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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아닌 오늘,  바깥이 아닌 여기 방구석에서

30대 초반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던 때가 있었다. 주중이고 주말이고 정말 눈코 뜰 새 하나 없이 나름의 목적을 향해 앞만 보고 달리던 시절, 한 선배가 내게 쏘아붙이듯 물었다. “도대체 뭘 위해서 그렇게 바쁘게 사는 거냐?” 그 때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잠시 멈칫했다. 내게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원대한 포부가 있었지만 나의 분주한 하루하루가 그 목적을 향해 가고 있는지는 좀처럼 확신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정해진 프로그램대로 그저 열심히 주어진 쳇바퀴나 굴리는 다람쥐 신세가 아닐까 조금 아찔해졌다. 결국 복잡해진 마음으로 선배의 질문 앞에서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한 채 얼버무렸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도 정신없이 바쁜 삶은 계속되었는데 속도가 붙은 굴렁쇠 같은 일상은 좀처럼 멈출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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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정말이지 단 하루만이라도 맘 편히 쉴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간절히 바랬었다. 하지만 과연 그 날이 오긴 오는 걸까? 라는 푸념섞인 의구심을 품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다시 한 번 절감하지만 시간은 정말 빨리 흘러간다. 그리고 믿기 어렵겠지만 지금 현재의 나는 좋으나 싫으나 매일같이 침대 위를 뒹굴 거리는 신세가 되어 있는 중이다. 꿈은 이루어지나보다. 

지금 이 곳은 라오스 비엔티안의 한 호텔방 안이다. 코로나 시국이라 2주간의 ‘자가격리’는 당연한 처사라지만 엎친데 덮친격으로 라오스 전역이 락다운 상태에 들어갔고, 오늘부터는 방역지침이 더욱 강화되어 간단한 산책도, 배달음식도 허락되지 않게 되었다. 국가적으로는 매우 급박한 상황일 테지만 호텔방 안에서 한 없이 한적한 침대 위에 누워있던 내게 이 국가적인 급박함은 그다지 와 닿지 않는다. 그저 좁은 방안이 답답하기만 할 따름이다. 더욱이 아침나절 정전의 폭풍이 지나가더니 호텔 전체의 와이파이가 먹통이 되어버린 탓에 진정한 고립무원의 상태에 돌입했다. 방 안에 갇힌 채 진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만 있게 된 것이다. 
크지 않은 공간에 큰 침대 하나와 작은 탁자가 전부인 호텔방. 그나마 바깥과의 유일한 연결통로가 되어 주었던 인터넷마저 끊어져버린 이 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스마트폰을 부여잡고 습관처럼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연신 들어가 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네트워크가 원활하지 않다’는 대답뿐이다. 그럼에도 순간순간 스마트폰을 거머쥐는 나의 손이 그저 애처롭기만 한데 그나마 심심한 공간을 활력 있게 만들어주는 존재는 달달이와 두두 우리의 두 고양이뿐. 
하루 종일 누워만 있을 수 없어서 국민체조도 해보고, 라오스어 공부도 해보지만 시간의 흐름은 느리기만 하다. 이렇게 2주를 지내야 하고, 또 락다운이 풀리지 않는다면 비슷한 생활을 언제까지 해야 할지 모를 불안함이 호텔 방안을 스멀스멀 채우고 있을 때 쯤, 예전에 읽었던 소설 <로빈슨 크루소>의 한 대목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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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을 무인도에 갇혀 지내던 로빈슨은 어느 날 해변 가에서 사람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이 얼마나 기다리던 사람의 발자취인가 그런데 그 순간 자신도 알 수 없는 엄청난 두려움에 휩싸인다. 사람이 무섭다는 사실에 그 자신도 소름이 돋았다. 그 날 저녁 로빈슨은 일기장에 이런 말을 기록한다. ‘사람들은 내일이면 분명히 두려워 할 것을 오늘 그토록 그리워한다.'

격리된 채 한가로움을 참지 못하는 내가 지금 이 순간 진짜 그리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다시 밖으로 뛰어나가 누구보다 바쁘게 살아가는 것일까? 그건 10년 전에 많이 해봤지 않나. 
반대로 10년 전의 내가 그토록 바랬던 휴식으로 충만한 지금의 한가로움을 왜 난 누리지 못하고 있을까. 자가 격리가 끝나고 다시 일상이 시작되면 분명히 허걱 거리며 지금의 순간을 그리워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갇혀버린 방안, 멈춰버린 일상이지만 오늘을 누려야 할 텐데. 로빈슨 크루소처럼 지금의 나 역시 내일이면 몹시 두려워 할 것들을 그토록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내게 주어진 행복을 충만하고 풍성하게 경험해야지. 내일이 아니라 오늘 속에서, 바깥 어딘가가 아니라 이 방구석에서 희망어린 생기를 찾아봐야지. 내일은 아주 생기 있게 뒹굴거릴테다.

2021년 5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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