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어와 함께하기
지난 8월 말, 드디어 라오스국립대학교 어학과정을 수료했다. 어학과정은 <ປີກຽມ 삐끼암>이라고 부르는데, "준비하는 해"라는 뜻으로 학부 1학년 진학을 준비하거나, 라오스어 공인 성적이 필요한 외국인(유학생)을 위한 과정이다. 어학과정을 수료함으로써 우리의 라오스어 능력이 일취월장했다고 고백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라오스어라는 벽은 높기만 하다. 그래도 이 과정을 지나며 낯설었던 라오스어와 친밀해진 것만은 분명하다. 처음에는 이 언어를 빨리 마스터하기만을 바랬는데, 지금은 그 생각이 바뀌었다. 오래도록 이 언어와 정을 나누며 꾸준히 공부하는 것, 그리고 이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문화의 아름다움을 발견해나가는 것이 우리의 소소한 목표다. 이런 목표를 세우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가 지금 살고있는 집에는 티비가 설치되어 있어서 무료로 지원되는 여러 채널을 볼 수가 있다. 한국과는 달리 다양한 언어의 채널을 있는데, 라오스어는 물론이고, 태국어,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심지어 한국어 채널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채널보다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단연 태국 방송이다. 스포츠, 영화, 뉴스, 연예 등 다양한 종류의 태국 방송이 송출되고 있었다. 라오스 사람들은 워낙 태국 방송을 많이 보기 때문에 왠만한 사람들은 태국어를 이해할 수 있고, 말할 수도 있다고 한다. 태국 방송을 많이 보는 이유는, 자국의 TV 컨텐츠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태국 방송으로는 드라마, 영화, 예능, 스포츠 등 다양한 컨텐츠를 접할 수 있었는데 라오스 채널로 송출되는 것은 ‘지역 뉴스’ 정도였다. 그마저도 화질 차이가 많이 났다. 게다가 라오스어와 태국어가 워낙 말소리도 비슷하고 문자도 유사해서 라오스인들이 태국 방송을 보고 듣는 것은 ‘외국어’를 접한다기 보다는 ‘사투리’를 접하는 것에 가깝다. 이해하기에 큰 문제 없고, 화질도 좋고, 컨텐츠도 많으니 태국 방송을 접하는 것이 익숙할 수밖에.
그렇지만 언어에도 권력 구조가 있어서, 라오스인들은 태국어를 쉽게 이해하고 말하지만, 태국인들은 라오스어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말소리가 비슷하고 문자가 비슷하다고 해서 양국의 사람들이 동일하게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라오스인들이 태국어와 태국문화에 노출되는 환경이 그만큼 많았던 것이다. TV 채널뿐 아니라 책, 음악 등 대부분의 문화에서 태국어로 된 컨텐츠가 압도적으로 많다.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라오스어를 배우는 것보다 태국어를 배우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라오스에서 태국어를 구사하면 대부분 다 알아듣고, 오히려 더 대접받으니까 말이다. 인구 차이도 10배 가까이 나니, 경제성을 따지자면 태국어와 라오스어를 비교하는 것이 의미없게 느껴질 정도다.
그런면에서 라오스어는 정말이지 소수언어다. 그러나 당연한 말이지만 언어라는 건 경제성만으로 그 가치를 매길 수 있는 건 결코 아니다. 우리는 지난학기 라오스국립대학교에서 '라오어학과' 교수님들과 공부하면서, 그들이 라오스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자긍심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수요도 적고 권력도 작은 언어이지만, 가치없는 언어인 것은 아니다. 과거 가치없다고 여겨지며 말살 시도까지 있었던 '작은' 언어,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나로써는 자국의 언어를 아끼는 라오스 사람들의 마음이 더욱 귀하게 느껴졌다. 그러한 라오스어를 우리가 공부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과 책임감이 생긴다. 이 언어로 된 이야기가 많아지고, 라오스어의 아름다움이 더 많이 발견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