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인간의 의무, 다르마 dhar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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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마누법전』을 끝으로 힌두교 수업을 마치자.”
‘마치자.’라고 했는데 좀 날이 좋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학교 헌혈을 이유로 교실 절반을 비웠습니다. ‘이 수업을 지금 해야 하나?’ ‘그냥 자습하지요. 뭐.’ 3층에서 만난 수학 선생님 말씀이 ‘마치자.’ 말미에 한자리합니다. ‘헌혈이라….’
힌두교와 인도인을 묶어 삶으로 생각할 때 주요한 한 가지가 바로 일반적으로 인도 신분제도로 알고 있는 ‘카스트 제도’caste system입니다. 그리고 이 ‘카스트 제도’의 계급에 따른 의무를 담고 있는 경전이 바로 『마누법전』입니다.
이번 선거는 코빈드 후보와 쿠마르 후보 모두 사회적 소외계층인 달리트 출신이어서 국내외 주목을 받았다. 여야 대통령 후보 모두가 달리트 출신이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나확진, “인도 대통령에 코빈드 당선…'불가촉천민'으론 사상 두 번째(종합)”, 2017년 7월 21일 수정, 2021년 11월 26일 접속,
https://www.yna.co.kr/view/AKR20170720188151077.
인도 헌법 15조의 규정입니다. ‘국가는 종교, 인종, 카스트, 성(sex), 출신지 가운데 그 어느 것에 의해 시민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여전히 ‘지정 카스트 및 지정 부족’이란 법적 제도가 운용되는 것을 보면, 인도인의 삶 실제에서 카스트는 단단해 보입니다. 불가촉천민 출신 대통령이라는 기사 제목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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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카스트 제도’라 알려 있지만, 인도에서는 ‘색’color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바르나’varna를 사용합니다. 기원전 20세기경에 성립되었다 추측하는 인도의 주요 경전 『리그베다』가 말하는 바르나입니다.
그의 입으로부터 브라흐마나가, 그의 팔로부터 라잔야가, 그의 허벅지로부터 바이샤가, 그의 두 발로부터 수드라가 나왔도다. (리그베다: 제10만달라: 제90숙타: 제12절) - 『베다』, 박지명·이서경 주해 (동문선, 2010), 211.
그리고 바르나에 대한 『리그베다』의 신화적 표현을 따른 기원전 10세기경 『마누법전』의 ‘의무’dharma입니다.
[31] 세상을 구별짓기 위해 입과 팔 등에서 (각각) 브라만, 끄샤뜨리야, 바이시야, 슈드라를 나오게 하였다.
- 『마누법전』, 이재숙。이광수 옮김 (한길사, 1999), 60.
‘마누’는 인류의 조상이며, 마누는 법과 정의의 사회를 세우기 위해 『베다』를 전하고 더불어 여러 가지 법을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마누법전』의 중심사상인 ‘다르마’dharm는 ‘인간의 이상적인 행동거지를 규정하는 규범’, ‘인륜을 실현하기 위한 행위 규범’ 등을 뜻합니다. 그리고 ‘구별 짓기 위해’라는 구절이 표현하듯 이 규범은 네 계급, 사제계급 ‘브라만’Brāhmaņa, 정치 ‘끄샤뜨리야’kṣatiya, 농·상민 ‘바이시야’vaiśya, 노예 ‘슈드라’śudra에 따라 달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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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법전』은 제사장의 의무, 왕의 의무, 농·상민의 의무, 노예의 의무가 다르고 서로 다른 의무에 서로 다르게 충실해야 한다는 뜻이란다.”
‘의무’란 말에 아이는 다른 생각을 했나 봅니다.
“선생님. 국방의 의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갑자기’ 그런데 아이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여자도 군대에 가야 해요.”
분명 영어단어집을 몰래 보던 아이의 눈동자까지 모을 선언이었습니다.
“왜 남자만 군대에 가야 해. 여자도 군대 가는 게 의무지.”
많이 억울해 보입니다.
한 아이가 한숨을 쉽니다. 그리고
“그럼 너도 집에서 빨래하고 밥해. 엄만 하고 싶어 하냐.”
근본적으로 ‘의무’란 단어가 가진 정의의 문제입니다.
먼저, 『마누법전』에서 읽을 수 있는 ‘의무’입니다. 여기서 의무라 번역한 산스크리트어 단어는 ‘다르마’입니다. 다르마의 어원은 ‘dhr’입니다. ‘지탱하다’, ‘지키다’, ‘지원하다’, ‘부양하다’의 의미입니다.
둘째, 요즘 반페미니즘적 ‘여성 병역 의무’에서 ‘의무’라면 좀 다른 의미가 보입니다. 하기 싫은 것을 해야 하는 ‘의무’의 뜻이 강합니다. 남성으로 하기 싫은 병역 의무를 수행하는데 그래 피해를 본다 라는 생각이 근저에 있습니다.
『마누법전』은 물론 민주주의 시대에 만들어진 문헌이 아니라 지금부터 3천 년을 훌쩍 돌아가 계급사회에 존재했던 문헌입니다. 당연히 계급사회를 유지하려는 나름의 합리적 접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누법전』이 말하는 ‘다르마’dharma의 어원 ‘dhar’입니다. ‘지원하다’, ‘부양하다’. 자주 ‘의무’라는 단어가 가진 수동적인 의미에서 능동적인 의미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어쩌면 지원하고 부양하는 다르마가 민주주의 사회를 지탱하고 지키게 하는 중요한 시민의 역할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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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나’에도 들지 않는 불가촉천민, ‘달리트’Dalit가 있습니다. 그들의 의무가 있습니다. 자신의 침 뱉을 통을 목에 차고, 자신의 발자국을 지울 빗자루를 들고 다녀야 합니다. 이 의무가 누군가에 의해 수동적으로 부여된 것이라면 거부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의무가 능동적으로 해야 할 것이라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 인류은 능동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몸짓의 문제를 생각해야 하고 어떻게든 그것만이라도 해결해야 합니다.
헌혈을 마친 한 떼가 교실 앞문을 열고 몰려들었습니다.
“아프지 않아?”
“해야 하는 건데 뭐. 야.”
무리는 받은 초코파이를 친구들에게 던집니다.
‘해야 하는 건데 뭐.’ 아이는 자신이 해야 할 바를 합니다.
“이것들이 수업시간인데. 파이를 나눠 먹어!!! 잘했어.”
“드실래요?”
“‘김영란 법’에 걸려. 수업하자. 아니다. 나눠 먹었으니 수업 끝.”
금요일 마지막 수업이니 살짝 넘어가는 걸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