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한 알에 담긴 하나님의 우주

by 좋은만남 posted Jun 0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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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한 알에 담긴 하나님의 우주

지난주에 강원도 부모님댁에 또 다녀왔습니다. 거의 2주에 한 번씩은 다녀오는 듯 합니다. 그동안 제대로 다녀 뵙지 못한 것을 올해에 다 정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역시 세상 만사는 다 정량이 있고 그 정량을 채워야 하나봅니다. 시험은 전날 벼락치기라도 하지만 인생에는 벼락치기가 없나봅니다.
아버님이 편찮으셔서 올해 농사는 아무래도 어렵겠다 생각했는데 어머니가 농사일을 강행하십니다. 고추 1,500주를 심는 것 까지는 그러려니 했는데, 아버님 편찮으시기 전에 빌려 놓은 땅이라 농사를 안 지을 수 없다며 콩을 심게 밭을 갈아달라십니다. 그 넓이가 어머어마합니다. 지난 번에 갔을 때 반 정도 갈아 놓고 비닐을 좀 씌우다 중단했는데 이번에 마저 다 갈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트랙터가 있다는 것이지만 허리까지 올라온 잡초밭을 가는데 꼬박 두 시간 넘게 걸렸습니다. 갈아 놓은 밭을 보니 비닐을 씌우는 것은 엄두도 나지 않습니다. 결국 그냥 심기로 했습니다. 하필 이날은 모처럼 맑은데다 기온이 30도까지 치고 올라갔습니다.
한참 무더운 시간을 피해 오후 일을 시작했다지만 비 맞은 것처럼 땀이 온 몸을 적셨습니다. 허리를 굽혀 콩알을 심는 일이 키가 크고 허리가 긴 저에게는 여간 고통스러운 작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낑낑대며 한 고랑을 심을 때마다 허리를 펴는데 비명인지 신음인지 저절로 터져나옵니다. 넷이 달려들어 했지만 결국은 다 심지 못하고, 남은 예닐곱 고랑은 나중에 들깨를 심기로 하고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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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을 이어가는 근육통에 절로 '그깟 콩이 뭐라고! 이까짓게 몇 푼이나 한다고 이 고생을?'하는 푸념이 새어 나옵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정말 콩이 '그까짓게?'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길만큼 하찮은 것은 아닙니다. 그 콩이 우리의 건강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영양결핍이 심각한 북한의 어린이들에게는 또 콩우유가 얼마나 유익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콩이 두부며 콩자반이며 반찬으로 혹은 콩밥으로 우리네 밥상에 올라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고생과 헌신, 희생이 담기는지도 미처 생각하지 못합니다. 콩 한 포기를 재배하기 위한 농부의 파종과 재배의 땀방울은 물론이고, 질 좋고 건강한 콩 종자를 만드는 연구자들의 노력도 깃들어 있지요. 또 성장하고 결실하기 위한 콩 자신의 노력과 그 자신을 내어줌으로 우리를 건강하게 하는 콩의 희생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모든 노력과 희생이 때에 맞게 햇빛을 비추고 비를 뿌리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맞닿아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알게 모르게 하나님과 이웃과 생명의 연대와 협력이라는 그물망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때론 감사하고 때론 감사할 줄 모르면서, 우리의 필요에 따라 가치를 규정하면서!
공동식사 때마다 부르던 '쌀 한톨의 무게는 우주의 무게!'라는 가사가 생각납니다. 쌀 한 톨만이 아니라 콩 한 알도 마찬가지이겠지요. 모든 생명 안에는 우주가 담겨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든 생명과 우리 자신,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 안에 담긴 우주를 감사와 경의의 마음으로 대해야 할 것입니다. 참된 신앙은 이 우주들은 우리 안에 온전히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