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이 가진 존재의 의미와 하나님의 섭리

by 좋은만남 posted May 2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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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이 가진 존재의 의미와 하나님의 섭리

누군가가 'SNS는 인생의 낭비'라고 말했다지만, 현대인이라면 안 할 수가 없지요. 바쁜 중에도 잠깐씩 짬을 내 페이스북을 봅니다. 저는 요즘 거의 공적인 내용만 끄적이지만, 지인들은 어떻게들 지내고 있나 들여다보는 거지요. 신학대학교를 같이 다녔던 최시종 목사님의 몇 장의 사진을 첨부한 한 줄 간결한 멘션을 보았습니다. 
"살겠다는 의지.. 신비롭다."20210530-01.jpg
아스팔트 위, 대리석 바닥 틈, 담벼락과 땅바닥이 만나는 구석진 자리에 쌓인 얇디얇은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운 것도 모자라 꽃까지 피운 생명들의 사진이었습니다. 그 글과 사진을 보면서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그 글을 보기 불과 몇 시간 전에 저는 그렇게 어렵게 뿌리 내리고 싹틔운 풀들을 싹 다 뽑아버렸기 때문입니다. 만약 교회 건물 현관 앞에 핀 풀들이 꽤 크게 자라 뽑아버리지 않으면 드나들 때 걸리적거릴 테고 저는 게으른 목사로 낙인찍힐 것입니다. 물론 뽑아버리면서 그 생명들에 대한 아쉬움과 미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조금만 더 옆쪽에서 자랐더라면 뽑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가장 마음에 걸렸던 건 그 생명들을 제대로 눈여겨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느샌가 저도 작은 생명을 보지 못하고 효율과 규모만 눈에 들어오는 인생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퍼뜩 정신이 들어서 그날 이후부터는 일부러 길가에 핀 작은 풀 한 포기라도 유심히 봅니다. 세상에 어느 것 하나 불필요하고 함부로 대해도 되는 것은 없습니다. 그것이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효율과 가치에 따라 화초와 잡초로 구분하고 폐기하는 것이 인간의 기준입니다. 
몇 년 전 동기 목사님이 진행했던 팟캐스트 방송 중에 성소수자 주제를 요 며칠 동안 출퇴근하면서 들었습니다. 방송에는 성소수자들이 세운 교회의 목사님과 남성 성소수자 몇 명이 출연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출연자의 이야기가 아직도 머릿속을 맴돕니다. 교회에서 음향 일을 열심히 하던 성소수자 청년이 나름대로 인정도 받게 되고 목회자들과도 관계가 좋아져서 가깝게 지내던 목회자에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커밍아웃했답니다. 그런데 며칠 뒤 교회에 나오지 말라고 통보가 왔다는 것입니다. 20210530-02.jpg
이 이야기를 듣고 무척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교회의 목회자라면 어떻게 했을까, 또 누군가 교회에 전화를 걸어 성소수자임을 밝히고 교회에 출석해도 되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했을까 하는 상상도 해봤습니다. 그와 동시에 누군가가 교회에 나오거나 나오지 못하게 허락하는 권리는 누구에게 있을까 자문해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생명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는 것을 막을 권리는 오직 하나님께만 있을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께도 없을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말씀이라고도 하고 지혜라고도 하는) 섭리에 따라 생명을 주시고 창조하셨는데 그것을 뒤늦게 번복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부정하는 것이 될 테니까요.
쓰다 보니 성소수자 옹호글 같이 됐지만, 그보다는 모든 생명이 가진 존재의 의미와 하나님의 섭리를 보자는 글입니다. 우리 역시 아주 작은 풀 한 포기와 다를 바 없지만 과분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존재입니다. 어쭙잖은 선민의식으로 다른 생명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값싸게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