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영상설교]


   

[음성설교]

 

설교음성파일 듣기

 


골로새서 3장 10~12절

10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이 새 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져서, 참 지식에 이르게 됩니다.

11   거기에는 그리스인과 유대인도, 할례 받은 자와 할례받지 않은 자도, 야만인도 스구디아인도, 종도 자유인도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12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랑 받는 거룩한 사람답게, 동정심과 친절함과 겸손함과 온유함과 오래 참음을 옷 입듯이 입으십시오.

?
  • ?
    좋은만남 2022.09.02 09:59

    동정심의 새 옷을 입자, 파시즘의 대중 심리

    골로새서 3:10~12  / 박성중 목사

     

    1


     마이너 필링스한국계 미국 이민자 2세대 캐시 박 홍이 쓴 자서전적 에세이입니다.

    2016년 미국, ‘몸만 성인이고 정신은 어린애인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이를 경험한 캐시는 글을 통해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 일에 동참하기로 마음을 잡습니다. 캐시는 말합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뒤 아시아 혐오가 심해진 시기에 딸을 낳았습니다. 결국 에세이를 쓰기로 한 건 제 딸을 위한 일이기도 했어요.”

    마이너 필링스의 영문판 표지의 활자, MINOR FEELINGS는 불꽃처럼 타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캐시는 말합니다. “그러니까 나한테 은혜(아메리칸드림)를 논하지 말란 말이다.”

    유색인종들이 인종차별적 언어에 대한 감정을 말하면 백인들은 과잉반응이라 말합니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현실과 들어맞지 않기 때문에 도가 지나치다고 대응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유색인종들을 굴복하게 만듭니다.

    캐시는 자신의 책, 마이너 필링스을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책에서 말한 마이너 필링스는 억압받고 차별받는 모두의 이야기입니다.”1)

     

    제노포비아(Xenophobia)’는 외국인 또는 이민족 집단을 혐오, 배척이나 증오를 뜻합니다. ‘제노포비아는 이방인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ξένος(크노세스)’와 혐오를 의미하는 φβια(포비아)’가 합성된 단어입니다.

    외국인 혐오 주장의 핵심 논거입니다. 첫째, 안전론입니다. 낯선 이들에 대한 공포는 당연합니다. 알지 못하는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혐오 표현에 대한 합리적 접근 이전에, 외국인이 안전을 위협한다는 근거가 설득력을 가지는 것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안전론의 바탕이 불안을 조성하는 가짜 뉴스에 기반한다면 더욱 문제입니다,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민자에 의한 범죄를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아델만(Robert Adelman)의 연구 결과는 이민자가 오히려 지역 경제와 문화를 살리며, 범죄율을 줄이는 것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가 안전이라는 이유로 공포를 통치에 이용하는 것이란 비판이 있습니다. 공포는 기존 보수 세력을 결집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무임승차론입니다. 청년실업, 불안전고용, 저출산 노령화로 인한 사회적 비용 증가, 경제불황 등으로 경제 상황이 어려운데 외국인에게 과도한 예산이 낭비된다는 것입니다. 단편적으로 외국인 건강보험 먹튀 지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외국인 건강보험재정은 201820203년간 11931억 흑자가 사실입니다.2) 더욱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난민반대의 논리가 일본 한국인 혐오 단체 재일 코리안 특혜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모임(재특회)’의 주장과 거의 일치한다는 것입니다.3)

    셋째, 순혈주의입니다. 한국 고유의 순혈성, 민족적 동질성에 대항하는 다른 타자에 대한 불안입니다. 우리나라의 민족주의는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등의 외세에 의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서 역할하며 초역사적이고 보편적 실체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러시아계 한국인, 박노자, 철학자이자 작가,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 한국학과 교수입니다. 박노자는 고질적 인종주의에 상응하는 경제인종주의의 결과라고 주장합니다.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라는 사고방식이 보여 주는 것처럼 노동시장을 피부색에 다라 위계적인 계급구조로 관리한 인종주의와 유사하다고 합니다.4)

     

    제노포비아, 외국인 혐오에 대한 안전론, 무임승차론, 순혈주의에 대한 합리적 분석과 비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외국인 혐오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합리적 분석과 비판만으로 그 이유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2

     

    빌헬름 라이히(1897~1957) 오스트리아 출신의 심리학자입니다. 정신분석심리학자 프로이트의 제자로서 독일 나치 독재 시대를 망명으로 보낸 후 미국에서 활동하였습니다. 라이히는 성정치, 그리스도의 살해. 그리고 파시즘의 대중심리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특별히 파시즘의 대중심리는 왜 사람들이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를 합법적인 선거로 지지하는가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타자를 향해 작은 파시스트가 되고 있는가 라는 문제를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라이히의 질문입니다.

