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laos.jpg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변화를 도모하는 작은 도서관 ‘My Library(마이라이브러리)20240211_12.jpg


루앙프라방에는 ‘My Library (마이라이브러리)’라는 이름의 지역 도서관이 있다. 루앙프라방을 근거지로 2003년에 시작한 이 작은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빌려주는 공간이 아니다. My Library는 지역의 청년들과 더불어 새로운 가치와 문화를 만들어가는 일종의 대안공간인데, 이곳을 통하여 루앙프라방의 젊은이들은 외국어 교육, 사진 촬영, 영화제작, 독서 토론, 책 읽기 캠페인, 보드게임대회, 사진 전시회, 영화제 등의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My Library라는 공간을 알게 된 것은 우리와 함께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는 ‘캄팟’님을 통해서였다. 캄팟님은 오랫동안 이곳에서 다양한 활동에 참여했는데 특별히 사진 촬영을 전문적으로 배웠으며, 영화제작을 경험하기도 하였다. 루앙프라방에 있는 교육대학교에 재학 중이었던 시절부터 이곳에서 활동했던 캄팟님은 졸업 후에 ‘사진촬영 교실’의 강사 역할까지 했을 만큼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라오스에서 향후 어떤 활동을 이어갈지 고민하고 있는 우리에게 캄팟님이 전해준 My Library의 이야기는 사뭇 흥미로웠다. 이곳은 젊은이들에게 다양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교육·문화공간일 뿐만 아니라, 소수민족인 ‘몽족’의 인권에 대해 고민하고, 몽족의 문화를 보존하기 위한 운동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몽족인 캄팟님이 주요 스탭으로 일했던 것도, 또 캄팟님이 찍은 사진에 주로 몽족 마을의 모습이 담겨있었던 이유도 같은 맥락이었다. ‘평화의 가치’와 ‘삶의 변화’를 중심에 품고, 나아가 소수자와 함께하는 도서관이라니 정말 멋지지 않은가. 라오스에서 이런 역동적이고 멋진 활동이 벌어지고 있는 공간을 발견했는데, 어떻게 직접 와보지 않을 수 있을까. 

20240211_01.jpg  20240211_02.jpg
20240211_03.jpg 20240211_04.jpg
20240211_10.jpg

직접 찾아온 My Library는 큰길가에서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좁은 골목 사이를 한참 동안이나 헤치며 미로 찾기를 한끝에 우리는 라오스 전통방식으로 지어진 단아한 2층 건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뒤로는 아름다운 칸강이 흐르고, ‘유토피아’라는 유명한 카페가 있는 핫플레이스 옆에 소담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외국에서 온 손님들이 반가웠는지 도서관 직원인 리님은 친절하고 정성스러운 설명과 함께 1층과 2층 공간을 차례로 안내해주었다. 목조건물 특유의 나무향이 편안함을 선사했는데, 내부는 조금 어둡고 협소하게 느껴져서 도서관이라기보다는 흡사 오래된 박물관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공간의 구석구석을 찬찬히 살펴보니 여러 포스터와 사진, 그리고 전시물들이 그동안의 흔적을 잘 보여주었다. 비록 좁고, 낡은 공간이었지만, 정성스럽게 매만져진 책, 컴퓨터, 과학 교보재 등 다양한 물건들이 각자의 자리에 정돈되어있는 것을 보면서 문득 My Library의 홈페이지에 적혀있던 문구가 떠올랐다. 

“중요한 것은 구석구석을 채워가는 물건과 활동의 양이 아니라, 그 일을 이뤄낸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공간에 담겨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하라. 그리고 그들이 이루어낼 변화를 기대하라.”

