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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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사랑해라. 그리고 해라, 원하는 것을!



1


교실 뒷문으로 들어갔습니다. 책상과 나란히 포개어 있던 아이의 어깨에 손을 올렸습니다. ‘화들짝.’ 그랬으면 좋겠는데 ‘화들짝’은 아니고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난 정도입니다. 딱 그 정도 표정으로 올려 봅니다. 눈 말은 ‘왜요?’입니다.

“넌 뭘 하길 원하니?”

‘하니?’와 ‘하냐?’는 명확한 차이가 있습니다. ‘하냐?’가 ‘으이그 인간아.’에 가깝다면 ‘하니?’는 대답을 원합니다. 물론 ‘물만 먹고 가’길 원하는 아이에게 적절한 상황의 질문은 아니지만 물어야겠고 달리 보면 묻기에 딱 좋은 때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넌 뭘 하길 원하니?”라는 질문은 특정한 때를 요구하는 질문이 아니라 ‘지금, 여기’라는 선택의 계속에 놓인, 놓일 이들을 향하기 때문입니다.


‘dilige et fac quod vis.’

손바닥만 한 한 자 한 자 힘주어, 그 사이 두 개의 분필이 부러졌고, 마지막 분필 조각의 낙하는 왼손으로 캐치.

다시 ‘토끼’에게 갔습니다.

“넌 뭘 하길 원하니?”

“자고 싶어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럼 너는?”

옆 토끼를 향했습니다. 눈동자만 똥글똥글합니다.


2

augustine.jpg

성(聖) 아우구스티누스(Sanctus Augustinus). 354년 태어나 430년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북아프리카 알제리 및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그리스도교 신학자, 성직자, 주교입니다. 자주 청년기 방탕의 혼란을 극복한 그리스도교의 성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국의 역사학자, 피터 브라운이 쓴 『아우구스티누스』(새물결, 2012). 800여 쪽의 부피감이 아우구스티누스와의 만남을 부담스럽게 합니다. 저자는 4세기 로마제국에 타협한 그리스도교, 로마제국 타락의 시대, 이해할 수 없는 신앙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아우구스티누스를 쫓으며, 그리고 마침내 스스로의 답을 찾고 답을 따른 그의 삶을 다큐멘터리처럼 진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의 문장, ‘dilige et fac quod vis(딜리게 엣 팍 쿼드 비스).’ 그의 요한일서 4장 강해에 나오는 문장으로 ‘사랑해라. 그리고 해라, 원하는 것을.’입니다. 


“다시 질문할게. ‘dilige et fac quod vis.’, ‘사랑해라. 그리고 해라, 원하는 것을’을 권면할까? 아니 아우구스티누스가 한 말이라면 4세기부터 천육백 년 동안 선언해 왔을까? 아우구스티누스가 그 당시 격언을 따른 것이라면 그보다 훨씬 더 오래전부터 선포해 온 것일까?”


3


‘너는 원하는 것이 있는가?’

라틴어는 동사가 상황에 따라 변화하며 인칭을 포함합니다. 우리말, ‘나는 원한다.’ 또는 ‘너는 원한다.’ 이렇게 1인칭, ‘나’, 2인칭, ‘너’, 또는 3인칭, ‘그’를 표시하는 것과 다릅니다.

‘quod vis’, ‘원하는 것을’로 번역하면 좀 밋밋합니다. 교실 사이사이를 다니며 얼굴의 눈을 찾아 ‘너’라 부르고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묻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호명된 ‘너’는 ‘나’들에게 내면에서 ‘qui volo’, ‘내가 원하는 것은’이 됩니다. 이렇게 변경된 어구 ‘qui volo’,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대답하기 쉽지 않습니다. 

욕망과 관계되어 스스로 욕망하는 것,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면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내가 원하는 것은?’이라는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논리적으로는 원하는 것을 ‘할 수 없어서’ 행복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알지 못해서’ 할 수 없었고 그래서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 것입니다. 

그러니 물어야 합니다. ‘qui volo’,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답해야 합니다.


“아니요. 저는 있는데요.”

“와! 다행이다.”

그런데 또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있다’고 당당히 말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실행해 정말 행복할 수 있는가는 다른 질문을 낳습니다. 많은 경우 그 ‘있다는 것’을 위해 죽기 살기로 다투고는 있는데, 그 ‘있다는 것’을 다투는 과정도 그 ‘있다는 것’의 성취 이후도 행복과 관련해 의심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해?’라는 질문에 ‘네’는 혀끝에 멈춰 섭니다.

‘욕망의 형성’으로 생각할 때, ‘내가 원하는 것’이 정작은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에 의해 원하라고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학습된 교육된 것일 수 있습니다.

“치킨 먹고 싶어요.”

‘왜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치킨, 피자, 햄버거일까?’ 질문은 ‘내가 원하는 것’인지 ‘내가 원하게 된 것’인지 묻게 합니다. 그리고 그렇다면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물음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4


새벽에 토끼가 ‘세수’하는 건 불가능해 보입니다. 과거 거짓을 깨닫고 버리고 그래 드러난 현실을 받아들이기보다 차라리 물만 먹고 가고 싶습니다. 더 많은 시간, 많은 현자가 ‘인생의 지혜’라 말하며 물만 먹고 가라 했습니다. 잘난 척은 아니고 때로 사랑이라 말하며.

그러나 세수해야 합니다. 어쩌면 이 당위가 ‘dilige et fac quod vis.’가 계속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어느 날 현기증을 느끼며 공허하지 않고 행복하기 위해서.


돌아보던 눈길에 한 아이의 검지가 ‘이거요.’ 합니다. 교실 창 쪽 벽에 일렉 기타 하나가 소리 없이 기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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