    설명되어야 할 것은 배고픈 사람들이 도둑질을 했다거나 착취당한 노동자가 파업을 일으켰다는 사실이 아니라 배고픈 사람들 중 대다수는 왜 도둑질을 하지 않는가. 또 착취당하고 있는 사람들 중 대다수는 왜 파업을 하지 않는가? 라는 사실이다.”5)

    라이히가 책을 쓰던 1930년대 당시 독일, 합리적 사고를 가진 대다수의 이해가 있습니다. 대중은 미친 듯이 히틀러와 나치 파시스트들을 열광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지는 합리적 대중이 나쁜 사람들의 속임수에 속아 넘어간 것뿐이라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히틀러와 나치의 속임수가 대중에게 폭로된다면, 진실이 드러난다면 대중은 파시스트를 물리치고 민주주의적 세계를 다시 건설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라이히는 이런 합리적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라이히에 따르면, 대중은 히틀러와 나치에 속은 것이 아닙니다. 대중은 타자를 향한 히틀러와 나치의 파시스트적 말하기와 행동을 욕망했습니다. 히틀러 총통과 같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다시 질문은 왜 이러한 비합리적 말하기와 행위를 자신을 위한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했을까?

    독일의 하이데거(M. Heidegger)와 같은 합리주의 철학자들은 속물적인 욕망을 추구하고 복종적인 태도를 보이는 대중을 ‘das man(世人)’이라 폄하했습니다. 그러나 라이히는 오히려 현실적인 대중의 욕망과 복종, 그리고 타자를 향한 폭력을 직시합니다. 라이히는 이 대중의 원인을 히틀러와 나치의 파시즘에 돌리지 않습니다. 욕망과 복종, 타자를 향한 폭력이 대중 스스로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힙니다. 그리고 대중에게 합리적 민주주의적 세계가 필요하다고 이해를 시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왜 대중이 히틀러, 나치와 같은 독재에 복종하며 타자를 향해 폭력적인지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라이히는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아끼는 제자였습니다. 라이히는 무의식에서 작동하는 욕망과 성격구조에 이해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이용합니다. 대중이 합리적이지 않으며 약한 자들에 대해 지배하려고 하지만 강한 자 앞에서 굴종하려는 권위주의적 성격 때문이라 합니다.

    욕망에 대한 물리적 억압은 오히려 반역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무의식의 수준에서 성적 억압은 다르게 작동합니다. 유아기, “네가 원하는 건 네 엄마지?”라는 다그침은 욕망을 수치심으로 만듭니다. 그에 대한 저항을 성기 거세라는 무의식적 위협으로 무력화시킵니다. 그리고 이러한 억압은 아버지가 독점하는 가부장제와 더불어 아버지에게 복종하는 형태로서 히틀러에 대한 선망, 히틀러에 대한 복종, 그리고 이와 같은 형태로 약한 타자를 향한 폭력으로 나타납니다. 바로 파시즘의 대중심리입니다.

     

    라이히의 파시즘의 대중심리3장은 히틀러와 나치의 인종이론에 대한 분석입니다. 히틀러와 나치는 독일 문화가 몰락하는 것을 인종혼합의 탓으로 돌립니다. 따라서 혈통과 인종을 순수하게 지키는 것은 국가의 가장 숭고한 과업이며, 이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누구든 희생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인종이론은 독일과 점령지 전역에서 유태인 박해라는 형태로 나타나,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실제로 거행되었습이다. 이러한 약자와 타자인 이방인에 대한 폭력을 라이히는 성적 억압을 통해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파시즘의 대중심리는 오늘 우리 사회에게 이루어지는 가부장적 성격구조에 바탕한, 독재에 대한 선망, 복종, 동일시 그리고 이방인에 대한 폭력을 설명하는데 적절한 도움이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나라 군사독재 시절 파시즘의 대중심리는 국가에 의해 통제된 금서였고 여전히 대중의 심리를 이용해 독재를 꿈꾸는 이들에게 위험한 책입니다.  

     

    3

     

    오늘 성서 골로새서를 집필한 사람은 바울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교 초기, 그리스인들, 로마인들과 같은 유대인들이 아닌 이들, 예수님을 모르던 이들에게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보이신 새로운 세계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한 선교사입니다. 바울은 철저한 유대교인으로서 예수님을 알기 전 그리스도교의 박해자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바울은 환시를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극적인 개종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활동을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의 골로새서는 그리스도교 선교 활동 중 감옥에 갇혀 있던 기간, 골로새 공동체의 바른 믿음의 생활을 위해 쓴 편지입니다.