20240211_05.jpg 20240211_06.jpg 20240211_07.jpg

우리는 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소품들, 그리고 전시물 하나하나에 스며있는 사람들의 사연과 가치들을 상상하며 작은 것 하나도 소홀히 볼 수 없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Hmong(몽)’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사진집이었다. 이곳에서 사진을 배운 청년들이 수년간 직접 촬영한 몽족 마을의 모습을 담은 결과물이었는데, 사진에 담겨있는 몽족 사람의 얼굴 표정, 더구나 눈가에 깊게 패인 할머니의 주름은 나를 향해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어떤 정서를 전달하고 있었다. 사진을 찍은 사람과 사진에 찍힌 사람 모두가 서로 공명하며 무엇인가를 간절히 외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그 순간 우리가 라오스에 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결국 우리의 발걸음 가운데 누군가와 함께 진정으로 공명하며 무엇인가를 절실하게 나누고, 외칠 수 있는 활동을 하는 것이 궁극적인 바람이기 때문이다.
이후로 우리는 여러 번 My Library에 방문했다. 한 번은 루앙프라방에 잠시 방문한 캐롤씨를 만나기도 하였다. 미국인인 캐롤은 이 공간의 창립자이며, 현재는 태국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그녀를 통해 도서관을 만들게 된 이유와 초창기의 에피소드를 전해 들었는데, 사회주의 체제에서 이러한 공간을 꾸려간다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무래도 언론, 출판,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다 보니 지식과 생각의 보고인 도서관에 대해서 행정당국의 부정적인 눈초리가 있었고,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보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었다. 낯선 외국인이 만들어 놓은 낯선 공간은 생각보다 문턱이 높았던 것이다. 라오스 청년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왔다가도 선뜻 도서관의 문을 열고 들어오지 못했다. 혹 용기를 가지고 활동에 참여한 이들도 오래 머물지 못하고 금새 떠나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만큼 문화의 차이와 경험의 간격이 컸고, My Library가 추구하는 가치를 공유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청년들과의 만남을 통해 조금씩 변화를 이어온 시간이 벌써 20년이 되었다. 그동안 수많은 이들이 이곳을 거쳐 갔고, 각자의 삶 가운데서 또 다른 변화를 일구고 있다. 

20240211_08.jpg  20240211_09.jpg

마침 그날은 캐롤씨의 생일이었다. 우리가 함께 축하 케잌을 나누고 있는 동안 뒤늦게 한 청년이 캐롤씨에게로 달려왔다. 눈물을 흘리며 부둥켜안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어리둥절했는데, 청년은 수년 전 이곳에서 열심히 활동하다가 개인적인 이유로 떠나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루앙프라방에 방문한다는 캐롤씨의 소식을 듣고 찾아온 것이다. 캐롤씨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그동안 자신이 어떻게 지냈는지 등 해묵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애틋한 현장에 함께하면서 공간의 힘은 프로그램과 시설이 아니라, 만남을 이루며 쌓아온 시간 속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은 어엿한 학교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그 청년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캄팟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무엇보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 공간의 철학이 실제로 어느 정도의 깊이와 넓이를 가지고 있는 지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현재 머물고 있는 사완나켓에 My Library와 같은 공간을 만들고자 부푼 꿈을 꾸고 있다. 청년·학생들과 더불어 즐거움과 변화를 도모하는 작은 모임을 만들고,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불발탄 문제와 피해자들의 상황을 마주할 수 공간이 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진심을 가지고 함께 꾸준히 시간을 쌓아간다면, 분명히 서로가 바라는 애뜻한 변화를 이뤄 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변화를 도모하는 과정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변화니까.     

p.s 벌써 라오스에서 맞이하는 세번째 설입니다. 보통 '설을 쇠다'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데, 여기서 '쇠다'는 몸 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여 나쁜 기운을 쫓아낸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조신하게 자신을 살피고, 주어진 일년을 차근하게 생각해 보며, 정갈한 명절의 시간을 보낸다는 표현입니다. 
저희 또한 새로 정착한 사완나켓에서 설을 잘 쇠겠습니다. 한해 한해 연차가 쌓이다 보니 라오스의 생활에 점점 익숙해져 갑니다. 하지만 이럴 때 일수록 몸 가짐과 언행을 더욱 조심하고, 조신하게 하여 이곳에서 만나는 주민, 학생들과 더불어 평화로운 시간을 만들어가겠습니다. 좋은만남의 존귀한 교우님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한 설을 쇠시고, 기쁨과 평화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20240211_11.jpg

이곳 라오스의 설날은 4월입니다.(삐마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베트남과 중국인들 역시 우리와 같은 기간에 설 명절을 쇠기 때문에 동네가 시끌시끌합니다. 창밖으로 들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니 어느 덧 한국에 계신 소중한 분들의 얼굴이 하나둘 떠오르네요. 모두들 보고 싶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관택, 정유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