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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이 가득한 땅 위에서 (2)
- 후아판 UXO 피해자와의 인터뷰 -


히암 시에 사는 ‘씨’ 할머니20221016-005.jpg

꼭끼앙 마을에 사는 ‘씨’(1955년생, 67세)는 젊었을 적 회계 공부를 하기 위해 후아판 주의 주도인 쌈느아 시로 유학을 갔다. 공부를 하면서도 생계를 위해 강가에 떨어져 있는 채소를 주워 하는 일을 하곤 했다. 홍수 때 상류에서부터 떠내려 온 채소가 강가 주변에 많이 있었던 것이다. 오래 전 일임에도 ‘씨’는 폭발 당시 상황을 생생히 설명했다. 

“사고 장소는 시내에서 6km 정도 떨어진 곳이었는데, 그 날도 친구들과 함께 열심히 채소를 주워서 바구니에 담고 있었어요. 그런데 순간 느낌이 이상한 거예요. 자세히 봤더니 제가 손으로 잡고 있는 채소 밑에 폭탄이 있었어요. 순간 저는 어찌할 바를 몰랐고, 폭탄은 터지고 말았죠. 저는 그 자리에서 기절을 했고, 결국 그 때 폭탄을 만졌던 손을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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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친구들이 함께 있었지만, ‘씨’가 가장 앞장서서 걷다가 폭탄을 만났기 때문에 뒤따라오던 친구들은 변을 피할 수 있었다. 그는 쌈느아 시에 있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그곳에서는 수술을 할 수 있는 기술이 없었기에 결국 베트남까지 가서 수술을 해야 했다. 열악한 의료 환경은 그 이후에도 ‘씨’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다.

“사고 당시에 저는 미혼이었어요. 결혼은 1980년에 했어요. 아이가 4명 있었어요. 첫째 아들의 이름은 숙이었고, 둘째는 여자 아이였어요. 그 다음도 여자 아이였는데... 아. 결국 모두 죽고 말았어요. 현대식 병원이 제대로 있지 않기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하고 앓기만 하다가 영원히 눈을 감고 말았죠. 그것도 4명 모두가...! 폭탄으로 인해 나에겐 한 손 뿐이었기에 아이들을 키울 때 참 힘들었습니다. 아이들은 항상 아픈데 한쪽 손이 없어서 제대로 돌보지 못해 자책감이 많이 들었어요. 또 농사일을 해야 먹고 사는데, 그 일을 하기가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20221016-008.jpg 탠힌마을에 사는 청소년 ‘캄’ 

‘캄’(탠힌마을, 12세)은 불과 6년 전에 사고를 당했다. 그의 나이 6살, 초등학교 1학년에 다니고 있을 때였다. 사고 당시 상황을 들려달라는 말에 ‘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잘 모르겠지만, 친구들 2명이 우리 집에 놀러 왔어요. 집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마당 끝 부분에서 폭발이 일어난 거예요. 저는 그 때 크게 다쳤는데, 다행히 두 친구는 괜찮았어요. 사고를 당하고 쌈느아 병원으로 갔다고 하는데, 저는 하나도 기억이 안나요.” 

시간이 흘러 그는 현재 팍켄 중학교 1학년에 다니고 있다. ‘캄’은 인터뷰 내내 ‘잘 모르겠다’는 말을 반복했고, 다소 지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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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 시에 사는 ‘펑’씨 20221016-007.jpg

‘펑’은 45세의 남성으로, 3명의 자녀를 포함해 6명의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그는 사고가 난 날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1995년 1월 14일, 아버지를 돕기 위해 밭을 매러 나갔는데 밭 가장자리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당시 그의 나이 15세였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까지 마치고, 졸업 후에는 학교에 가지 않았어요. 아버지를 도와 농부로 일해야했기 때문이죠. 그날도 아버지를 도와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사고 후 ‘펑’은 히암 시에 있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사고 직후 사람들이 달려왔지만 그를 옮길 자동차가 없었던 것이다. 사방팔방 수소문한 끝에 자동차를 구했을 때에는, 마을에 자동차가 다닐만한 길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펑’은 치료시기를 놓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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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은 불발탄 폭발 사고를 당한 후 누군가의 후원이나 도움을 받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사고 후 30년의 세월, 어느 누구도 돌보지 않아 깊어진 몸과 마음의 상처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이야기를 마치고 사람들을 보며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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