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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는 사람들


1

“노원역이나 가 볼까요?”
비니을 푹 눌러 쓰고, 목도리를 반 접어 감고, 장갑에 패딩 조끼까지 완전 무장으로 도착했습니다. 골목 여기저기로 흘러든 고기 굽는 냄새가 코끝을 사로잡은 식당 앞 사람들의 낯빛엔 이미 얼큰함이 붉습니다. 스마트폰 가게 앞 고딩 정도로 보이는 한 무리가 휘파람과 함성을 지르는 버스킹을 지나며 조심한 평질입니다. ‘시끄럽다.’ 4호선 고가 철길 밑 횡단보도를 지나니 이제 조금 한가한가 싶은데 노란빛이 한가득 환하게 비치는 두 평 남짓 통유리 안에 젊은 사람들이 가득입니다. 
‘뭐지?’

‘타로(tarot)’의 어원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몇몇의 가설입니다. 이집트어로 ‘왕의 길’을 뜻하는  ‘tarroh’에서 또는 히브리어 경전을 뜻하는 ‘torah’-구약성서에서는 창세기부터 다섯 책-에서 왔다고 합니다. 14세기부터 게임으로 시작한 카드는 18세기에 들어서 프랑스와 스위스에서 신비주의적(occult) 상징으로 점술로 사용된 것이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가장 단순한 형태는 78장의 카드를 섞어 떨어지는 한 장의 카드 그림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에서 더 많은 카드를 사용해 긴 스토리가 이뤄지기도 합니다. 이 해석의 설득력에 따라 영험함이 결정되는 듯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에 무당집 상 위에 뿌려진 쌀알의 모양에 대한 무당의 해석과 유사해 보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업계 공통점이 있습니다.
‘니가 모르는 뭔가가 있어.’
서너 테이블, 둘둘 씩 앉은 젊은이들의 기다림에는 속닥속닥 궁금한 게 많습니다.

2

루마니아 출신, 종교학자 미르체아 엘리아데(Mircea Eliade, 1907~1986)를 모셔야겠습니다. 그의 책 『성과 속: 종교의 본질』(이동하 옮김, 학민사, 1995)입니다.

순수한 상태로서의 비종교적 인간이란, 심지어 가장 탈신성화된 근대사회에서조차도 상대적으로 드문 현상이기 때문이다. '비종교적' 인간의 대다수는, 비록 그들이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조차도 여전히 종교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우리는 비단 구조상 마술적·종교적 성질을 가진 근대인들의 수많은 미신과 '금기'들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비종교적이라고 느끼며, 그렇게 주장하는 근대인들도 여전히 수많은 은폐된 신화와 변질된 제의를 유지시키고 있는 것이다.(182쪽)

우리가 자주 합리적 근대인을 말하며 그들을 비종교적 인간이라 말하지만 사실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비종교적 인간이라 말하는 이들 역시 수많은 종교적 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축제나 의식들이 보여주는 종교 현상을 보면 그것이 변질되거나 은폐되어 있을지라도 여전히 종교적임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철학적 이상세계에 대한 비전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예로 공산주의를 볼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아시아-지중해 세계의 위대한 종말론적 신화 가운데 하나, 즉 세계의 존재론적 지위를 변화시킬 운명을 가진 수난을 당하는 의인(義人, '선택된 자,' '구세주,' '죄없는 자, '사도(使徒)', 오늘날에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구원 자적 역할이라는 신화를 채택하여 계승하고 있다. 사실상 마르크스의 계급 없는 사회와 역사적 갈등의 결과적인 소멸에 가장 가까이 있는 선행자(先行者)는 많은 전승이 역사의 시초와 종말에 놓고 있는 황금 시대의 신화이다.(183쪽)

여전히 수많은 사람이 유대-기독교적인 메시아주의의 사상을 공산주의 신화에 덧붙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따라 생산 수단을 소유하지 않은 자를 뜻하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예언자의 역할과 구원자적 기능을 부여하고, 그리스도와 반(反)그리스도 간의 투쟁에서 승리할 것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인간은 종교적 현상에 대해 이성적으로 폄하하며 스스로 합리성에 근거해 탈종교를 선언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황을 맞이하는 태도, 그 상황을 극복하는 태도에서 보여지는 종교 현상 속에서 ‘종교적 인간(home religiosus)’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3

타로 리더는 카드를 뽑은 이의 얼굴을 보며 종이에 연신 무엇인가를 적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무엇을 묻고 있는지, 어떻게 대답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알 수 없음’이라는 실존의 상황입니다.
‘알 수 없음’은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는 불안입니다. 상황을 조금만 알 수 있다면 어떻게든 해 볼텐데 알 수 없기에 불안합니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기대입니다. 고정불변한 상황으로 다가오지 않을 것이고 무엇인가 선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종교는 아무래도 이 ‘알 수 없음’이라는 실존 상황을 먹고 사는 것 같습니다.

타로 리더 과정이 있다면 미르체아 엘리아데의 『성과 속』을 넣었으면 좋겠습니다. ‘알 수 없음’의 실존 상황 속 인간의 선택이 개인적 상황의 극복을 위한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선택을 통해 미래의 상황을 변경시킬 수 있으며, 이 변경에는 역사를 바꿀 수 있는 신화를 이룰 수 있다는, 그래서 새로운 역사를 이룰 수 있다는 엘리아데의 종교적 인간을.

타로 점이 무척 궁금해 창가에 어슬렁 슬쩍 들여다보다 눈이 마주쳐 민망함에 돌아섰습니다. ‘다음에 한 번 도전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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