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종교적 경험의 특징 '궁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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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체험은 보편적이다.”
종교학의 출발입니다. 그리고 독일 태생, 미국의 종교학자, 요아킴 바흐(Joachim Wach)의 이론입니다. 인류는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종교적 경험을 해 왔습니다. 여기서 종교는 유교, 불교, 이슬람교와 같은 특정 종교가 아닙니다. 특정 종교를 가능하게 하는 선행하는 종교적 경험을 말합니다. 그에 따르면 이 종교적 경험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표현될 뿐입니다. 종교적 경험은 유교적으로, 불교적으로 이슬람적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 후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유교, 불교, 이슬람교가 있게 됩니다.
바흐는 이 종교적 경험의 특징을 네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 번째는 ‘궁극성’(ultimacy)입니다. 인간이 어떤 궁극적 있음에 대한 체험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는 ‘전체성’(totality)입니다. 종교적 경험이 인간을 전인적으로, 전체적으로 묶는다는 뜻입니다. 세 번째는 ‘강렬함’(intensity)입니다. 종교적 체험으로 인해 주체는 무엇인가를 향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감행이 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행위’(action)입니다. 종교적 경험은 주체를 행위하도록 만듭니다.
“알겠지?”
뜨뜻미지근합니다.
“어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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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ltra-: 훨씬 ~을 뛰어넘는
outrage: outrage(beyonnd) 정도를 넘어선 즉 격노(n.) 격분하게 하다(v.)/outrageous(a.) 충격적인
ultimate: ultim(over) ate(형접) 궁극적인, 최후의, 최고의(a.)/ultimately(ad.) 궁극적으로
- 배우는 재미 연구소 저, 『보면 외워지는 카툰 단어짱』 (배우는 재미, 2021), 352.
아이들의 영어 단어 학습법입니다. 이 단어 책의 특징은 접두어 또는 접미어의 의미를 통해 이와 연관된 영어 단어를 확장합니다. 그리고 장점은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단어를 외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어 단어 외우기와 좀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게 무슨 뜻이지?” 물음에 아이들이 답하지 못합니다. 많은 경우, 해석의 반복입니다. ‘사과’는 ‘애플’(apple). ‘애플’은 ‘사과’. 이런 식입니다. 그리고 문해력입니다. 글자는 아는 데 글자들의 덩어리인 문장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뜻은 외계입니다.
아이들은 라틴어 어원 ‘ultra’로 ‘궁극적’(ultimate)의 뜻을 “최후의, 최종의, 가장 먼, 극단의‘ 등의 뜻으로 외웠습니다. 근본적으로 ’ultira’는 ‘너머’(beyound)의 뜻입니다. 하지만 다시 ‘너머’는 ‘beyond’입니다.
“‘ultimacy’(궁극성)을 설명할 수 있니?”
2초도 걸리지 않습니다.
“궁극성이요.”
“그러니까 궁극성을 설명할 수 있냐는 질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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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성.’ 종교학의 주요 주제입니다. 그러나 종교 경험의 특징상 또는 정의상 합리적, 개념적 언어적 설명이 어렵습니다. 그러니 종교 경험의 한 축인 ‘궁극성’을 설명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게다가 오늘 우리 사회는 ‘궁극적’ 가치에 대해 그렇게 관심하지 않습니다. ‘궁극’, 꿈꾸는 이들을 향해 “말이 돼?”라 묻습니다. 물음은 대부분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이고, 어쩌면 현실적이지 않기에 중요하지 않다는 단정을 부릅니다.
재물이 땅에 버려지는 것을 싫어하지만, 사유하여 숨겨두지 않았고, 일하지 않는 것을 미워하였지만 자신만을 위해 일하지도 않았다. 이렇기 때문에 모략이 있을 수 없었고, 도적이나 폭력이 없었으며, 아무도 문을 잠그는 일이 없었다. 이러한 세상을 대동의 세상이라 한다.
- 『예기(禮記)』 ‘예운(禮運)’ 편
‘아무도 문을 잠그는 일이 없었다.’ 공자의 ‘대동(大同)의 세상’입니다. 공자가 생각하는 이상세계이며, 유교의 ‘궁극성’(ultimacy)에 대한 이해를 돕습니다.
“선생님. 공산주의는 실패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책상 밖으로 반쯤 나온 몸이 서두릅니다.
“이뤄질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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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많은 경우 우리가 시도한 공산주의는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실패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시도한 공산주의가 실패한 것이지 우리가 지향한 궁극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종교가 지금과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스스로를 특정 종교인이라 표현하는 이들은 현저히 줄어들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종교적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인류는 끊임없이 궁극에 관심하고 지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종교는 궁극에 가능성을 묻지 않는다. 모든 삶으로, 강렬하게, 참여할 뿐. 동학의 전봉준처럼, 그리스도교의 예수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