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laos.jpg
조회 수 3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캄팟의 고향, 사이냐부리 방문기


20220220_01.jpg

 라오스에 와서 우리와 처음으로 친구가 된 라오스인의 이름은 캄팟이다. 24세의 캄팟은 우리가 전에 살던 LK아파트의 직원이었다. 비록 아주 잘하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었던 캄팟의 한 마디를 시작으로 우리는 서로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이름이... 뭐예요?...’ 라오스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라 모든 것이 어리버리한 우리에게 캄팟의 한국어는 아주 반가웠다. “커이쓰 관택. 짜오데?(저의 이름은 관택입니다. 당신은요?)” 순간 한국어 질문에 라오스어로 대답해버렸지만, 언어와 언어가 섞이고, 문화와 문화가 혼용되는 상황이 외국에서는 흔한 일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렇게 만난 캄팟과 우리는 국적도, 나이도 달랐지만 금새 친구(?)가 되었다. 20220220_02.jpg

 캄팟은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경력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대학에서 수학교육과를 나왔지만, 수학교육보다는 다른 일에 관심이 많았는데 특히 사진을 아주 잘 찍는 사람이었다. 또한 본인이 연출한 영화가 여러 편 있었고, 심지어 본인이 작곡한 노래를 직접 부르는 뮤직비디오도 가지고 있었다. 우린 예술적 재능이 뛰어나고, 여러 가지 사안에 호기심이 많은 청년 캄팟과의 만남이 마냥 신기했다. 어쩌면 이 사람과 더욱 깊은 인연이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캄팟은 비엔티안에서 오래 일하지 못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코로나 시기인지라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도, 또 원하는 정도의 보수를 받는 것도 요원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라오스는 사회구조적으로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한데다가 방역 상황도 최악으로 치달았다. 결국 지난 10월 캄팟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고향인 사이냐부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지난 주 우리는 2박 3일의 일정으로 캄팟의 고향인 사이냐부리에 방문했다. 그 동안 캄팟으로 부터의 몇 차례에 걸친 초대가 있었고, 우리 또한 말로만 듣던 캄팟의 가족을 직접 만나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소수민족인 몽족의 생생한 삶을 직접 경험해 보고 싶었다.(아. 캄팟은 라오스의 가장 대표적인 소수민족인 몽족이기도 하다. 몽족은 라오스에서 가장 차별받고, 정치적으로 탄압받는 민족인데,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20220220_03.jpg

 캄팟이 살고 있는 <므앙 사이냐부리>는 비엔티안주 바로 옆에 있는 '사이냐부리주'의 주도이지만 커다란 산으로 가로 막혀 있고, 도로 사정조차 여의치 않아서 차로 7시간 정도 걸린다는 얘기를 들었다.(실제로 다녀와 보니 가는데 8시간 반, 오는데 9시간이 걸렸다) 또한 워낙 시골마을이라 비행기, 기차, 심지어 버스도 가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결국 봉고차를 타고 가야하는 상황이라 허리환자로써 나의 걱정은 가기 전부터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더구나 지방으로 향하는 봉고차는 악명이 높았는데, 앉는 자리 수보다 더 많은 사람을 태우기 때문에 자리도 매우 좁고 불편할 뿐 아니라, 때론 동물들과 함께 가야해서 냄새도 심하고, 덜컹거리는 도로 사정으로 사람들이 차안에서 토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고 한다. 또한 휴게소도 변변치 않으니 화장실 문제도 만만치 않다. 사전에 봉고차에 관한 여러 악담을 들은 고로, 우리는 걱정이 한 가득이었지만 봉고차 외에 사이냐부리에 갈 수 있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가는 길만 8시간 30분. 정말 덜컹덜컹 춤을 추듯 달리는 봉고차 여행은 예상했던 것보다 한수 위였다. 출발하자마자 내 옆에 앉은 아이가 내 바지에 토를 했고, 발밑에는 상자에 갇힌 수탉이 들썩들썩 고개를 내밀었으며, 뒤쪽에서는 시종일관 병아리들이 삐약삐약 울어댔다. 하지만 소음이 가득한 봉고차 안과 달리 창밖의 풍경은 너무나 평온해 보였는데, 정말 붉은 황톳길과 초록색 산으로 가득한 라오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어쩌면 사이냐부리에 가는 여정자체가 라오스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조용하고 한적하며 아름다운 이미지의 라오스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역동적이며, 수다스럽고, 북적거리는 모습을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비록 몸이 힘들긴 했지만 참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꼈던 시간이었다.


