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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아, 라오스의 또 다른 이름



얼마 전, 한국에서 손님이 오셨고, 함께 라오스 북부지역을 탐방했다. 그 동안 가야지, 가야지 말만 하고 선뜻 가보지 못했던 라오스 서북부의 루앙남타와 우돔싸이는 그야말로 초록으로 가득한 세상이다. 프로펠라 비행기, 기차, 봉고차, 배, 택시와 자전거까지 다양한 교통수단이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해주었는데, 산 넘고, 물을 건널 때마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정말 듣던 대로 발 닿는 곳마다 높다란 산과 그 사이사이의 아득한 공간들이 눈앞을 압도했다. 그러면서 작년에 만났던 책 <조미아, 지배받지 않는 사람들>의 여러 구절들이 생각났다.   


“야만은 그들의 특징과 속성이 되어버렸다. 그들은 야만을 마음껏 누렸다. 야만은 곧 권력으로부터의 자유, 통치자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자연스러운 성향은 곧 문명에 대한 안티테제이자 거부였다. - 이븐 할둔”(54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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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에서 살면서 특별한 점을 꼽으라면 전 국토 중 고산지대의 비율이 80%이상을 차지한다는 점, 그리고 그 산지를 근거지로 하는 100여개의 소수민족이 라오스 전체 사회 속에서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는 점이다. 아마도 단일민족이라는 구호아래 수천 년간 공동의 정체성으로 살아왔던 한국인들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지점이다.   

수많은 민족이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는 건 어떤 것일까. 그 일례로 우리 집에 한국어를 배우러 왔던 라오스인 청년들을 살펴보자. 불과 십수명이지만 라오족, 몽족, 크무족, 루족, 푸타이족 등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외국인인 나의 눈으로는 좀처럼 구분되지 않지만, 이들은 저마다 고유한 문화와 언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 심지어 신분증에도 ‘어떤 민족’인지가 표시되어 있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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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과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라오스의 소수민족에 대해 더욱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깊은 산 속에 거주한다고 하여 ‘산족’이라 불렸던 수많은 소수민족들은 ‘문명화’와 ‘국가통합’을 이데올로기로 내세웠던 당대의 지배세력으로부터 항시 ‘야만족’ 취급을 당해왔다. 어쩌면 지금에 이르러 우리 집 거실에서 다양한 민족의 라오스 청년들이 위화감 없이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그토록 ‘문명화’와 ‘국가통합’을 추구했던 세력들의 집요함이 어느 정도 성공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가 오랫동안 영유해왔던 시간과 공간이 ‘야만’이라 손가락질 받으며 점점 사라져가는 현상을 마냥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볼 수는 없었다. 그것은 내가 만난 청년들의 가족과 고향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라오스에 온 이유와도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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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조미아, 지배받지 않는 사람들>의 저자인 스콧은 작금의 문명과 사회구조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인류학자이다. 특히 기존의 큰 강과 넓은 평지를 중심으로 세워진 고대국가들에게 초점을 맞춰 풀어가는 ‘역사’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독자들로 하여금 기존의 시각을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스콧에게는 도시와 문명을 세우고, 국가 체계를 만들며, 발전과 개발을 이어왔던 체제보다는 이 기존의 체제로부터 버려진 사람들, 배제당한 사람들, 탈주하여 새로운 삶을 개척한 사람들이 더욱 큰 관심의 대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국의 손이 닿지 않는 깊은 산 속에 근거지를 삼고 있는 사람들, 아무도 가지 않는 습지나, 사막에서 살아가는 민족들을 자세하게 연구한다. 또한 ‘야만’이란 단어를 힘없는 소수에게로만 향하게 하는 진짜 ‘야만적인 체제’의 실체를 폭로하는 것이 그의 연구 목적이기도 하다. 감사하게도 스콧의 책을 읽으며 나는 라오스의 소수민족을 향한 그 동안의 시각을 전면적으로 수정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책의 제목에서 언급된 ‘조미아’(Zomia)는 베트남의 중부 고원에서 시작하여 대륙 동남아시아 5개국(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미얀마)과 중국의 네 지방(윈난, 구이저우, 광시, 쓰촨 성 일부)을 가로지르며 인도 동북부까지 뻗어있는 해발 300미터 이상의 고지대를 일컫는 새로운 용어이다. 넓이가 250만 제곱킬로미터에 이르고 종족과 언어의 배경이 참으로 다양한 1억 명 가량의 소수종족들이 이 곳 조미아에서 살아가고 있다. 


책에서는 국가의 시스템을 피해 험난한 산속으로 탈주한 소수민족들을 주체적인 존재로 의미부여 한다. 산은 비록 험난하지만 자유의 공간이며,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는 주체적인 공간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평지의 국가체제는 사람들을 노동력과 착취를 위한 도구로 삼을 뿐이다. 논농사 위주로 평야가 발달하고, 그 중심에 도시가 세워지는 것은 ‘논농사의 특징’ 때문인데, 일단 대규모의 수로 공사가 필요한 논농사의 농지는 한번 형성되면 버리고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농노)을 한 곳에 정주하게 만든다. 또한 추수 때가 되면 전체 농지가 동시다발적으로 시각적인 결과를 드러내기 때문에 국가에서 세금 걷기가 매우 편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쌀은 무게와 크기가 일정하여 곡물화폐로써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국가경제에 유용하다. 결국 도시와 문명은 사람들을 착취하고 억압하기 위해 그 수많은 역사의 시간동안 ‘발전’이라는 이름 뒤에서 도사리고 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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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가 자본과 인터넷망으로 완벽하게 연결된 오늘 날의 상황 속에서 스콧의 시각이 얼마나 유용한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최소한 세파의 거대한 물줄기에 휩쓸리지 않고, 진정으로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람들, 공간들, 시간들을 발견하고, 공감해보는 일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어를 배우러 우리 집에 오는 소수민족 청년들의 꿈과 미래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뿌리와 어떤 유행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유로운 존재의 의지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외국인으로써 라오스 청년들, 특히 소수민족 청년들을 만나면서 그들에게 더 큰 세상에 대한 ‘DREAM’을 선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깊이 있게 돌아보며 자신을 한 없이 긍정할 수 있는 ‘자긍심’을 선물하고 싶다. 우린 그 누구에게도 지배받는 존재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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