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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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보다는 테이블 위를 보라

비록 원룸의 작은 공간이지만 우리 방에 긴 테이블을 들여놓으려고 한다. 식탁도 되고, 글쓰기와 그림 작업도 하며, 손님이 오면 도란도란 이야기도 할 만큼 충분히 넓은 테이블 말이다. 맞다. 여느 카페에 가면 사람들이 노트북을 올려놓고 몇 시간이고 공부도 하고, 수다도 떠는 그런 테이블. 지금 우리 방에는 테이블이 꼭 필요하다. 핑계라면 핑계지만 사실 이사하고 몇 일째 글도 제대로 못쓰고, 라오스어 공부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생처음 낯선 땅에 발 딛은 우리로써는 테이블을 구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20210606-05.jpg
우리의 그런 사정을 아셨는지 어제 저녁 황 선배님께서 좋은 테이블이 있다며 한 번 보러가자고 하셨다. 황 선배님은 덕짬파 호텔 자가격리 시절부터 한국음식을 고파하는 우리에게 김치도 가져다주시고, 와이파이가 끊겼을 때는 핸드폰 데이터 유심도 챙겨주셨던 고마운 분이다.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른 채 유은을 집에 두고 나 혼자 황 선배님을 따라 나섰다. 새벽 6시 30분부터 움직였기 때문에 머리도 안감은 채로 졸린 눈을 비벼가며 발걸음을 옮겼다. 참고로 이 곳 라오스에서는 사람들의 일과가 대부분 새벽 5-6시경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낮12시만 되어도 날씨가 너무 더워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이제 나도 매일 새벽5시에 일어나야 하는 것일까. 아, 도대체 누가 동남아 사람들을 게으르다고 했던가!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단독주택. 그 곳에 도착하니 60대 부부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신다. 집은 라오스의 일반적인 가옥 스타일이었는데 조그마한 마당도 있고 주변 풍경과 잘 어울리는 단아한 단층집이었다. 잠시 후에 한 여성분이 우리보다 조금 늦게 도착하셨는데  그 분도 60대 정도로 보이셨다. 다들 반갑게 인사하고, 익숙한 듯 거실과 주방 사이에 있는 긴 테이블에 앉아 책과 필기도구를 꺼내신다. ‘그래 이 테이블이구나.’ 다섯 명이 각자 노트북과 필기도구들을 늘어놓고 앉은 채 편안하게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긴 테이블이 그 곳에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나의 시선이 꽂힌 곳은 테이블이 아니라 테이블 위에 펼쳐져 있는 라오스어 교재였다. 아, 라오스어! 실은 지난 1년간 한국에서 나름 라오스어를 배웠다지만 도무지 실력이 늘지 않아 노심초사 걱정하고 있던 중이었다. 낯선 나라에 사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낯선 언어를 배운다는 것이 가장 걱정거리였는데 오늘 예상치 못한 ‘라오스 언어교실’에 동석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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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들은 라오스국립대학교에서 운영하는 라오스어학 과정인 <삐끼암> 학생들이었다. 코로나로 락다운이 실시되는 바람에 학교에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원래는 각자 집에서 컴퓨터로 비대면 수업을 해야 하지만, 집주인인 심 원장님의 제안으로 함께 모여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매일 4-6시간씩 이렇게 마주 앉아서 컴퓨터 속 아짠(교수님)의 말씀에 따라 라오스어를 쓰고, 듣고, 읽고, 말하고 있다. 다들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학구열이 대단했다. 본문을 통째로 외워서 서로 대화문을 주고받기도 하고,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의견을 나누며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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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에는 없었지만 삐끼암 수업을 미리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내게 있어서 아주 뜻밖의 감사한 시간이었다. 3시간여 수업을 함께하면서 느꼈던 두 가지가 있는데 한 가지는 다들 열정이 대단하다는 점이다. 나이와 상황 그리고 조건과 상관없이 열심히 라오스어 공부에 몰입하는 모습 그자체로 정말 멋있게 보였다. 나 역시 결과보다는 이 곳에 잘 정착할 수 있게 열심히 몰입하는 과정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위안을 얻는 시간이었다. 
두 번째는 수업에 참여하면서 나름 내가 아는 단어와 문장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는 단어와 문장들이 나오면 얼마나 반갑던지. 한국에서 라오스어를 공부했던 시간이 무용지물은 아니었나보다. 비록 어렵겠지만 하나씩 하나씩 집중해서 공부해 나가면 언젠가는 라오스어로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그 날이 오리라.  

테이블을 보러 갔다가 테이블 위에 펼쳐질 낙관적인 미래를 보고 왔던 시간. 그래 정작 중요란 것은 테이블이 아니라 테이블 위에서 무엇을 하는가. 또 누구랑 함께 테이블에 앉는가가 아닐까? 반년 뒤에는 나 역시 <삐끼암> 학생이 될 텐데 부디 이분들만큼만 하자는 다짐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p.s 일주일 후 쯤 주문했던 테이블이 도착했다. 심 원장님댁에서 본 것보다 더욱 멋져 보이는 것이 마음에 쏙 들었다. 이제 이 테이블 위에서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일만 남았다. 약간 설레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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