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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국가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것



‘평화’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라오스로 떠나오기 전, 우리에게는 1년이란 시간이 강제로 주어졌다. 코로나 19로 인해 하늘길이 막혀서 준비했던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사실 우리의 시간만 멈춘 것은 아니고, 세상 모든 사람의 계획이 부질없어졌던 그 때의 심경을 돌아보면 참 막막했던 것 같다. 도대체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언제쯤 우리는 라오스로 떠날 수 있을까. 그나마 이 낯선 상황을 모두가 함께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위안 아닌 위안이 되었다. 

주어진 1년 동안 초기 선교사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다. 그러면서 발견했던 한 가지 사실은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기록’에 진심이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잘 아는 아펜젤러, 언더우드 선교사의 하루 일과 중 가장 많은 시간은 일기와 편지를 쓰는 일에 할애되었다고 할 정도이다. 아마도 선교사들에게 있어서 발 딛고 있는 땅의 상황과 문화를 기록하는 일은 매우 중대했으리라. 하지만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이렇게 기록된 수많은 정보 중 많은 부분이 제국주의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는데 일조하거나, 현지 문화를 대상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물론 진심을 가지고 현지인들의 삶과 문화를 녹진하게 남겨놓은 기록들도 있지만, 그 예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희박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 역시 같은 입장을 지닌 사람들로써 기록의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231008-1.jpg

 ‘발견하기 · 기록하기 · 동행하기’는 그 고민의 끝에서 다짐하게 된 우리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라오스 사람들의 삶 가운데 존재하는 평화의 순간을 꾸준히 발견하는 일, 그리고 그 순간들을 기록하며, 결국 삶의 여정 가운데 친구로서 동행하는 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평화’의 구체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일은 ‘발견하고, 기록하고 동행하겠다’는 우리의 과제를 풀어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라오스 정착 초기에 만난 캄팟님과 머리를 맞대며 함께 고민하고 있다.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 어떤 태도와 마음으로 카메라를 켜고, 상대방의 표정을 마주할 것인가? 과연 어떤 라오스를 프레임 안에 담을 것인가? 오늘도 좋은 기록을 향한 우리의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20231008-001.jpg 우리는 작년 말 팻아주머니가 운영하는 <쌈싸나무 국수집>을 카메라에 담고 편집하여 짧은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 그리고 올해 봄에는 [루앙프라방 국제영화제(Blue Chair) 제작지원 프로젝트]에 신청서를 냈다. 라오스 유일의 국제영화제이고, 영화를 사랑하는 라오인들에게는 꿈같은 무대이기에 참 떨리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프로젝트에 선정되면 적지 않은 영화제작지원금과 함께 국제 영화제에서 우리 작품을 상영할 수 있게 된다니 매우 중요한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또한 그 즈음에 감독인 캄팟님이 영상 만드는 일에 자신감이 떨어져 있어서 새로운 동기부여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했다. 여러모로 우리 모두에게는 절실한 프로젝트였다. 

 두어 달이 지나고 드디어 6월 마지막 주에 결과가 발표되었다. 감사하게도 우리 프로젝트가 선정되었다는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선정된 18팀 중 하나로 이제 당당히 영화제작에 돌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감독은 캄팟님이, 제작과 프로듀서를 나와 유은이 담당하기로 했고, 주인공은 이전과 같이 팻아주머니께서 출연해주시기로 마음을 모았다. 이제 진짜 다큐멘터리를 잘 만드는 일만 남았다고 외치며 서로의 손을 마주 잡으며 기념사진을 남겼다.  


그런데 첫 시작부터 상황이 녹녹치 않았다. 라오스가 사회주의국가이다 보니, 영상과 방송, 출판 분야는 철저한 검열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데, 영화를 만들기 위해 우선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문제는 그 과정이 상당히 까다롭다는 것이다. 우선 캄팟님은 소수민족인 몽족이기 때문에 관청의 공무원들을 상대하는 일을 매우 어려워했다.(아직도 소수민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시선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팻아주머니의 남편이 라오스 국립대학교에서 일하는 공무원이었는데, 다큐를 찍고 싶으면 먼저 촬영허가서부터 받아오라고 강력하게 요구하셔서, 영화를 찍기도 전에 허가받는 일이 우리의 가장 중대한 미션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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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함께 <라오스 영화진흥위원회>에 찾아갔다. 허름해 보이는 건물에는 나름의 작은 극장과 사무실 그리고 텔레비전 제작 스튜디오가 갖춰져 있었다. 하지만 미리 약속까지 하고 나선 발걸음은 수포로 돌아갔다. 담당자가 외근을 나갔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특유의 관료적이고 딱딱한 안내 멘트에 따라 우리는 발걸음을 뒤로 했다. 

이후 두 번째 시도는 캄팟님이 혼자 방문했는데, 촬영 허가를 위한 영화제작 계획서가 부실하다는 이유로 불허 통보를 받았다. 검열은 상당히 디테일했다. 우리가 제작하는 영화의 형식이 다큐멘터리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설정과 상황은 물론이고 대사 한 줄 한 줄까지 모두 기록되어 있는 대본을 요구했다. ‘극영화가 아닌데, 대사를 끝까지 다 상상으로 써야 하나?’ 고민이 깊어졌지만, 손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우리는 몇 날 몇 일 머리를 맞대었다. 물론 감독인 캄팟님이 가장 고생을 많이 했다. 몇 일이 흐른 뒤에 약 A4 30장 가까운 제작 계획서를 준비하여 또 다시 영화진흥위원회로 향했다. 하지만 또 다시 반려. 이번에는 이유조차 명확하지 않았다. 강력한 통제사회 속에서 문화 콘텐츠를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절감하는 시간이었다. 

 이후 몇 번의 시도 끝에 영화진흥위원회에서는 우리의 서류가 통과했지만 팻 아주머니가 사시는 동네 동사무소와 근처 대학교의 허가를 추가로 맡아야 했다. 그렇게 영화촬영의 허가를 맡는데만 꼭 두 달이 걸렸다.(결국 드론 촬영은 허가를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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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우리는 드디어 첫 촬영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촬영 또한 계획대로,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팻아주머니의 일정이 바뀌고, 대학교의 개강 일정이 바뀌어 국수집의 계획도 변경되었다. 감독인 캄팟님에게도 개인 사정이 생기면서 자꾸만 차질이 빚어졌다. 그렇지만 비록 순탄하지 않은 시간을 보낼지라도, 이렇게나마 당국의 허가를 받고 팻아주머니를 촬영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결국 지난한 시간 속에서도 우리 모두가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지 않는가.  

한국의 추석날은 라오스에서도 종교적으로 의미 있는 날이어서 사람들은 아침 일찍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간다. 우리는 이날 새벽 6시부터 준비하여 팻아주머니와 함께 근처에 있는 절로 향했다. 정성스레 기도를 드리는 팻아주머니를 카메라에 담으며, 지금 팻아주머니는 과연 무엇을 위하여 간절히 두 손을 모으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이들의 일상을 기록하는 나는 무엇을 위하여 이 곳에 와 있을까 곰곰히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습하고 후덥지근한 날씨에 땀이 비오듯 흘렀지만 누군가를 진심으로 관찰하고, 기록하고자 하는 시간 속에서 우리를 향하고 계신 하나님의 시선이 함께 느껴지는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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