서 현지인 종업원의 면전에 대놓고 한국말로 흉을 보던 꼴사나운 여행객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음 날, 남성 직원을 다시 아파트 복도에서 만났을 때, 그는 우리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이름이... 뭐예요?...” 순간 내 귀로 또렷하게 들려온 익숙한 언어에 화들짝 놀랐다. 세상에! 그가 한국말을 할 줄 알았던 것이다. ‘혹시 이상한 사람이라고 했던 내 말을 알아들었을까?’ 나는 어제의 순간을 떠올리며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내 얼굴색의 변화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그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말을 걸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저의 이름은... 캄팟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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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팟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우리는 국적도, 나이도 달랐고 심지어 첫인상이 유쾌하지도 않았지만 금새 친구(?)가 되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 역시 비엔티안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우리만큼이나 모든 상황이 낯설다고 했다. 화장실을 정리하러 온 날도 수습사원으로써 매니저인 디씨에게 일을 배우는 중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완벽하게 그 상황을 오해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한국어가 서투르기 때문에 그날 내가 했던 말은 알아듣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사람이었다. 대학에서 수학교육과를 전공했지만, 수학교육보다는 다른 일에 관심이 많았다. 관광도시 루앙프라방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외국인을 만날 기회가 많았는데, 그 때 한국어와 사진 촬영을 공부했다. 그는 종종 자신이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피사체를 다루는 관점이며, 구도와 촬영기법까지 보통실력이 아니었다. 또한 본인이 작곡한 노래를 직접 부르고 스스로 제작한 뮤직비디오가 있을 정도로 음악과 영상에도 흥미가 많았다. 우리는 예술적인 재능이 뛰어나고, 여러 가지 사안에 호기심이 많은 청년 캄팟과의 만남이 마냥 신기했다. 우리 역시 한국에서부터 음악과 영상에 대한 관심이 많았을뿐더러, 향후 ‘라오스 불발탄 문제’에 관한 다큐멘터리 제작을 꿈꾸며 좋은 사람과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작은 만남이 더욱 깊은 인연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은 라오스 이주 초창기의 막연했던 불안감과 현지 적응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우리에게 한줄기 빛이자 샘이 되어 주었다. 비록 오해로 시작된 만남이었지만, 서로에게 기쁨이 되었고, 함께 영상작업을 하는 파트너로서, 지금까지도 동역하고 있는 그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우리는 사완나켓에서도 캄팟과 같은 친구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좋은 사람을 찾기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기 보다는, 먼저는 기다리려고 한다. 우리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면서 말이다. 


아래의 시구는 낯선 곳에 와서 마음이 답답할 때, 위로가 되어주었던 정명성 목사님의 <길>의 한 대목이다. "길이 네게로 오고 있다"는 마지막 문장처럼 좋은 사람이 우리를 향해 오고 있는 중이 아닐까. 마음을 열고, 눈을 맑게하고 기다려야 겠다. 사완에서의 좋은 만남을 위해 마음 모아주시길. 


오늘처럼 긴 겨울밤에는 

바람도 어둠도

때론 길도

길을 잃는다


길을 잃는 곳이 길이다

바람 가운데, 어둠 속에

길 밖에 길이 있다


길 찾으려 애쓸 것 없다

길이 네게로 오고 있다


- 정명성 <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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