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조회 수 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67. 죽음에 관한 짧은 생각



1


사실 그도 그럴 것이 ‘정반왕(淨飯王, Śuddhodana)’에게 아들을 키운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 인도 사회는 출신(Jati)에 따라, 신분이 결정되었습니다. 그 제도인 ‘바르나(Varna, 카스트)’에 따르면 그는 ‘무사 계급(Kshatriya)’이었습니다. 고대 인도 과두제(寡頭制) 공화정 시대, ‘무사 계급’은 정치적 지도자로서 그의 중요한 임무는 ‘전쟁’이었으며, 그의 삶은 ‘죽음’을 목격하기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들을 다시 자신과 같은 계급으로 그렇게 키워야 합니다. 그의 아들이 바로 불교의 창시자, ‘고타마 싯다르타(Siddhārtha Gautama, 기원전 623~544)’입니다.


pic01.jpg

『사문유관도』, 봉선사(경기 남양주).



그림은 『사문유관도(四門遊觀圖)』입니다. 동문에서 늙음을, 남문에서 병듦을 만난 고타마 싯다르타는 서문에서 ‘죽음’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북문에서 만난 수행자를 만나 출가를 결심하게 됩니다. 『사문유관도』, 그의 일생을 담은 여덟 개의 그림, 『팔상도(八相圖)』의 하나로 이제 그는 출가를 할 것이며 고행을 거쳐 ‘부처(部處, Buddha)’, 곧 ‘깨달은 자’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질문은 고타마 싯다르타가 네 문을 가진 성에 있게 된 이유입니다. 그의 생애를 담은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Abhiniṣkramaṇa sūtra)』에 따르면, 정반왕이 아들의 ‘출가(出家)’를 염려해 성(城)에 두고 엄히 경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들의 주변에 예쁘고, 젊고, 건강한 사람만을 두어 그것만을 경험하게 합니다. 무사 계급을 이어받아야 하는 아들, 그의 아버지로서 충실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다른 게 보이네. 혹시 아버지 정반왕이 아들에게 자신과 다른 삶을 살게 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자신의 고통을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마음. 무사 계급으로서 누군가를 죽이거나 또는 죽어야 하는 자신의 삶을 살게 하고 싶지는 않았던 거지. 동문의 깨달음 늙음, 남문의 깨달음, 병듦, 그리고 마지막 서문의 깨달음, 죽음 말이다. 결국 피할 수 없는 것을 피하게 만들고 싶었던 아버지의 마음.”

이렇게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2


자기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도 태어난 본인은 어떠한 기억도 불러일으키지 못합니다. 그는 자기의 현존재의 시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죽음은 모든 사람 앞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므로 마치 죽음이 결코 오지 않을 것처럼 살아갑니다. 비록 죽음이 우리에게 더없이 확실한 것이라 할지라도, 산 자로서의 우리는 도대체 죽음을 믿으려 들지 않습니다.

- 야스퍼스, 『철학학교』, 『철학학교/비극론/철학입문/위대한 철학자들』, 전양범 옮김 (동서문화사, 2016), 141.


카를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 그는 신을 믿으며 어떻게 지금 여기에 집중하며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한 유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자입니다. 그가 생각한 삶의 시작과 끝입니다. 그는 우리가 우리의 태어남을 알지 못하며, 또한 우리의 죽음조차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죽음이라는 것이 분명한 진실임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인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죽음을 믿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지금 관심하는 것을 묻는단다. 불교에서는 우리의 헛된 욕망을 다섯 가지 욕망, 오욕(五欲)이라 해. 재물욕, 성욕, 명예욕, 식욕, 수면욕. 혹시 우리는 이 오욕에 사로잡혀 우리가 보아야 하는 사실을 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죽음을 말이다.”


3


우리 현존재의 생명 의식은 여기서 이미 우리 자신이 갖는 실존의식이 아닙니다. 죽음을 생각함으로써 현존재가 동요하게 될 때 비로소 실존은 눈을 뜹니다. 실존은 무에 대한 절망 속에서 머뭇거리든가 아니면 영원성의 확신 속에서 자기에게 증여됩니다.

- 야스퍼스, 『철학학교』, 148.


야스퍼스가 제안하는 죽음의 의미입니다. 죽음에 관한 생각은 오늘 여기, 우리의 오욕의 삶을 흔듭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우리의 상태에 대해 집중하게 합니다. 그래 때로는 지금까지의 헛된 삶을 인식하며 혼돈에 빠지기도 합니다. 죽음이라는 끝이 가져오는 두려움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깊은 혼돈으로부터 지금과 다른 어떤 삶을 결단하기도 합니다.


인간의 과제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자기에 대해 분명하게 되어지는 최고의 척도를 들고 모험과 위험 속에 사는 것입니다. 자기의 불사성을 사실로서 아는 것은 인간으로부터 그 본질을 앗아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무지를 견디는 것, 이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에 다다르게 하며 인간을 앞으로 전진시킵니다.

