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2021.02.04 17:59

45. 옳음과 그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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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옳음과 그름

 

1

 

“옳음이란 무엇일까?”

“법(法)을 따르는 거요.”

“그름이란 무엇일까?”

“그런데 법을 따르는 게 옳은 것만은 아니잖아요.”

“그러게. 좀 예를 들어 줄래?”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현 ‘루쉰 공원’), 일왕의 생일을 기념하는 천장절(天長節) 및 점령 전승 축하 기념식 현장에서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 일본군 대장 등을 폭사시킨 후 체포되어 일본 가나자와(金沢市)에서 순국한 윤봉길 의사, 그러나 그의 의거에 대해 『조선일보』 그해 5월 1일자 2면 기사는 “犯人(범인) 尹奉吉(윤봉길) 현장에서 체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이의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의사? 범인? 누구의, 무엇을 위한 법인가요?”

“으음. 좀 이야기가 큰데. 함 차근차근 생각해보자.”

 

2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프랑스). ‘근대철학의 아버지’라고 합니다. 데카르트는 몰라도 그가 한 유명한 말은 기억합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틴어, Cogito ergo sum).” 너무도 당연해 보이는 이 명제로 인해, 이제 인간은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없었던 어떤 굴레, 명령에서 벗어납니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라고 선언합니다. 

“엄마 난 어떻게 태어났어?” “음, 하나님의 계획이지.” “설마, 나더러 그걸 믿으라는 건 아니지.”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믿음이 좋은 엄마가 묻습니다. 

“내가 생각해야지.” 당찬 대답입니다.

“그 생각의 결과가 나오면 얘기해 줘.” 기다림에도 믿음이 있습니다.

아이는 불현듯 난감합니다. 지금까지 당연히 있었던 삶의 기준이, 따르기만 했던 행동의 기준이 이제 허물어졌습니다. 아이는 이제 그 기준을 판단하고 만들어야 합니다.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습니다. 스스로 판단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판단이 옳은지 그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잠자리에 누운 엄마에게 다가갑니다.

“엄마?”

“응.”

“아니에요.”

 

3

 

별수 없이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독일 철학자)를 소환해야겠습니다. 칸트 역시도 이 문제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인간의 주체성은 선언했는데, 그래 그 근거를 인간이 가져야 하는데 그렇다고 말하려면 조금 설명이 필요합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인간은 경험 이전에 ‘시간’과 ‘공간’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고 이것을 통해 외부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실천이성비판』에서 두 아름다움, 밤 하늘에 빛나는 별과 스스로 안에 있는 도덕법칙을 말합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을 모두가 해도 된다고 생각할 때에 해라’는 정언명령(定言命令, Categorical Imperative)을 경험 이전에 이미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가 ‘선험적(先驗的) 관념론자’인 이유입니다.

하지만 딱 들어도 느낌이 오듯이, “시·공간에 대한 개념과 도덕법칙이라는 것은 어디서, 어떻게, 왜 있는 거지?”라는 질문에 딱히 답할 수 없습니다. 칸트에게는 이 둘이 인간에게 당위적이어야할 필요성만 있을 뿐입니다. 거칠게 말하면, 있지 않으면 설명할 길이 없으니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어느 선무당의 말처럼 “니가 모르는 뭔가가 있어.” 

 

칸트, 데카르트가 만든 외롭고 두려운 인간에게 어찌어찌 살아갈 방법은 제시했을지 모르겠지만 실제를 살아야 하는 이들에게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바심 나는 아이가 묻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옳고 그름을 나누는 기준이 될 수 있나요? 그 기준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 기준을 하나하나 개인이 갖는 게 맞나요?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 맞는 것을 모든 세계로 넓혀서 생각할 수 있나요?”

 

4

 

꼬리를 무는 물음표에 답을 찾아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신의 명령도, 인간 이성의 명령도 아닌 어떤 기준 말입니다.

“그러게. 어떻게 해야 할까?”

 

아우슈비츠(Auschwitz) 수용소. 폴란드 오시비엥침(Oświęcim), 나치 독일이 유태인을 학살하기 위해 만들었던 강제 수용소입니다. 그리고 임레 케르테스 (Imre Kertesz, 1929~2016), 헝가리의 유대계 소설가입니다. 헝가리 유태인 집안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 대전 중 아우슈비츠에 수감되었고 1945년 해방되었습니다. 『운명』 (민음사, 2016), 이 경험을 바탕한 자서전적 소설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케르테스에게 아우슈비츠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아니라, 신이 인간을 책임 있는 존재로 창조한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신은 세상을 창조하였고, 인간은 아우슈비츠를 창조하였다.”

 

옳음과 그름이라는 주제는 자주 그 근원에 대한 물음으로 나아갑니다. 이 물음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자주 오늘 여기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자신과 세계에 대해 책임을 지고 선택하며 살아가야 하는 실제를 남의 이야기처럼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옳고 그름의 문제를 그 본질에 대한 질문에서, 옳고 그름을 사는 책임의 실존으로 옮길 것을 제안합니다. 

 

“다른 것은 모르겠다. 지금 스스로 책임져야 할 것은 스스로 책임을 지자. 케르테스의 말이 가진 무게란다.”

아이들에게 ‘차별금지법’, ‘낙태죄 폐지’, 그리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책임 있는 결단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아이들은 깨닫고 또 결단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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