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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이 가득한 땅 위에서 (1)
- 후아판 UXO 피해자와의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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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혁명의 성지, 후아판 주

 후아판 주는 라오스 동북부의 산간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지도상으로 볼 때, 베트남의 고산지대에 폭 안겨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높은 산지에 자리하고 있고, 수도로부터 멀리 떨어진 국경지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교통과 통신이 불편한 격오지로 여겨지는 곳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 라오스의 현대사에서 있어서 가장 상징적인 지역 가운데 하나가 바로 후아판이다.

 현재 라오스(라오인민민주주의공화국)는 전 세계에 존재하는 몇 안 되는 사회주의국가이며 라오인민혁명당(라오스 공산당)에 의한 일당독재로 국가가 운영되는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다. 이 같은 사회주의 체제는 1975년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해는 라오스가 위치하고 있는 인도차이나반도에게 아주 중요한 시기였다. 바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시작된 30년간의 인도차이나 전쟁이 종식된 해이기 때문이다. 인도차이나반도의 두 나라 베트남, 20221009_02.jpg 라오스는 오랫동안 식민 지배를 자행했던 프랑스와의 독립전쟁(1차 인도차이나 전쟁) 그리고 그 이후 침략을 감행한 미국과의 전쟁(2차 인도차이나 전쟁, 흔히 베트남 전쟁이라고 부른다.)에서 승리를 거뒀으며 각자의 새로운 자주 국가를 건설하였다. 라오스의 해방과 혁명이 완수되었던 바로 그 해 1975년 12월 2일, 드디어 <라오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 선포되었던 것이다.
 이는 라오스가 오랜 아픔을 딛고 해방과 혁명을 맞이한 감격스러운 스토리이지만 그 과정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식민지의 아픔과 전쟁의 참상, 그리고 동족상잔의 비극이 자리하고 있다. 마치 지난 100년 동안 한반도 땅에서 일어났던 역사의 비극을 재현이라도 한 듯 라오스 역시 해방을 위한 독립운동과 동시에 동족간의 갈등과 내전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이 과정을 ‘30년 내전’이라고 부르는데 냉전시대의 전성기답게 우파의 뒤에는 프랑스, 미국 등 서구세력이, 좌파의 뒤에는 소련, 베트남 등 공산세력이, 중도파의 뒤에는 라오스의 봉건왕족이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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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곳 후아판은 라오스의 좌파세력인 <빠텟라오>의 근거지가 되는 곳이다. (참고로 빠텟라오는 ‘라오스 국가’라는 뜻이다) <빠텟라오>는 1950년 왕족인 수파누웡 왕자를 중심으로 민족해방과 사회주의혁명을 위해 만들어진 정치조직으로 당시에는 세력이 매우 빈약하였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우파세력에게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기 때문에 결국 베트남과의 국경지대이자 고산지대인 후아판까지 밀려와서 산 속에 지하벙커를 구축하고 전세의 반전을 도모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마치 남베트남 혁명군인 베트콩의 지하전술을 연상케 하는데, 실제로 <빠텟라오>는 베트남의 <베트민>과 함께 오랫동안 게릴라 전술을 교류하며 연합작전을 진행하였다.
 후아판 주의 위앙싸이 시에는 당시의 빠텟라오 혁명세력들이 구축했던 지하벙커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깊은 산의 지하벙커에서 제국주의, 자본주의 세력에 맞서 민족을 해방시키고자 했던 라오스 혁명가들의 피와 정신이 깃들여 있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 누군가는 후아판을 그저 외딴지역의 산간오지라고 폄훼할지 모르지만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수십 년 동안을 이 곳 지하벙커를 지키며 민족의 해방과 독립, 그리고 모든 사람의 평등한 삶을 향한 열망을 간직하고 실천했던 사람들이 지금의 라오스를 일구어 왔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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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아판에서 만난 UXO 피해자의 얼굴 

 하지만 혁명의 성지라는 것은 영광의 기억인 동시에 고난의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세계 최대의 군사대국인 미국은 이 곳 후아판에 하루가 멀다하고 폭격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직접 지상군을 투입하여 산속 깊은 곳에 자리한 <빠텟라오>의 벙커를 공격하는 것이 쉽지 않자 가장 쉬운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문제는 폭격으로 인한 민간인의 피해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는 점이다. 폭탄은 ‘집속탄(Cluster Bomb)’의 형태로 하늘에서 뿌려졌는데, 한 개의 큰 폭탄 안에 수십, 수백 개의 작은 폭탄이 가득 채워져 있고, 그것이 공중에서 터지면서 안에 들어있던 작은 폭탄들이 흩어지며 넓은 범위를 폭격할 수 있었다. 무차별적인 폭격에 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되고 라오스의 국토가 황폐화되었다. 더 큰 문제는 그 작은 폭탄들이 바로 터지지 않고 그대로 땅에 묻혀 불발탄으로 남아, 지금까지도 라오스인의 일상을 공격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여름, 우리와 함께 일하는 캄팟이 불발탄(UXO) 피해자를 만나기 위해 후아판 주로 향했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동안 머물며 후아판에 거주하고 있는 불발탄 피해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고, 쌈느아, 위앙싸이 등의 아름다운 풍광도 카메라에 담아 올 수 있었다. 불발탄 피해자를 마주할 때, 우리는 고민하게 된다. ‘어떻게 이들의 (좋은) 이웃이 될 수 있을까?’ 고민은 계속 이어질 테지만, 그 시작점은 분명하다. 그들의 목소리로 전해지는 이야기를 듣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후아판에서 만난 불발탄 피해자 세 명과 나눈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겼다. 이들의 짧은 이야기를 함께 읽음으로써, 좋은 이웃이 되고자 하는 고민에 동참해주기를 청한다. 

20221009_11.jpg  20221009_12.jpg 20221009_13.jpg  20221009_14.jpg 20221009_15.jpg  20221009_16.jpg 20221009_17.jpg  20221009_18.jpg 20221009_19.jpg  20221009_2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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