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2021.10.16 18:04

58. 아이와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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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아이와 혁명


1


테이크아웃 커피 컵을 두길 잘했다 싶은 아침이었습니다. 점심 식사로 찐 밤을 깠는데, 위클래스 상담 선생님이 생각나 컵에 넣었습니다. 담아 보니 예닐곱 개. 딱 간식으로 좋아 보였습니다. 출근.

밤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이제 위클래스 배달 모드. 냉장고에 두었던 밤 담은 컵을 쇼핑백에 넣고 룰루랄라. ‘앗 녀석이다.’


“선생님!”

“왜?” 나름 츤데레. 대답 다 할 거면서 이렇습니다.

“시대정신에 대해 다시 말해 주세요.”

1학기 때 배운 걸 이제 다시 묻는다? 뭔가 있는 것입니다.

“왜?”

다시. 질문은 맥락이 필요합니다. 

“『파우스트』 있잖아요.”

“괴테의 『파우스트』?” 잠깐 파우스트를 읽은 기억을 뇌 어디 장기기억에서 살폈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아마 고등학교 1학년쯤인 것 같습니다.

“네. 파우스트의 ‘시대정신’과 혁명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난감합니다. 번뜻, 공자의 『논어』 「위정」 편입니다.

“子曰(자왈), 知之爲知之(지지위지지) 不知爲不知(부지위지지) 是知也(시지야).”

“네?”

“공자님이 말씀하셨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 히히. 모르겠다. 사실 너무 오래전에 읽은 책이고 『파우스트』를 읽으며 ‘시대정신’과 ‘혁명’의 주제로 고민하지 않았구나. 나도 좀 찾아봐야겠다.”

“네.”

휙 돌아갑니다. 사실 질문을 잘하는 아이는 질문을 하며 이미 답을 가지고 있는 아이가 많습니다.


2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독일의 작가, 철학자, 정치가입니다. 개인적으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더 끌리지만 『파우스트』는 종교적 색체 때문에 여러모로 인용했던 책입니다.

기억하는 『파우스트』입니다. 희곡으로 2부로 되어 있습니다. 줄거리는 파우스트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아 여러 가지 일들을 경험하는 이야기입니다. 파우스트가 종교적인 이유는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구원 문제를 다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파우스트』의 ‘시대정신(zeitgeist)’입니다.


바그너: 실례입니다만, 그것은 큰 기쁨입니다. 각 시대의 정신 속에 자기를 잠그고, 우리들보다 먼저 현인들이 어떻게 생각했는가. 그리고 우리들이 그것을 결국 얼마나 훌륭하게 발전시켰는가를 보는 것은.

파우스트: 그렇지, 하늘의 별까지 발전시켰을 테지! 이봐, 자네, 과거의 시대는 우리에게는 일곱 인(印)으로 봉한 책일세. 자네들이 각 시대의 정신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야, 결국, 각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선생님들 자신의 정신이라네. 그래서 참으로 비참한 일들이 자주 일어나는 걸세!

바그너: 하지만 이 세계! 인간의 마음과 정신! 그 점을 누구나 조금이라도 인식하고 싶어합니다.

- 괴테, 『파우스트』 다이아몬드세계문학대전집7, 정주영 역 (청화, 1985), 31.


괴테 당시 그리고 『파우스트』의 시대정신은 신의 몰락과 인간 주체의 등장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가진 근본 한계가 있습니다. 바로 인간이 가진 속성 자체가 그리 믿을 만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해하는 신(God)은 어쨌든 어떤 식으로든 전지전능한데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괴테 당시나 지금이나 이 무능력한 인간이 어찌어찌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으로 비참한 일들이 자주 일어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괴테의 제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를 살아가야 하는 인간, 이 인간이 조금 더 용감해 져야 하고 조금 더 충실해져야 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현재에 열중하라. 오직 현재 속에서만 인간은 영원을 알 수 있다.”


3


‘경쟁’. 격하게 오늘날 아이들의 ‘시대정신’입니다. 질문하지 않고 주어져 받아들여진 ‘시대정신’입니다. 그리고 이 ‘경쟁’에 ‘공정’을 말하는 시대입니다. 공정하고 올바른 것은 여자, 장애인, 소수자 모두가 같은 100m 경주를 하는 것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슬픈 건 이 ‘경쟁’과 ‘공정’의 내면에서 이기심을 볼 때입니다. 이 ‘경쟁’과 ‘공정’을 결국 자신의 이익과 맞아떨어질 때는 긍정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불공정’이라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혁명’입니다. 괴테는 ‘프랑스 혁명’이라는 대 전환을 경험했습니다. 불안한 진일보입니다. 그에게서 ‘혁명’을 봅니다. ‘혁명’은 불안한 인간이 꿈을 꾸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혁명은 꿈꾸며 다른 것을 바라보며 현재를 살아내는 것입니다.


아이는 아이의 시대정신을 돌파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알고 있을 것 같습니다. 괴테의 ‘시대정신’ 그리고 ‘혁명’을 질문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시간 아이의 다른 질문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니체의 주체성을 말하셨습니다. 그런데 니체의 주체성을 말하는 선생님은 하나도 주체적이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니체를 추종하는 것 아닙니까?”


도서관에서 아이를 만났습니다.

“기소(起訴) 대기.” 

멈추란 뜻입니다. 교무실로 달려가 아이들과 나누는 초콜릿 두 개를 가져왔습니다.

“고맙습니다.”

아이는 두 손을 내밀었습니다. 내민 손을 갈라 오른손, 왼손으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는 네 것.”

왼손 위에 올렸습니다. 다른 하나는 오른손 위에 올렸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친구랑 나눠 먹어야지요.”

“우리, 혁명이다.”

맞잡은 손, 남들이 보았다면 ‘독립군 놀이!’. 아이의 손엔 권총이 들렸을 것입니다.


돌아온 책상 위에 수제비누가 포스트잇과 함께 놓였습니다.

“나눠 주신 밤이 참 맛났습니다. 늘 챙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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