20220220_04.jpg  20220220_05.jpg 20220220_06.jpg  20220220_07.jpg 20220220_08.jpg

 

 20220220_09.jpg 다음 날, 우리는 캄팟과 함께 시장에 들러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마련했다. 이제 2살이 되는 캄팟의 아들 짠에게는 세발자전거, 아내에게는 원피스, 어머니와 아버지,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는 윗도리, 중학생인 늦둥이 여동생에게는 운동화를 주기로 했다. 비록 작은 것들이지만 가족들이 기뻐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며 나름 정성을 쏟아 선물을 준비했다. 20220220_10.jpg

 설레이는 마음으로 캄팟의 집에 가는데 의외로 집이 평지 마을에 위치해 있어서 놀랐다. 보통 몽족은 ‘산족’이라 불릴 만큼 산 속에 사는 민족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산 위쪽에도 집과 밭이 있는데, 10년 전쯤 이 곳 아랫마을로 가족들과 함께 이사를 왔다고 한다. 집은 평범한 시골집의 인상을 풍겼는데, 아-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마음이 조금 스산해졌다. 생각보다 너무나 열악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로서는 지난 십수년 동안 중국, 필리핀, 캄보디아의 오지와 빈민촌 여기저기를 다녀보았기 때문에 열악한 주거환경에 큰 이질감이 없을 줄 알았는데, 막상 그렇지 않았다. 우선 캄팟의 집이 객관적으로도 너무 열악하였을 뿐 아니라, 막상 친구의 집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그 동안 빈민촌에 방문했던 것과는 느낌 자체가 아예 달랐다. 나름 대학을 나오고, 예술을 사랑하는 평범한 친구의 집이 이 정도라면 라오스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활수준을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시선을 버리자고 했거만 여전히 나는 한국사회의 시선으로, 그리고 내가 경험했던 일천한 경험을 기준으로 이 곳을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하나씩 다시 시작해야겠구나.’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 갔다.


20220220_11.jpg  20220220_12.jpg 20220220_13.jpg  20220220_14.jpg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집에 점차 익숙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캄팟님의 아들 짠이 덕분에 어두컴컴한 집안이 더욱 밝아짐을 느꼈는데, 짠이는 우리가 선물로 준비한 자전거를 엄청 마음에 들어 했다. 가족들도 한참동안 자전거를 이리타고 저리 올라타는 짠이를 바라보며 흐믓해 했다. 역시 아이들은 보물이다. 이어서 캄팟이 전통악기인 ‘몽족 캔’(캔은 라오스 전역에 있는 전통악기인데 몽족의 캔은 조금 다르다고 한다)이라는 악기를 연주해주었는데, 그 때 ‘오호 이 사람 진짜 라오스 몽족이구나’ 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20220220_15.jpg  20220220_18.jpg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여러 감정과 생각이 교차했던 사이냐부리 방문을 뒤로하면서, 이 곳에 방문했던 기억을 ‘동정과 연민’이 아닌 ‘낯섬과 신비로움’의 감정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것이 라오스에서의 우리 활동 전체를 관통하는 감정이기를 바란다. 끝으로 소중한 여정을 우리에게 선물해준 친구 캄팟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다. 


20220220_17.jpg 20220220_19.jpg20220220_16.jpg

?

  1. 위기 속의 위기

    위기 속의 위기 지금 라오스는 위기에 봉착했다. 아니 실은 전세계가 위기에 봉착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올해 초에 시작된 끔찍한 전쟁의 소용돌이는 지구 공동체 모두를 공포와 적대적 분위기로 휘몰아가며, 세계경제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형국이다....
    Date2022.07.02 By좋은만남 Views31
    Read More
  2. 묵직한 걸음을 걷고 싶은 날

    묵직한 걸음을 걷고 싶은 날 함께 라오스 생활을 하다가 한국으로 귀환하시는 분의 환송회를 겸하여 1박2일의 짧은 일정으로 루앙프라방에 다녀왔다. 세계문화유산의 도시인 루앙파방(라오스식 발음)은 아직 코로나의 상처로부터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듯, 여...
    Date2022.06.11 By좋은만남 Views24
    Read More
  3. UXO(불발탄) 예방교육에 동행하다.

    UXO(불발탄) 예방교육에 동행하다. * 사진을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5월 13-14일, 나와 인디(정유은 활동가)는 버리캄사이주의 주도인 팍산시에 다녀왔다. 코이카(KOICA, 한국국제협력단)에서 현지 청년들과 함께 라오스의 UXO(불발탄)문제에...
    Date2022.05.21 By좋은만남 Views34
    Read More
  4. 마스크 나눔을 위해 초등학교에 가다

    마스크 나눔을 위해 초등학교에 가다. * 사진을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학교에 오는 길이었어요. 신호 대기중 옆에 서있는 픽업트럭 짐칸에 여성분 여러 명이 타고 있었어요. 아마도 일일노동을 하는 사람들인 것 같았어요. 그런데 하나 같이 마...
    Date2022.04.30 By좋은만남 Views37
    Read More
  5. 라오스 최초의 기차 ‘란쌍호’를 타다.

    라오스 최초의 기차 ‘란쌍호’를 타다. 라오스의 역사는 1353년, 루앙프라방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시 파응움왕은 북부의 루앙프라방을 중심으로 ‘란쌍왕국’이라는 라오스 최초의 통일왕국을 세웠다. 특히 메콩강줄기와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 루앙프라방...
    Date2022.04.02 By좋은만남 Views85
    Read More
  6. 교복을 입고 처음으로 등교하는 날

    교복을 입고 처음으로 등교하는 날 드디어 라오스국립대학교의 오프라인 등교가 시작되었다. 지난 해 9월 라오스국립대학교 삐끼암 과정에 입학원서를 접수한 이후 정확히 6개월 만이니, 참으로 오래 기다렸다. 코로나 위기로 멈추었던 사회가 지난 해 말부터 ...
    Date2022.03.12 By좋은만남 Views43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Next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