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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할까? 기준은



1


도대체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가 있었습니다. 갱지에 인쇄된 수학 숙제. 끙끙. 그 사이 책상 위 녹두편집부가 만든 『세계철학사 맑스와 엥겔스의 철학사상』은 왼쪽 책꽂이 아래부터 네 번째 칸 『노동의 역사』 옆으로 갔습니다. 바레·프랑소아의 『노동의 역사』(광민사, 1979)는 너무 작아 노랑 표지가 아니라면 『세계철학사』에 가려졌을 것입니다. 조병익·이병우의 『어떤날 II』은 1989년에 출시되었고, LP판 사이드A는 21:30 4곡, 사이드B 4곡 23:24을 위해 두 번 뒤집었으니 50분을 훌쩍 넘겨 다시 사이드A의 「출발」을 듣고 있었습니다.

“너 뭐 하냐?”

물을 만합니다. 분명 수학 숙제 중이었으니.

“형, 이 문제 모르겠어.”

책의 자리를 찾을 만큼 두 번 뒤집을 만큼 하기 싫은 말을 했습니다. 갱지를 태울 돋보기 마냥 초점을 맞추더니

“『수학I의 정석』 73페이지를 봐.”

73페이지에 답이 있었습니다. 


영어의 정석도 있습니다. 『성문기초영어』, 『성문기본영어』, 『성문종합영어』, ‘성문’시리즈입니다. ‘맨투맨’의 도전이 있었지만 작은 도전이었습니다. 

“형, 분사가 어려워!”

“123페이지.”

가뿐했습니다. 형은.


고등학교 시절, 수학 풀이의 ‘어떻게?’ 물음은 『정석』이, 영어 해석의 ‘어떻게’는 『성문』이 해결했습니다. 고등학교 공부의 기준은 『정석』과 『성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둘도 잘 못 따라갔던지 참.


2


일반적으로 종교의 기준은 ‘경전(經典)’입니다. ‘경전’으로 번역하는 단어는 영어 ‘canon(캐논)’입니다. 그리스어 ‘κανών(까논)’, 갈대(reed)를 어원으로 합니다. 줄기에 마디를 가진 식물인 갈대는 그 마디를 기준으로 길이를 재는 도구, 곧 자로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측정의 용도로 사용한 갈대가 사람에게 적용될 때, ‘규칙’이나 ‘법’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경전’은 『성서』입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하나님이 스스로와 인간을 향한 자신의 의지에 관하여 계시한 것을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기록자가 기록한 책들의 모음으로 교회에서 ‘경전(canon)’으로 인정한 것들을 말합니다.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의미에서 ‘Testament’라고 하며, 『구약(Old Testament)』은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의 약속을, 『신약(New Testament)』은 구원자 예수를 통한 새로운 약속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성서’라 번역하는 ‘바이블(bible, 그리스어 βίβλος)’은 4세기 요한 크리소스토모(Joannes Chrysostomus, 349∼407)에 의해 처음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성서”, 『가톨릭대사전』) 


그리스도교인들은 삶에서 만나는 ‘어떻게’ 질문의 답을 『성서』에서 찾습니다. 오랜 이스라엘의 지혜를 담은 모음집 『구약』 중 「잠언」, 예수의 삶에 대한 기록으로 예수의 말씀과 행적을 통해 길을 묻는 『신약』의 마태, 마가, 누가 그리고 요한의 「복음서」가 있습니다.


『마누 법전(code manu)』(이하 『마누 법전』). 기원전 2세기경부터 기원후 5~6세기 경의 힌두 법전 중에 하나로 가장 오래되고 최고의 권위로 꼽힙니다. 『마누 법전』은 어느 문헌보다 인도의 가족관계, 삶의 가치관, 바르나(barna, 카스트로 알려진 인도 계급제도), 성(性문) 관념, 종교적 이상, 재산과 정치관계, 법체계 등을 비롯한 여러 의례, 사회 규범 등에 대하여 풍부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마누 법전』은 지금까지 인도 사회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문서입니다. 

특별히 『마누 법전』은 유아기, 학습자, 가장, 노년 등 인생의 구체적 단계로 또는 부부, 유산분배, 치안 등 구체적 상황 등을 나누어 바른 행동거지, 즉 ‘어떻게’에 답합니다.


3


여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 ‘근본주의(fundamentalism)’가 꿈틀거리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행위했는가 또는 행위해야 하는가 질문에 “성경대로”, “마누 법전을 따라”라는 답, 기존의 기준에 동의와 순응이 면죄부를 발행합니다. 그리고 동의와 순응이 아닌 새로운 해석을 시도할 경우 그것들은 차별과 혐오를 서슴지 않는 폭력적 ‘기준’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기준’이 가진 특성입니다. 아무리 좋은 기준이라도 기준은 과거와 타자에 기반한다는 것입니다. 그래 오늘과 나에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삶을, 누구도 살아보지 않은 자신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 절대적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아직 자신을 찾으려 하지 않았었고, 그때 너희는 나를 발견했던 것이다. 신도들이란 다 그러는 것이다. 그래서 신앙이란 모두가 그토록 하찮은 것이다.

이제 나는 너희에게, 나를 잃고서 너희 자신을 찾으라고 명한다. 그리고 너희가 나를 모두 부인했을 때에야 비로소 나는 너희에게 되돌아 오리라.” - 프리드리히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최승자 옮김 (청하, 2000), 118쪽.


점심시간, 교실에 조용한 앉은 아이가 궁금해 다가갔습니다.

“저, 전학가요.”

지난 수업의 머뭇거림, 말할 것 같았던.

“작년부터 생각한 것인데 선생님 수업을 들으며 내가 왜 여기에 있는가 물었어요. 집안 경제적인 것도 그렇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니까 좋은 대학 때문에 그냥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래서 제가 조금 다른 선택을 한번 해 보려구요. 제 기준으로요.”

“선생님도 지금 선생님 삶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잘 대답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재형이 기준의 재형이 선택을 존중하고 싶고, 재형이도 스스로의 기준과 선택을 존중했으면 한다. 아침마다 재형이에게 내게 열린 세계는 저마다 다르잖아. 저마다 다른 세계에 같은 답은 없을 것이고. 삶이 수학, 영어가 아니잖아.”

다음 주라고 합니다. 아마도 당분간 재형이의 동그란 눈빛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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