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여행과 3주간의 이별

by 좋은만남 posted Aug 0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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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여행과 3주간의 이별


지난 주간에는 가족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코로나 확진자 수가 여전히 줄어들지 않는 엄중한 상황이지만 새 차도 뽑고 작은 아이가 육군 훈련소에 입소해야 하기도 해서 핑곗김에 휴가길에 올랐습니다. 목적지는 목포로 정했습니다. 아이들이 남쪽에 가본 적이 없다고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해서요. 목포는 수년 전에 교회에서 긴 야외예배 행사로 남쪽 여기저기 다닐 때 잠시 들렀던 적이 있었지요. 교우들과 유달산에 올랐던 기억이 납니다.
목포는 의외로 심심한 동네였습니다만 북항과 유달산, 고하도를 이어주는 해상케이블카와 목포 앞바다의 섬들을 이어주는 천사대교가 있어 좋았습니다. 날이 무척 더웠지만 케이블카를 타고 고하도로 건너가 전망대를 둘러보고 산책길을 잠시 걸었고, 천사대교를 건너 암태도의 한 카페에서 시원한 바다를 보면서 맛난 음료를 마셨습니다. 저녁에는 항구의 회센터에서 아주 달고 차진 광어회를 먹으면서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잘 보냈습니다.20210808-001.jpg
드디어 휴가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작은 아이 혁이가 3주간 군사훈련을 받기 위해 논산 육군 훈련소에 입소하는 날이라, 사실 그 전날 밤부터 왠지 분위기가 조금씩 무거워졌습니다. 3주라는 기간이 현역병 입영자와 비교하면 눈 깜짝할 새 같지만, 당사자에게 느껴지는 무게는 현역병 못지않은가 봅니다. 부여 딴펄교회 엄영문 목사님 부부와 논산 맛집에서 점심을 함께 먹고 헤어져 훈련소로 향했습니다. 작은 아이는 음식을 남겼습니다. 도로가 입영자를 배웅하기 위해 온 차들로 꽉 찼고 머리를 짧게 깎은 젊은이들, 모자를 쓴 젊은이들과 군복을 입고 배웅을 나온 군필자 친구들로 북새통이었습니다. 그 북새통에 정신없이 아이를 내려주고 빡빡머리 틈으로 사라지는,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가 삐죽 솟아오른 키 큰 아이의 뒷모습을 보니 왠지 가슴이 찡해지는 게, 큰아이 훈련소 들어갈 때와는 또 다른 느낌입니다. 이제 갓 전역한 큰아이도 왠지 모를 긴장감이 들어 가슴이 울렁거린다고 하더니 빡빡머리들의 파도를 보고는 자기는 끝마쳤다는 안도감과 쾌감을 느꼈는지 깔깔대며 웃습니다. 
'겨우 3주인데도 이렇게 허전하네' 하고 생각하다가, 건강하게 성장한 자기 아들이 머리를 빡빡 깎고 '호국요람' 육군훈련소 입영심사대 정문으로 걸어 들어가 다른 빡빡머리의 파도 속으로 사라지는, 이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결국 보지 못한 엄마 아빠가 얼마나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에 갑자기 부끄러워졌습니다. 세월호 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모, 학교폭력과 따돌림으로 힘들어하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아이들의 부모, '안녕히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하고 아침에 나갔지만, 상상도 하지 못한 불의의 사고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의 부모… '그런 부모도 적지 않은데 나는 복 받은 사람이야'라는 생각을 하는 것조차 미안하고 부끄러워지는, 아픈 가슴 부여잡고 눈물을 훔치는 이웃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오래 머물러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자 하는 마음을 추스르고 빠져나왔습니다.
아이의 성장을 보며 기뻐하는 것은 부모의 특권입니다만 마냥 기뻐하고 좋아하기에는 이 사회가 너무 부조리하고 불공평합니다. 그렇다고 살아있는 것이 죄인인 것마냥 살 수도 없는 일이지요. '그래, 우리 아이들을 나만의 아이들이 아니라 이웃을 위한 아이들로 잘 키우자!' 하는 다짐을 해봅니다. 그렇게 사회에 봉사하고 이웃에게 친절한, 사려 깊은 아이로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는 복이 있다면 더없이 행복하겠습니다. 나와 우리라는 울타리를 넘어선다면 우리는 모두 함께 행복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