- 야스퍼스, 『철학학교』, 150.


4


야스퍼스는 지금, 여기, 오욕에 집중한 이들이 생각하는 죽음에 관해 그 죽음을 맞이하는 소크라테스(Σωκράτης, 기원전 470 경~399, 그리스 철학자)의 말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명심하게. 내 시체가 불태워지거나 묻히는 것을 볼 때, 내가 무슨 못된 일이라도 당하는 것같이 생각하고 침착을 잃어서는 안 되네. 또 자네들이 밖으로 끌어내어 묻은 사람을 소크라테스라고 말하지 말게. 자네들이 장사 지내는 것은 단지 내 육체일 뿐이니 말일세.”

- 야스퍼스, 『철학학교』, 152.


“죽음 이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오히려 죽음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지금, 여기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지. 삶이 ‘길이’라면 그 끝이 너무 명백하구나. 하지만 삶이 ‘깊이’라면 또 다르게 느껴진단다. 죽음이라는 길이의 끝을 매 순간 끝없는 깊이로 살면 어떨까? 어쩔 수 없는 길이의 시간을 사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있는 깊이의 시간을 만드는 거지. 의미 있는 선택을 통해서 말이다.”

“어려워요.”

어렵다는 말을 이해 못 할 것도 아닙니다. 아이를 가르치며 정반왕의 마음, 보호라는 이름으로 아이의 고통을 대신 지고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이는 자신의 삶을 피할 수 없습니다. 피해서도 안 됩니다. 죽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죽음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죽음에 관한 인식이 가져오는 변화를 보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카톡, 카톡, 카톡.”

“선생님. 수업 때문인데요. 내일 점심시간에 찾아가도 되나요?”

“물론이지.”

아마 내일 죽지 말자고 먹는 밥을 코로 먹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밥 너머, 할 수 없는 일 말고 그 안에 할 수 있는 더 의미 있는 삶을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추신. 아이가 왔습니다. 

?

  1. 73. '기도(祈禱, pray)'라는 '기도(企圖, try)'

    '기도(祈禱, pray)'라는 '기도(企圖, try)' 1 “너희는 언제 기도하니?” 종교에 관한 이야기에서 꼭 다루어야 할 주제입니다. “시험 볼 때 기도합니다.” 교복을 잘 입는 현성이입니다. “시험 볼 때 왜 기도하지?” “제가 공부한 만큼 결과가 나왔으면 해서요.” ...
    Date2022.10.22 By좋은만남 Views9
    Read More
  2. 72. ‘남자의 갈빗대 여자’ 너머

    72. ‘남자의 갈빗대 여자’ 너머 1 안녕하세요. 우선 정말 오랜만에 인사드리고 부탁드렸는데 반갑게 맞아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가지고 있던 궁금증 몇 가지를 질문드리니 답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요즘 다시 코로나가 유행 중인데 건강 조심하세요! - 13○...
    Date2022.09.24 By좋은만남 Views46
    Read More
  3. 71. “신은 있나요?”를 물으며

    “신은 있나요?”를 물으며 1 “신(神)은 있나요?” 질문이 가능한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종교가 인류의 보편적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불교와 같이 신이 없다고 말하는 종교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나무 석가모니불’, 석가모니 부처의 가피(加被)를 구하...
    Date2022.09.03 By좋은만남 Views23
    Read More
  4. 70. 교육 반란

    70. 교육 반란 1 이상 지난해 겨울부터 연구한 결과물이 드디어 나왔습니다. 『2022 개정 교양교과, 진로와 직업과, 보건과 교육과정 시안 개발 연구』(정영근 외, 한국교육과정평가원, 2022)입니다. 좀 길어 보이는 책 제목이 말하듯이 34명의 연구진이 11과...
    Date2022.07.30 By좋은만남 Views10
    Read More
  5. 69. 정기고사 유의사항

    정기고사 유의사항 1 7시 50분, 교무부 수업계 선생님은 당일 시험감독배정표 파일을 내부 메시지 붙임으로 모든 선생님에게 발송합니다. 같은 시간 교무실, 교무부 고사계 선생님은 각 학급(고사실)함에 해당 교시 시험 과목 시험지와 답안지를 넣습니다. 매 ...
    Date2022.07.09 By좋은만남 Views43
    Read More
  6. 68. 어떻게 할까? 기준은

    어떻게 할까? 기준은 1 도대체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가 있었습니다. 갱지에 인쇄된 수학 숙제. 끙끙. 그 사이 책상 위 녹두편집부가 만든 『세계철학사 맑스와 엥겔스의 철학사상』은 왼쪽 책꽂이 아래부터 네 번째 칸 『노동의 역사』 옆으로 갔습니다. 바레...
    Date2022.06.18 By좋은만남 Views9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Next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