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이 행복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지난주에 우리 가족은 특별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받았다기보다는 열심히 살아온 우리 자신에게 스스로 선물을 했습니다. 2010년에 산 경차를 대신할 새 차로 한국GM 쉐보레의 트레일블레이저라는 소형 SUV를 장만했습니다. 11년 전에 천만 원을 주고 경차를 샀는데 이번에는 거의 세 배 가까운 금액이 들었습니다. 십여 년 사이에 기술이 많이 발달해서 갖가지 편의 및 안전장치들이 들어간 새 차 앞에서 거의 초보운전자가 된 것 같은 신세계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경차가 고속도로 통행료와 공영주차장 50% 할인 혜택도 있고 아직 10만 킬로도 안 탄 차라 아깝긴 했지만, 크게 자라버린 아이들과 같이 타기엔 경차가 너무 작아졌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져 두 달 가까이 중환자실에 계셨던 걸 보면서 생각이 복잡해졌습니다. 십 년 후에 은퇴해서 강원도에 살 집을 짓겠다고 돈을 모으고 있었는데, 하루 앞일도 모르는 인간이 십 년 후를 대비한다는 것이 좀 한심스럽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또 많지는 않지만, 모아놓은 돈을 병원비에 쓰려고 덜어내니 돈 쓰는 게 좀 만만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세탁기가 오래되었다고 불평하는 아내를 위해 드럼세탁기와 건조기를 사주었더니 너무 행복하게 매일 빨래를 하는 아내 모습을 보면서 '지금 여기'의 소중함을 깨닫기도 하였습니다.
지난 6월 말, 함옥분 장로님 차남인 손창호 성도님을 통해서 계약하였는데, 하자마자 이 차종이 갑자기 인기가 높아져 최고 판매량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래서 빠르면 3일 만에 받기도 하는 데 한 달이나 걸린 것입니다. 중간에 주문 실수가 있어서 출고일이 더 늦어졌습니다. 막상 계약하니까 집착이 생깁니다. 하루가 최소 일주일 같았습니다. 인터넷 동호회 카페에 가입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가 그 차의 기능과 장단점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새 차를 받는 날을 고대하였습니다. 사흘 만에 혹은 일주일 만에 차를 받았다는 사람들이 올리는 사진과 자랑을 보면서 더 애가 탔습니다. 작은 아이 혁이가 이번 주에 논산 훈련소에 입소하게 되어 그 날짜에 맞춰서 미리 가족 휴가를 보내고 훈련소에 데려다주려는데, 과연 그때 새 차를 타고 갈 수 있을지 몰라 몸이 달았습니다. 다행히 일정을 맞출 수 있게 출고가 되어, 저의 집착은 끝났습니다.
집착하며 기다리는 시간 동안 솔직히 부끄러웠습니다. 물욕같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과도하지 않은 기쁨을 잘 누리며 기쁜 감정에 솔직한 것도 좋겠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차가 나온 날 저녁, 가족을 태우고 저녁 시간에 시승식을 했습니다. 한창 자동차에 관심이 많을 나이인 큰아들 빈이는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빈이는 군에서 월급으로 든 적금을 타, 꽤 많은 금액을 선뜻 내주었습니다. 조만간 운전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아내도 '남의 차 얻어 타는 것 같다'라며 어색하지만 행복한 표정을 짓습니다. 새 차 한 대가 이렇게 한 가족을 웃음 짓게 할 수 있다니! 저도 물론 좋으면서도, 생각은 복잡합니다.
한 달 동안 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저를 휘저었습니다. 목회자로서, 가장으로서, 생활인으로서, 운동가로서 다양한 관점에 서니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과하지 않은 욕심으로, 지금 여기서,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은혜입니다. 당분간은 이 은혜를 만끽하렵니다.