     

    바울은 골로새 공동체에게 본몬 말씀을 통해 하나님 보기에 합당한 새 사람이 가져야 할 삶의 태도를 제안합니다.

    이 새 사람은 민족을 기준으로 하여, 그리스인과 유대인으로 나누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에게 하나님께 선택된 민족이라는 종교적 의례인 할례를 가지고 하나님의 선택과 배제로 나누지 않습니다. 또한 야만인이라 부르며 스스로의 문화적 우수성을 말하지 않으며, 자신과 삶의 모습과 다른 스키타이인이라 불리는 이방 유목민을 자신들과 나누지 않습니다. 그리고 봉건제 사회 계급을 기준으로 노예와 자유인으로도 나눌 수도 없다고 합니다.

    유대인, 헬라인, 이방인, 스키타이인, 자유인, 노예 모두 안에는 구원자 그리스도가 계시며, 따라서 구원자 중심으로 이들을 본다면 그들 사이에 어떠한 차별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그것이 종교든 문화든 민족이든 삶의 모습이든 그 어떤 것으로도 차별과 혐오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옛 사람에서 새 사람으로 변화의 비유는 인간중심주의에서 신중심주의로의 이동입니다. 이 이동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 회개이며 개종이며, 세례의 의미입니다.

    모든 것을 인간중심적으로 생각할 때 종교, 문화, 민족, 인종, 삶의 모습은 차별의 이유가 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이들을 사랑으로 창조하신 하나님 곧 신중심적으로 생각할 때 모든 차별은 불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에서 차별과 혐오는 죄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모두에게 구원자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차별과 혐오의 옛사람을 버리고 하나님의 창조 앞에 형제됨의 깨달음과 사랑의 실천으로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인간중심적 차이로 차별을 하던 옛 사람을 버리고 신중심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새 사람으로서 동정심과 친절함, 겸손함과 온유함 그리고 오래 참음이라는 윤리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4

     

     

    안전론, 무임승차론, 순혈주의와 같은 의견을 가지고 외국인,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차별하고 혐오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견은 합리를 포장한 거짓이고 정치적 수단이며 심리적 안정일 뿐입니다.

    라이히는 유아적 억압이 동조와 순응과 동일시로 나타난 것이 외국인 혐오, 다른 사람들을 향한 차별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선교사 바울은 우리 모두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깨닫는다면 우리 모두 안에 구원자 예수가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이때 우리는 모든 차별과 혐오의 옛 옷을 벗어버리고, 외국인 다른 사람들을 향해 동정심, 친절함, 겸손함, 온유함, 오래 참음의 새 옷을 입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말씀을 정리하며 골로새서 3:12, ‘동정심이라 번역한 단어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리스어 οκτιρμός(oiktirmos)’라는 형용사입니다. 이 그리스어를 바탕으로 영어 성경은 compassion을 우리말 성경은 동정심이라 번역했습니다.

    οκτιρμός(oiktirmos)’는 동정심에 앞서 보다 근본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함께 울어준다는 뜻입니다. ‘οκτιρμός(oiktirmos)’을 영어 compassion으로 번역한 것은 너무 훌륭합니다. 영어 compassion은 라틴어 compassio에서 오는데 함께 라는 의미의 com과 감정이라는 의미의 passio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그러니 함께 울어준다는 의미에 정말 가깝기 때문입니다.

    동정심 compassio는 그것을 가진 사람과 대상으로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을 가진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주는 형태가 아닙니다. 함께 울어주는 마음입니다.

     

    오늘 외국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의 시대입니다. 파시즘의 대중심리는 나와 대상을 나누고 내가 눌리는 경험을 하는 것처럼 누군가를 누르려는 성격 구조를 말합니다.

    다시 우리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며,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달으며, 나와 다른 이들을 향해 함께 울어주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함께 느끼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οκτιρμός(oiktirmos)’, compassion 동정심의 어원, 마음을 함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1) 김다은, “겸손하게, 그리고 압도적으로, ‘소수적 감성을 짚다”, 시사IN, 2022.7.13.,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911.

    2) 서한기, “[이슈 In] 외국인이 건보 무임승차?"낸 보험료보다 받은 혜택 적어"”, 연합뉴스, 2021.10.9., https://www.yna.co.kr/view/AKR20211005092300501.

    3) 야스다 고이치, 거리로 나온 넷우익, 김현욱 옮김, 후마니타스, 2013, 199.

    4) 박노자, 주식회사 대한민국, 한겨레출판, 2016, 35-40.

    5) 빌헬름 라이히, 파시즘의 대중심리,황선길 옮김 (그린비, 2017), 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