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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시간, 소통의 시간 


‘반캄짬빠 인쇄공장’에서 일한지도 벌써 한달이 되었다. 우연하게 만난 마나 사장님(반캄짬빠의 사장)에게 라오스 언어가 늘지 않는다는 고민을 털어 놓았는데, 의외로 쉬운 해답을 던져 주셨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관택! 언어는 그 나라 사람들과 일상 속에서 계속 만나면서 부딪쳐야해. 우리 공장에 와서 일해보는 건 어때? 직원들과 같이 계속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 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라오어가 늘어 있을껄?” 
마나 사장님이 지나가면서 했던 그 한 마디가 머릿 속을 맴돌았고 바로 그 다음 주부터 우리는 출근하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3일, 아침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일 할 수 있는 시간을 정했고, 오랜만에 하는 노동인지라 마음도 단단히 먹었다. 공장에는 15살부터 50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노동자 100여명이 일하고 있었다. 첫 출근 날, 마나 사장님이 공장의 이 곳 저 곳을 소개해 주셨는데 생각보다 큰 규모라서 놀랐고,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는 점에 한 번 더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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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캄짬빠>는 1997년에 세워진 출판사이자 라오스 최대의 인쇄소이다. 이 곳에서는 다양한 책을 출판, 제작할 뿐만 아니라, 라오스에서 유통되는 온갖 인쇄물과 종이로 만들 수 있는 모든 물건을 생산한다. 또한 큰 서점을 운영하고 있고, 라오스의 크고 작은 ‘북페스티발’을 주최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책과 인쇄에 관한 전반적인 작업이 ‘반캄짬빠’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설명을 들으면서 내년에 사완나켓이라는 지역으로 이주하여 <마을 도서관>을 계획하고 있는 우리에게 정말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디자인 분과’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영상제작 수업>의 지도교사 역할까지 부탁을 받아서 마음이 설레였다. 

그리고 한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과연 지난 한달 간의 생활은 어떠 했을까.  
여전히 좋은 목적과 계획을 향해 한 걸음씩 걷고 있는 것은 분명이지만, 일상은 만만치 않았다. 좁고 열악한 공간 속에서 정해진 시간 동안 반복적으로 몸을 움직여서 하는 노동은 결코 쉽지 않았다. 산처럼 쌓여 있는 인쇄물을 손으로 뜯어내고, 정리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끝이 없었고, 손톱과 손가락의 통증 또한 멈추지 않았다. 쉼 없이 쩌렁거리는 기계소음과 공간을 가득 메운 플라스틱 먼지는 매일같이 두통을 불러왔다. '내가 나이 들어서 그런가. 한국인이어서 그런가',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는 질문이 계속해서 소환되었다. 
그나마 열악하고 지난한 시간을 버틸 수 있는 것은 함께 일하는 동료들 덕분에 가능했다. 우리가 맡은 일은 초보자가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작업이었기에 주위에 나이 어린 여성 노동자들이 많았다. 대부분 15살부터 21살까지로 지방에서 올라와 이 곳 공장 기숙사에서 숙식을 하며 일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자연스레 ‘1970년대 여공’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하루 이틀 시간이 갈수록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은 오히려 우리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손도 느리고, 말도 느리고, 여러가지로 민폐일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어린 노동자들은 최선을 다해 작업에 관해 설명해주고, 말 걸어주고, 관심을 보여주었다. 이들과 나누었던 짧은 한 마디, 함께 주고 받았던 미소와 눈빛은 우리가 왜 라오스 땅에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응답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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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노동의 시간보다 더욱 어려운 것은 소통의 시간이었다. 서로에게 호의를 갖고 최선을 다했지만 언어의 한계는 소통의 한계로 다가왔다. 물론 막대한 작업량 때문에 각자의 일에 집중하느라 말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그 작은 기회조차도 소통 부재의 상황에 직면할 때가 많았다. 더욱이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영상제작 교실에서 라오스어로 강의를 해야 했기에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못하는 언어로 강의하는 나 만큼이나, 못하는 강의를 듣고 있어야 하는 직원들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지난 한달을 돌아보면 동료들과의 소통은 쉽지 않았고, 언어는 더욱 높은 벽처럼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그 동안 라오스 사람을 이렇게 일상적으로 자주 만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일 할 때보다 더욱 직접적으로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 상황은 주로 식탁에서 벌어진다. 사람은 밥을 먹어야 서로 친해진다고 하는데, 언어가 안되는 나로서는 밥을 함께 먹을 때마다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마나 사장님은 종종 우리를 식사자리에 초대해 주신다. 그 때마다 항상 또 다른 외국인 친구들이 함께 하기 때문에 보통 대화는 영어와 라오어로 진행된다. 처음 10-20분은 자기소개와 근황에 대한 인사가 오고 가기 때문에 괜찮지만 시간이 갈수록 대화의 내용은 깊어지고 그에 따라 내 귀와 뇌는 점점 오작동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점점 들리지 않고, 식탁의 대화를 따라가지 못하다가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 내가 하는 일은 주방으로 가서 설거지를 하는 것이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설거지가 그렇게 편할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이 차를 마시며 대화를 할 때 수세미로 접시를 닦으며 식탁 쪽으로 귀를 쫑긋거려 보지만, 몇 개의 단어를 제외하면 잘 들리지 않는다. 이내 다시 포기하고 수돗물을 틀어 그릇에 뭍은 세제를 닦아낼 때면 식사 시간 내내 답답해진 마음도 조금 편해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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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거지를 하다가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종종 성서에 등장하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에서 예수께서는 왜 마르다를 책망하셨을까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마르다는 예수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답답한 나머지 예수님과의 소통을 포기했던 것이 아닐까. 차라리 저 알 수 없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자괴감을 느낄 바에는 설거지를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마리아라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이해했을까 싶다. 그저 예수님과의 소통을 위해 묵묵히 식탁을 지켰던 마리아는 그 노력만으로도 더 좋은 자리에 앉아있다고 칭찬을 받았던 것이 아닐까. 

 지난 한 달 반캄짬빠는 내게 있어서 어쩌면 예수와 함께 했던 마르다의 식탁 같은 곳이었다. 아주 중요하고 의미있는 자리이지만, 노동이 너무나 힘들고, 동료들과의 소통은 더욱 어려워서 그저 피하고 싶은 상황말이다.(물론 좋았던 순간들도 아주 많다) 하지만 곁에 머물러 함께 뜻을 나누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결론은 성서 속이나, 성서 밖이나 매한가지 일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과 함께하는 식탁의 자리이든,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현장이든, 주일 예배의 자리이든, 반캄짬빠 인쇄공장이든 말이다. 
 그저 머물러 소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이들에게 복이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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