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2021.07.24 15:45

54. 시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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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에게

1

“고향 벌교를 떠나는데 아버지가 삼만 원을 주시는 거에요. 글쎄.”
눈꼬리가 씰룩 장난기가 흐립니다.
“그때 삼만 원이면 벌교에서 서울까지 차비 정도이지 않았을까?”
아버지가 매정하다는 말이리라. 그렇게 이해하기에는 눈꼬리가 더 진실해 보입니다.
“그렇게 서울로 올라왔죠. 우선 친구 집으로.”
몇 달 전 친구가 일하는 단체에 마실 갔다 만난 시인과 그의 입담입니다.
평택 미군기지 반대에, 기륭전자, 콜트 콜텍 비정규직 노동자의 파업 현장에, 용산 참사의 남일당에, 한진중공업 희망버스에 그리고 한진중공업 김진숙 민주노총 위원장 복직을 위한 국회 단식까지. 시인 송경동입니다. 그리고 그의 시입니다.

나도
여느 시인들처럼
꽃을, 사랑을 노래하고 싶다
한 잔의 진한 커피
한 잔의 맑은 녹차와 어우러지는
양장본 속 아름다운 시인으로 기억되고 싶다
그러나 나는 늘 거리에 서야만 한다
너희가 쓰다 버린 850만 비정규직 쓰레기인간들에 대해
노래해야 하고, 일손을 빼앗긴 350만 농민의 시퍼런 절망에 대해
노래해야 한다.

“몸이 좋아지시면 맛난 거 함께하시죠.”
“몸은요. 어제도 마셨는데, 오늘도 좋습니다.”
빈말이 아니라. 용접공, 배관공, 시위꾼 시인과 그렇게 후일로 약속을 잡았는데, 또 코로나 1,800여 명입니다. 

2

시화전. 그림에 시를 얹은 작품들을 전시하는, 고등학교 축제 때 빠지지 않는 행사였습니다. 뭐 잘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1학년, 2학년 늘 출품했고, 늘 전시되었습니다. 잘했다는 것입니다. 

몇 가지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주황이나 노랑의 형광색상지의 자극적인 바탕에 검정 포스터 칼라 물감을 찍어 붓으로 그린 그림. 대개 해, 나무, 나는 새가 주인공이었습니다. 때로 검정 머메이드지에 하양 포스터 칼라로 다시 달, 나무, 앉은 새도 그렸습니다.
시라. 좋아했던, 기억나는 시인은 말라르메, 랭보 정도.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 1842~1898). 프랑스의 시인으로, 그리스 신화의 여신 님프의 관능적인 육체에 매혹된 목신의 욕망과 몽상을 내용으로 한 장편시 「목신의 오후」가 그의 시입니다. 그리고 랭보(Jean Nicolas Arthur Rimbaud, 1856~1891). 「지옥에서의 한 철」, 죄에 꿈틀거리는 인간에 관한 시. 말라르메와 랭보에게 사람들은 데카당스(Décadence)를 읽습니다. 퇴당파(頹唐派)·퇴폐파(頹廢派)의 뜻으로 19세기 말, 그들은 현실 절망 끝에 관능적인 자극이나 도취(陶醉)를 찾았습니다.

아이러니는 말라르메, 랭보의 시와 동시에 읽은 책입니다. 고등학교 때 서너 번째로 만난 철학책입니다. G, 키리렝코와 L. 코르슈노바의 『철학이란 무엇인가』 (광주, 1989). 책이 뭐 문제인가 하시겠지만 당시에는 시대가 달가워하지 않던 책입니다. 
만물의 근원을 물질로 보는 유물론과 그에 기반한 철학과 데카당스라. 어쨌든 분명한 것은 어지간히 선 자리가 불안했고 어쩌면 그 불안의 크기만 한 꿈을 꾸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특질은 매우 가치 있는 것이다. 시에서만 상상력이 요구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것은 심지어 수학에서조차 요구된다. 상상력이 없었던들 미적분의 발견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 레닌, G, 키리렝코와 L. 코르슈노바의 『철학이란 무엇인가』, 편집부 역 (광주, 1989), 148. 재인용.

그때처럼, 오늘 여전히 현실, 상상력, 변혁. 여전히 꼴같지 않은 시 쓰기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3

“선생님. 이번 문학상 시 부분에는 시가 총 60편 들어왔습니다. 심사해 주시리라. (웃음) 국어 선생님 두 분이랑 모두 세 분이 심사하시면 됩니다. 카톡 시 부분 심사위원 방을 만들 예정입니다.”
방학의 첫 날, 날아온 전화가 학교 문학상 시 부분 심사위원 위촉입니다.

학교는 여러 이유로 학교 문학상을 만들어 시상합니다. 학생 생활기록부(이하 ‘생기부’) 시상 내용이 대학 수시 입시의 주요한 내용으로 등장한 이후, 생기부에 기재할 시상 내용을 만드는 일은 학교의 주요한 업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프로그램의 개수와 수행 능력은 학생의 학교 선택에 주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업무입니다.

심사를 하며 어떤 관심법 같은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건 둘째 하고 시를 쓰는 이유를 볼 수 있는 능력. ‘소설보다 쓰기 쉽고 그래 학교 문학상에 참여해서 생기부 한 줄이라도 늘여야지.’ 이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시에서 아이를 읽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멋들어진 시도 좋지만 아이가 아이로서 쓰는 시. 이 시가 아이의 시·공간에 아이를 담았으면 합니다. ‘오늘 저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아이를 향해 바라는 출품평입니다. 업무가 아닙니다.

사르트르를 빌려 아이 시인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글쓰기란 하나의 기도(企圖)이다. 작가는 죽기에 앞서 살아 있는 인간이다. 우리는 책을 통해서 우리는 정당성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먼 훗날 우리가 과오를 저질렀다는 판정이 내린다 해도 미리부터 과오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작가는 자신의 악덕(惡德)과 불행과 약점을 전면에 내세우는 그런 비루한 수동적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결연한 의지와 선택과 저마다 삶을 추구하는 전체적 기도의 인간으로서,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전적(全的)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를 시초부터 재검토하고 우리 나름대로 이렇게 물어야 마땅한 것이다. ― 「무엇을 위한 글쓰기인가?」라고.
- 사르트르, 『문학이란 무엇인가』, 정명환 옮김 (민음사, 2019),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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